아르헨티나 대선 우파 후보 역전승

키르치네르주의의 종말과 신자유주의로의 선회?

11월 22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선회를 공약으로 내건 변화시키자 동맹(Aianza Cambiemos)의 마우리시오 마르시(Mauricio Macri) 후보가 집권 승리를 위한 전선(Frente para la Victoria)의 다니엘 스키올리(Daniel Scioli) 후보에 2.8퍼센트 차이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대부분의 국제언론은 키르치네르주의/페론주의의 종말과 신자유주의로의 선회를 상징하는 우파의 승리로 결론짓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10월 25일 총선의 결과를 망각하고 있다. 결선에서는 패배했지만, 페론주의 세력은 상하원에서 다수를 장악하고 있고, 주지사 역시 절반 가까이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 출범할 마우리시오 마르시 우파정부는 신자유주의로의 선회를 추진하겠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페론주의 세력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페론주의 중도좌파 세력은 비록 분열로 대권을 내줬지만, 여전히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 포스트 키리크네르주의의 정치를 추구할 것이다.

대선 결과 - 집권세력의 분열과 우파의 상대적 약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는 8월에 예선을 치렀고, 각 정당의 대선후보 모두가 참여해 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예선에서 3퍼센트의 기준선을 통과한 6개 정당과 후보가 10월 25일의 본선에 진출했다. 1차 선거에서 다니엘 스키올리 후보가 승리했지만, 37.08퍼센트에 머물러, 45퍼센트 이상 또는 40퍼센트 득표에 2위 후보와의 10퍼센트 이상의 격차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11월 22일 결선투표에 들어가게 됐다.

페론주의진영은 집권 승리전선 연합에서 이탈한 새로운 대안연합의 세르히호 마사 후보가 538만표로 3위를 차지하면서, 초반의 예상과는 달리 곤경에 처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2003~2007)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2008~2015)의 12년 집권에도 페론주의 세력은 포스트 키르치네르 정권의 재창출에 실패하고 우파 후보의 선전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10월 총선: 상하원 선거와 주지사 선거

10월 25일 열린 아르헨티나 총선은 대통령 선거 외에도 상하원 선거와 주지사 선거도 함께 열렸다. 그런데 상하원 전체가 아니라, 상원 72석 중 1/3인 24석, 하원 257석 중 절반이 조금 넘는 130석에 대한 중선거구제 투표로 진행됐다.

페론주의 집권당에서 이탈한 세력이 있었지만, 키르치네르주의 계열의 페론주의 승리를 위한 전선 연합이 상원의 경우 변화시키자 연합에게 약간 밀렸지만 기존 의석 덕분에 다수를 유지했다. 그리고 하원의 경우는 130석 중에서 84석을 차지해 역시 다수를 확보했다. 또한 2015년 상이한 시기에 주별로 열린 주지사 선거에서도 집권당은 23개 주중 11개주에서 승리했다.



좌파의 성과?

노동자 좌파전선(Frente de Izquierda y de los Trabajadores, FIT)은 트로츠키주의 경향의 3조직, 즉 노동자당(PO), 사회주의노동자당(PTS), 사회주의좌파(IS)의 선거전선 조직으로 2011년 출범했다. 이후 지방선거에서 소수의 당선자를 내면서 득표율을 높여왔고, 2013년 10월 하원 선거에서 124만3252표(5.42퍼센트)로 3명의 연방 하원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대선에서는 PTS의 니콜라스 델 카뇨가 예선에서 PO의 호르헤 알타미라에 승리하고 또 양 후보의 총득표가 1.5퍼센트 하한선을 통과해 FIT의 공식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Nicolás del Caño/Myriam Bregman 375,874표/51.29% 대 Jorge Altamira/Juan Carlos Giordano 356,977표/48.71%, 합계 732,851표/3.25%)

그러나 10월의 대선에서 카뇨 후보는 예선 수준의 득표인 81만2530표(3.23%)에 머물렀고, 상하원 선거에서도 기존의 3석 이외에 새로운 의석을 추가하지는 못했다.

페론주의의 압도적 영향 아래서 기존 좌파들 중에서 살아남은 좌파들의 선거연합으로서 노동자 좌파전선은 제도권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이번 대선 역시 유의미한 시도였다. 그러나 페론주의적 포퓰리즘을 넘어, 페론주의 좌파와의 경쟁 속에서 계급적, 사회변혁적 좌파의 재구성을 위한 투쟁의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키르치네르주의와 라틴 아메리카 좌파블록

2001년 경제위기로 몰락한 아르헨티나를 구한 것은 페론주의의 변방에서 등장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였다. 한편에서 IMF와 채무국들에 맞서 부채를 청산하면서 2003년 GDP 대비 144퍼센트의 부채를 2013년 41퍼센트 수준으로 낮췄다. 또한 2003년 56퍼센트의 빈곤율을 2012년 6.5퍼센트로 낮췄고, 2003년 26퍼센트의 실업률을 2013년 6.9퍼센트로 낮췄다.

사회복지 측면에서 2003년 GDP 4.4퍼센트 연금 지급에서 2013년 7.7퍼센트로 높였고, 2003년 교육에 GDP 3.3퍼센트 지출에서 2013년 6.5퍼센트 지출로 늘였다. 또한 새로 도입한 보편적 복지로 330만명의 어린이와 8만4000명의 임신여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그리고 콩과 석유 등 1차 상품 수출 붐에 힘입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고용 측면에서도 매년 50만개의 일자리를 마련해 집권 10년간 5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최저임금은 2003년과 2013년 사이에 1300퍼센트나 증가했다.

키르치네르주의는 신자유주의 30년과 막대한 외채로 파산한 국가를 되살려 아르헨티나의 정상국가로 되돌려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에는 항공사와 석유공사, 철도 등을 재국유화했고, 고속도로와 공공주택에 대한 투자를 2배로 확대했다. 또한 1973~86년 반인륜적 학살을 자행한 군부정권 책임자들에 대한 면책법을 폐기해 정의를 실현했다. 또한 외교적 측면에서도 지역통합을 추진하면서 제국주의에 맞서 좌파정부들과 보조를 맞췄다.

이번 대선의 패배는 충격적이다. 키르치네르주의 12년의 성과에도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전지구적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은 취약한 경제지표가 패배의 주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페론주의의 분열로 어부지리의 성과를 우파가 챙겨간 것이다. 거시적으로는 최악의 위기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아르헨티나의 정치경제가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성취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페론주의의 패배와 우파정권의 등장을 미국과 국제언론은 환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급하게 핑크 타이드의 종말을 예견, 아니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국내적으로 페론주의와 신자유주의 간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하게 됐다는 것이 현실이다. 마우리시오 마르시 정권은 상하원에서 26~27퍼센트 의석 밖에 없는 약체정권이며, 분열돼 있지만 페론주의 세력은 상하원과 지방정부에서 압도적 다수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이탈로 외견상 핑크 타이드가 약화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핑크 타이드의 종언은 근거없는 과장이다. 12월 초에 열리는 베네수엘라 총선이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겠지만, 설사 핑크 타이드가 약화되더라도 새로운 단계의 계급투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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