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 바이러스 확산, 여성 재생산권-장애인 생명권 논쟁으로?

소두증 유발 우려...낙태 규제 완화 요구 높아져
“낙태권 보장은 공공의료의 문제”...“낙태 선택 신중하게 이뤄져야”

남미 지역에서 태아에게 소두증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지카(zika) 바이러스가 확산됨에 따라 다시금 낙태 합법화 논쟁에 불이 붙었다.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산부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엄격한 낙태 규제 정책으로 인해 임산부들이 안전하지 못하고 불법적인 낙태 시술에 내몰리고 있다며, 낙태 합법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주장이 자칫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열대지역에 사는 ‘이집트 숲 모기’의 흡혈 과정에서 전염되는 지카 바이러스는 최근 중남미 국가에서 발생하기 시작해, 오세아니아,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나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발열, 관절통, 발진 등의 증상에 그치지만, 태아에게 소두증(microcephaly)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임산부 감염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소두증은 머리 크기가 매우 작은 증상으로, 두개골 내부 압력으로 인해 뇌 성장에 문제가 생겨 발달장애, 뇌성마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브라질의 경우 소두증 의심 사례가 4180건, 확진 환자가 270건으로 조사됐으며, 신생아 12명이 소두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5일 현재 지카 바이러스 감염 국가는 33개국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남미 대부분 가톨릭 국가, 낙태 규제 엄격해

이처럼 문제가 커지고 있지만, 가장 많은 감염자가 발생한 중남미 지역 대부분 국가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가톨릭 국가이다. 지카 바이러스의 진앙지인 브라질과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등은 산모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때에만 낙태가 허용되며, 파라과이,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등은 아이를 낳을 때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해 더욱 엄격하다.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니카라과, 칠레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여성운동 진영에서 낙태 규제 완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브라질의 페미니즘 연구센터(CFEMEA) 등은 태아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소두증을 가진 것이 일찍 진단된 경우에는 무조건 낙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센터 소속 사회학자 과시라 드 올리베이라는 "안전한 낙태의 권리는 공공의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며, 지금 같은 긴급한 상황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브라질은 여성이 마치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낙태를 하려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브라질 보건부에 따르면 안전하지 못한 낙태는 브라질에서 임산부 사망에 있어 다섯 번째로 높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브라질리아대학이 2010년 실시한 전국 낙태 실태조사에서도 브라질 여성 5명당 1명꼴로 40세 이전에 적어도 한 번의 불법 낙태시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최근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산부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이런 안전하지 못한 낙태를 하는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국가들은 낙태 규제 완화를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되레 여성들에게 최대 2년간 임신을 늦추라거나 성관계 시 콘돔을 사용하라는 권유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애 차별적 태도에 기초해 백지위임하듯 하는 낙태선택권 올바르지 않아”

한편, 이 논란은 최근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가 확인된 미국에서 여성의 재생산권을 옹호하는 페미니즘과 장애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장애권리운동 간의 논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지난 4일 허핑턴포스트 미국판 기사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을 자세히 소개했다.

허핑턴포스트가 소개한 콜롬비아대학의 임상 산부인과 부교수인 앤 데이비스의 주장에 따르면, 아직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간의 인과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로 콜롬비아에서는 지카 바이러스의 많은 사례가 소두증의 증가와 무관하다고 보고되었다는 것이다.

더욱 복잡한 문제는, 태아의 소두증이 임신 2기(14주 이후)가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전에는 뇌가 완전히 없는 ‘무뇌증(anencephaly)’은 발견할 수 있지만, 소두증은 발견할 수 없다는 게 데이비스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아주 난처한 딜레마가 생긴다. 임신 2기 이후의 낙태는 산모의 생명에 위협이 되거나 태아에게 심각한 이상이 있을 때에만 하는 게 보통이고, 비용도 상당하다. 그래서 미국에서 임신 2기 이후에 이뤄지는 낙태 시술은 전체의 1% 가량에 불과하다. 반면 낙태 비용이 비교적 덜 들고 수술 자체도 쉬운 1기에는 소두증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데이비스는 따라서 소두증이 의심되는 태아를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를 할지 말지를 직접적으로 권유하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며, 그에게 태아에 관련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데이비스는 “나는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이 어떨지를 가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데 최선을 다한다”면서 “이것이 의사가 (임신) 여성과 그 가족과 나눠야 할 대화의 지점이다. 이는 단지 하나의 의학적 진단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가족에게 일정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낙태권리를 옹호하는 진영에서는 그보다는 당사자인 여성이 중심이 된 의사결정을 중요시한다. 미국 ‘선택권 옹호’(Pro-Choice America) 단체의 일리세 호그 대표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여성에게 더 많은 권한이 부여되고, 더 많은 정보가 제공된 조건하에서 내리는 의사결정이다”라며 “여성은 모든 종류의 근거를 가지고 결정을 내리게 되며, 여성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애학 연구자이자 에머리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로즈마리 갈란드 톰슨은 지금까지 여성의 재생산권을 옹호해 온 진영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원하거나 양육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성은 아무도 없다는 (잘못된) 가정을 전제해 왔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태아의 장애유무에 따라 낙태하는 것이 정상적이며 바람직하고 또한 윤리적이라는,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믿음으로 인해 장애인의 삶에 대한 일반적 인식 부족을 낳았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여성의 임신 및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이라는 개념이 “여성이 기존의 차별적인 태도와 관습을 답습하도록 백지위임을 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갈란드 톰슨은 그러나, 여성의 재생산권을 제한해 온 지금까지의 관행에 대해선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힌다. 그보다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어둡고 냉혹한 것으로만 묘사되어 온 ‘장애인의 서사(the story of disability)'를 다시 쓰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해결책은 재생산 선택권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중한 방식으로 해야만 한다. 어떠한 의문도 제기되지 않는 낙태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태아의 생존 능력에 대한 물음 뒤에 더 많은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 임신을 끝내는 결정은 단지 ‘이런 제길, 난 장애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라는 말 보다는, 여성이 고려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향들에 대한 충분한 숙고를 거친 신중한 과정이어야 한다.” - 로즈마리 갈란드 톰슨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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