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나라 망친다고 떼쓰는 이유

[교육통(痛)] 노동교육은 학교에서 탄압받아야 하나?

조종사들 연봉이 1억4천만 원 이래. 아니 그 정도 받으면서 더 달라고 파업하겠다고? 그러니까 노조가 욕먹는 거야.”
술잔을 털어 넣으며 맞은편에서 말을 받는다.
“현대자동차 노조 보라고. 거기는 해마다 파업이잖아. 기름밥 먹는 인간들이 연봉 1억 씩 받는다던데 무슨 떼쓰기냐고. 하여튼 노조가 이 나라를 망친다니까.”

비분강개하는 이들은 대학까지 나온, 배울 만큼 배웠다는 오십대 후반의 친구들이다. 이들의 말은 수구보수 언론의 논리에서 조금도 비켜가지 않는다. 재벌 회장들의 수십억 원 연봉은 문제 삼지 않는다. 재벌 회장의 수백억, 수천억 원에 이르는 탈세나 회사 자금 횡령에는 지금처럼 입에 거품을 물지 않았다. 문어발식 순환출자로 쥐꼬리만 한 지분으로 수십 개 기업의 주인으로 행세하며 온갖 갑질을 해도 눈을 감고 만다. 말로는 지성인인 체 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왜 노조에 대해서 적대적일까? 기본권인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아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수구 언론에게 주워들은 왜곡된 단편적인 지식을 사실로 믿고 있는 이들은 ‘노동자’를 꼭 ‘근로자’로 부른다. 근로란 ‘부지런하게 일함’의 뜻이다. 근로자는 국가나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할 의무 또는 임무를 강조하는 말이다.

일제는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등을 조직해 조선의 노동자를 강제 동원했고, 이때 ‘근로’는 식민지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쓰였다. 그리고 1963년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은 이전까지 써오던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었고, 일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동원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자는 기피 언어가 되어 모든 교과서에서는 근로자만이 남았다.

90년대가 되어서야 교과서에 노동조합이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도 정작 노동조합이 왜 만들어져야 했는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해 설명이 없다.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저항한 자랑스러운 노동조합의 역사는 한 줄도 없다.

그렇다보니 고등학생들 가운데 노동자의 권리를 자신 있게 설명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대학생도 자신의 시간제 비정규 노동에서 어떻게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학교에서 노동3권을 제대로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에 대비한 단편적 지식으로 배우다보니, 부당노동행위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고통을 받아도 어찌할 줄을 모른다. 더욱이 대부분의 학생은 정작 자신이 처하게 될 노동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수구보수 언론의 무지막지한 폄하로 인해 노동자라면 당연히 조직해야 하고, 가입해야 하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가르치는 것은 모든 교사의 책무이자 학교가 해야 할 중요한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월 말에 서울의 조계종 산하의 한 사립학교(동대부고) 교사가 드라마 ‘송곳’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법인 내 다른 학교로 의사에 반해 전보되었다. 또 한 교사도 세월호 추모문화제를 함께 참여하자는 메일을 보냈다는 이유로 전보되었다고 한다.

드라마 ‘송곳’은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용자들에 대항하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렸다. 이 드라마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란 무엇이며, 노동조합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활동하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사실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피부에 와 닿기 어렵다. 구체적인 영상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깨닫고 노예와도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교과서에만 충실한 교사는 지식전달자에 불과하다. 교사는 때때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온몸으로 말해야 한다. 굳이 ‘정의’를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교육이다. 그 교육의 가치 판단은 내용이 진실한가에 달려있다. 드라마 ‘송곳’이 우리 사회가 용인한 가치중립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교사를 전보 조치한 학교법인은 조계종이다. 조계종의 수준이 이러할진대 다른 사립학교 법인은 더 말해 무엇 하랴.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아이들에게 현실을 뒤로 하고 오로지 영어 수학에 매달리도록 해 노동자를 근로자로 부르도록 하는 교육이야말로 배격되어야 할 수구 잔재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제대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올바른 교사들을 옭아매어 탄압하는 사학법인들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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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스타트

    훌륭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