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필리핀 농민과 캄보디아 노동자

쌀을 달라는 농민에게 총탄을 쏜 필리핀 경찰

24살 여성 마조비(Majobie)는 지난 4월 1일, 자신의 삼촌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얼굴이 피범벅이 된 광경을 보았지만 도우러 갈 수 없었다. 모두가 경찰 발포에 놀라 도망쳤기 때문이다.

필리핀 인권단체 CTUHR(Center for Trade Union and Human Rights)은 지난 4월 1일 필리핀 키다파완(Kidapawan) 지역에서 발생한 농민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마조비를 비롯해 함께 수감된 24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했다.1

마조비는 지난 6개월 동안 농민들이 엘니뇨로 인해 농작물이 다 죽어 버려서 아무것도 수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카사바와 코코넛으로 연명했다. 1월 말 카사바 맛이 써지자 그들은 카사바를 더 섭취하면 중독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그녀는 아이들을 먹이려고 코코넛 재배를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일주일 만에 말라 버렸다. 그녀는 3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칭얼대는 것을 보며 매일 밤 눈물을 흘렸다.

키다파완의 농부들과 함께 그녀는 쌀을 요구하기 위해 시청으로 모여들었다. 3월 28일에 그녀는 마을의 다른 농부들과 함께 키다파완 시에 도착했고, 다음 날부터 시위를 시작했다. 경찰이 가로막았지만 수천 명의 시위대는 “총탄도 경찰도 아닌 쌀을 달라!”라고 외쳤다. 그녀는 다른 시위대들처럼 고속도로 위에서 잠을 자며 시위를 계속했다.

4월 1일 오전 10시경, 경찰은 경고 방송을 시작했다. 5분 안에 고속도로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경고 방송 이후 경찰 병력이 시위대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물대포를 발사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몇 분 후, 총소리가 났고 시위대는 도망쳤다. 마조비와 그녀의 친척들은 다른 시위대와 분리됐다. 그녀는 삼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고 “삼촌이 총에 맞았다”란 말을 들었지만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서 삼촌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낯선 누군가가 ‘가면 위험하다’고 했어요. 그리고는 내게 100페소를 주면서 ‘경찰이 쫓아오니 세 발 오토바이를 타고 일단 컨벤션홀로 가라’고 했어요. 가면 138번 번호를 단 하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고 우리를 마을로 돌려보낼 거라 했습니다.” 세 발 오토바이는 그들을 컨벤션홀로 데려갔지만 하얀색 차량 대신 경찰이 그들을 컨벤션홀로 끌고 가 음식과 물을 주었다. 그들은 삼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밖에 내보내 달라 했고 경찰은 그들을 데리고 나와 단지 5분의 시간만 주었다. 그들은 삼촌은 찾을 수도 없었고, 사진을 찍히고 지문을 날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저녁 TV 뉴스에서 삼촌 로델리오 댈토(Rodelio Daelto) 씨가 피 흘리는 장면을 봤지만 그가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체포되고 구금됐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쌀을 달라고 했을 뿐인데 총탄을 쐈어요”라고 마조비는 말했다.

삼촌 로델리오 씨는 총탄이 목덜미를 관통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마조비를 비롯한 24명의 여성과 45명의 남성은 여전히 키다파완 체육관과 컨벤션홀에 수감되어 있다. 그들은 경찰 공격 혐의로 기소당했다. 검사는 처음 그들에게 개인당 12000페소(한화 33만 원)의 보석금을 요구했다가 나중에는 2000페소로 낮췄다. 그들이 경찰을 공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에 비춰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4월 1일 시위로 3명의 농민이 사망했고 50명이 넘게 부상당했으며, 80명의 농민이 구속되었다. 이 문제가 다음 달 예정된 필리핀 대통령 선거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농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필리핀 정치는 오랫동안 지주 가문이 장악해 왔다. 지주 가문 소작농들을 동원해 지역구를 장악한 이들은 정당과 이념에 상관없이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고 필리핀 정치를 독점해 왔다. 대통령 선거에는 입양아 출신 여성 그레이스 포 상원 의원과 범죄 척결을 내세우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 시 시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부통령 후보로 전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 의원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마르코스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그의 아들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 대통령인 아키노 역시 한국에는 민주적인 후보로 알려져 있지만 그 역시 지주 가문 출신일 뿐이다.

대중적 인기와 가문의 동원력이 결정하는 필리핀 정치에서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농민의 절규는 선거에서 반짝 이슈로 떠오른 후, 또다시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초국적 기업을 위해 노동조합을 말살하려는 캄보디아 독재 정권

오랜 기간 캄보디아를 철권 통치하고 있는 훈센 정권은 지난 4월 4일, 야당과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법>2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지난 2014년 초에 발생한 캄보디아 의류 노동자 총파업 때, 한국 기업도 문제가 되어 국내에 잘 알려진 캄보디아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노동자들을 계속 투쟁하게 만들었다. 반면 캄보디아에 투자한 기업들은 캄보디아 정부에 파업을 금지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 왔다.

통과된 <노동조합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권리 침해나 부당 노동 행위에 항의하는 행동을 조직하려면 사용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얻지 않고 항의 시위를 하면 체포되고 공장에 출입할 수도 없다. 또한 제3자(비노조원)가 노조를 해산하거나 노조 활동을 정지시킬 수 있게 된다. 노조 지도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정부는 노조를 해산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이에 비해 사업주들은 불공정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아주 소액의 벌금만 물게 된다.

노조는 반드시 회계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데, 특히 국제 단체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경우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 그간 캄보디아 노조 활동을 국제 노동 단체 및 인권 단체들이 지원해 왔는데 이를 규제하겠다는 의도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도 어려워졌다. 노동조합은 반드시 조합원들로부터 최소 1%의 임금을 조합비로 징수해야 하는데, 열악한 임금을 받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노조 결성이 어려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최소한 사업장의 20% 노동자를 모아야 노조 등록을 할 수 있으며, 이마저도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어용 노조에게 교섭권을 뺏길 우려가 크다.

노조 지도자가 되려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 형사 소추를 당해서도 안 된다. 만약 노조 지도자가 국가 발전과 노사 관계를 해치는 행동을 하면 250달러에서 1500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고, 벌금을 물게 되면 당연히 노조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아울러, 정치적 목적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존 노동조합은 새 법률에 따라 6개월 내에 다시 재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기존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을 철저하게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훈센(Hun Sen) 정부는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으로 손실을 입었다는 초국적 의류 자본의 요구에 굴복해 노동조합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정권의 논리는 “의류 봉제 산업은 캄보디아 국민 모두가 먹는 밥솥이기 때문에 정부는 이 밥솥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 환경 개선 대신 노동조합 탄압을 선택한 것은 한국 기업을 포함한 의류 자본의 요구와 야당과 노동조합을 탄압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훈센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두 나라 노동자 농민과의 연대 절실

한국은 4.13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면이 되면서 노동 악법 통과는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의 돌파구는 노조 혐오에 기반한 노동조합 공격에서 마련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노동에 대한 인식도 보수적인 수준이라 노동 악법을 적당한 수준으로 타협할 여지가 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농정을 비판했던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쐈던 정권은, 한반도에서도 강화되는 이상 기후로 고통받는 농민들의 항의를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한국이 캄보디아나 필리핀보다 앞선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지만. 두 나라 노동자와 농민의 현실은 우리 미래를 보여 주고 있는지 모른다. 아시아 대륙 노동자들의 연대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워커스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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