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유성기업 2노조 ‘어용’ 판결에도 ‘노조 아님’ 통보 안 해

1심 판결이라?…다른 사안엔 1심 판결로 개입, 이중 잣대
3노조 설립 신고서 처리 놓고도 감독권 포기 논란

노동부가 유성기업새노조(3노조) 설립신고서에 대해 ‘현행법대로 처리하라’는 입장을 노동부 천안지청에 4월 29일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3노조가 19일 노조설립신고서를 내자 천안지청이 신고서를 교부할지, 반려할지 노동부 본부에 질의한 것에 대해 이같이 답변한 것이다.

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 관계자는 2일 미디어충청과의 취재에서 “현행법에 따라 처리하고 원칙대로 대응하라는 요지로 답변했다”면서도 “노조설립신고와 관련해선 노동부 장관이 지방노동 관서에 위임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신고서 교부 여부는 천안지청장이 판단할 문제”라고 천안지청에 공을 넘겼다.

회사가 설립한 ‘어용노조’ 유성기업노조(2노조)가 다시 3노조를 설립해 신고서 교부 여부는 논란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노조에 대해 “노조설립 자체가 회사의 주도로 이뤄졌고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려워 노조 설립 무효”라고 4월 14일 판결했다. 판결 닷새 만에 2노조 위원장은 3노조 위원장으로 갈아탔다. 2노조는 자체 선전물을 통해 3노조 설립을 기획해 실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계가 “이름만 바꾼 어용노조다. 3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이유다.

노조설립신고에 대해 노동부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유성기업 ‘어용노조’ 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2노조에 대해 ‘노조 아님’ 통보 등 행정 처분을 해야 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2노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는 천안지청 권한”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행정소송이 아니라 민사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이라 당사자 간에 알아서 할 문제이며, 확정판결이 아니라 1심 판결”인 점을 들어 유성기업 2노조에 대한 법원 판결은 노동부가 입장을 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민사 1심 판결’을 가져다가 입장까지 바꾼 적이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6월까지 노사 단체협약 가운데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또는 재해자에 대한 우선, 특별채용 조항’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올해 3월 돌연 ‘고용세습 조항’으로 통칭해 이 조항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차와 기아차-현대차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A 씨와 B 씨의 유족들이 각각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해 울산지방법원(2013년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2015년 11월)이 ‘산업재해자 특별채용 단체협약 조항 무효’라며 사측 손을 들어준 판결을 노동부가 근거로 삼은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도 당시 취재에서 9개월 만에 입장이 바뀐 이유로 2개의 1심 판결을 들며 “산업재해자 특별채용 조항도 고용세습 조항이며 위법하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례로 노동부의 입장이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노동부 관계자는 “고용세습 조항에 대한 법원 판결은 노동부가 (입장을 바꾼) 근거라기보다 ‘법원이 이 부분은 이렇게 봤다’는 식으로 노동부가 소개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또한 노동부는 유성기업 2노조 ‘설립 무효’ 1심 판결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판결을 인용할 만한 사안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금속노조에 따르면, 유성기업과 같이 사용자가 개입해 복수노조를 설립하거나 복수노조를 악용해 금속노조를 탄압하는 산하 사업장이 올해 4월 기준 50곳에 이른다. 이중 발레오만도와 보쉬전장, 유성기업 등 창조컨설팅을 동원한 노조파괴 행위는 6~7년째 사회 이슈다.

민주노총 이승철 대변인은 “고용세습 조항과 같이 정부의 노동개악과 맞아떨어지는 법원 판결은 곧바로 취하고, 유성기업 판결은 배척하는 노동부의 이중적인 태도는 노동부가 늘 사용자에게만 유리한 지침을 내고 행정을 펴는 것을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유성기업 2노조 무효 판결은 노조 설립 요건 중 자주성을 주요한 척도로 판단한 것으로 복수노조 시대 어용노조 설립에 제동을 건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노동부는 이 판결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어용노조인 3노조 설립신고서도 반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도 “사측의 주도로 생긴 노조는 노조로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법원 판단에도 불구하고 유성기업 3노조의 설립 허가가 난다면 노동부가 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단체협약에 대한 고용세습 조항을 문제 삼은 법원 판결에 즉각 대응했던 것과 비교해 이중적이기까지 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동부는 노조법 위반으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유성기업 사용자에 대한 근로감독도 미적대고 있는 등 갈등 해결에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관련해 제대로 된 노동부의 대처가 즉각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1노조)는 3노조 설립신고에 노동부가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해 “노동부가 사실상 3노조 설립신고서를 내주라고 한 것으로 노골적인 사측과 어용노조 편들기”라고 비판했다.

김성민 유성기업 지회장은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 등 사용자를 무혐의 처분하고 불법 직장폐쇄도 눈감아 준 노동부가 ‘법과 원칙’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그나마 법원이 제동을 걸어 사용자가 범죄 행위에 대해 재판을 받고 있지만 노동부의 ‘원죄’로 유성기업 사태가 6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새날 법률사무소의 김상은 변호사는 “노동부가 5년 전 2노조 설립신고증을 내준 것처럼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라며 “2노조와 3노조가 동일한데 노조의 실질적 요건인 자주성 부분을 심사하지 않고 형식과 절차만 따져 신고증을 교부하겠다는 것은 노동부의 감독권 자체를 포기한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부가 ‘민사 1심 판결’ 운운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며 “어용노조 탄생을 묵인하면서 사후에 당사자끼리 법률 소송으로 다투라는 식의 노동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법원 판결 취지도 무시하고 사실상 어용노조를 허용하겠고 선언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한편, 노동부 천안지청 관계자는 “노동부 본부의 답변을 받았다”면서 “참조해서 검토 중”이라고만 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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