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해도 불행하고 일 잘해도 불행하다

[워커스 7호 이슈1] 고로 만국의 노동자는 ‘성과 평가’로 불행하다


저성과자. 쉽게 말하면 일을 못하는 사람. 혹은 회사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 학교로 치자면 학습 부진아 또는 문제아 정도의 어감이랄까. 학교라는 데가 원체 성적 줄 세우기를 하는 곳이지만, 그렇다 해도 학습 부진아들을 야박하게 내쫓지는 않는다.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정도는 사회 통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사회는 다르다. 점점 달라지고 있다. 정부는 이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일터에서 내쫓겠다고 한다. ‘저성과자 해고’라는 제도를 통해.

가뜩이나 일자리도 부족한데 자리 꿰차고 앉아 있지 말라는 거다. 일을 못하면 노동의 기회를 박탈해 버리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도대체 ‘일못’(일 못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일잘’(일 잘하는 사람)이란 또 어떤 부류냔 말이다. 우리가 동의한 바 없는 이상한 기준이 사람들의 삶을 등급화하고 있다. 마치 한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사회는 어떤 기준으로 ‘일못’을 분류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스스로 ‘일못’ 또는 ‘일잘’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자.


일 못하는 게 내 죄냐, 너희 죄냐

“회사에서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내지 못했으니까요.” 김은지(가명 30대 초반) 씨가 스스로 ‘일못’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5년간 몸담았던 출판사를 때려치우고 지금은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회사를 때려치운 이유가 뭐냐고? 더는 일못으로 살기가 싫어서다.

그녀도 한때는 ‘일잘’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첫 직장이었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의 경계 없이 일했다. 야근도 곧잘 했고, 저자를 위해서라면 주말도 반납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그렇게 애쓰는 것을 당연하게만 여겼고,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적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 애쓰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업무와 거리 두기를 했다. 그러다가 선배들의 눈 밖에 났다. 뒤에서 선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는 되게 자기만 생각하는 애야.’ ‘쟤는 우리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없어.’

지난해에는 출판사가 매출 부진을 겪었다. 김 씨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선배들은 매출 부진의 이유를 김 씨 같은 후배들이 빠릿빠릿하게 일을 하지 못한 탓으로 생각했다. “노골적으로 나가라고는 안 해요. 조직 운영이 힘든 상황인데, 네 능력이 뛰어나 보이지도 않고, 우리 조직에 맞는 사람 같지도 않다고 은연중에 압박을 주죠. 사람을 궁지로 모는 느낌이랄까요.”

김 씨의 회사에도 ‘일잘’은 있었다. 종일 사무실에 붙어 있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사람. “나 주말에도 나와서 일했잖아.” “나 또 어제 야근했어.” 그의 야근 자랑은 늘 뿌듯함으로 충만했다. 김 씨에게 물었다. “그런 일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김 씨의 대답은 단호했다. “완전 민폐죠. 자신 때문에 전반적인 노동의 질이 저하되는 것도 모르고.” 그녀가 생각하는 일못과 일잘의 기준은 무엇일까? “일잘은 자기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어필하는 사람이죠. 일못은 자기를 굳이 어필하려 하지 않거나 주변의 동료를 돌보면서 가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20대 초반. 렌터카 업체에서 관제사로 일하는 강민호(가명) 씨. 그가 자신을 ‘일못’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잦은 이직’ 때문이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이른 나이에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공단에서 4개월을 일하다 통신사 고객 센터에서 3개월을 일했고, 다시 처음의 직장으로 되돌아가 또 몇 달간 일을 했다. 지금의 렌터카 회사에 입사한 지는 1개월 남짓.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도 일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그의 잦은 이직이 업무 능력 때문이었던 걸까?

첫 번째 직장에서 그의 고용 형태는 단기 인턴이었다. 두 번째 고객 센터에서의 일은 감정 노동을 요하는 고객 응대 업무였다. 휴대 전화를 판매하고 성과를 내야 했다. 눈치 보여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불쾌한 일도 더러 있었다. 상대적으로 노안이라는 강 씨. 팀원은 20대 초반이라는 그의 나이를 믿지 않았다. 신분증도 보여 줬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스물셋이면 어떻고 서른셋이면 어떻습니까. 제가 거기서 나이 속인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냐고요. 정말 기분 나빴습니다.” 불쾌한 나머지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가 면박을 당했다. 억울했다.

자의든 타의든 이직의 이유는 분명했다. 하지만 사회는 이직이 잦은 이들에게 ‘끈기가 없다’거나 ‘나약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강 씨는 지금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자신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로 비유하기도 했다. 강 씨처럼 상사에게 예쁜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은 회사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된다. 팀장이 말했다. ‘너는 사회성이 부족해. 선배한테 음료수도 갖다 주며 아쉬운 소리도 좀 하고 그래야 사회에서 버틸 수 있어’라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잘’의 기준. 강 씨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1년 차 방송국 조연출 이민호(가명 20대 중반) 씨. 그의 주 업무는 ‘짐 들기’다. 가장 비싼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짐을 들고 있다. 촬영 스케줄을 확정하고 촬영이 끝나면 영상을 컴퓨터에 옮기는 일 등 모든 잡무 처리도 그의 몫이다. 원래는 프로그램 구성 및 예고편 제작 등의 업무도 주어지지만 아직 ‘짬’이 안 된다. 그런 그가 스스로 ‘일못’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매일 피디에게 욕을 들어 먹기 때문. “담당 피디님이 성격 좋기로 유명해요. 그런데 저는 엄청 혼납니다. ‘넌 방송할 애가 아니다’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담당 피디는 이 씨에게 ‘그것도 모르냐’고 분노를 한다. 하지만 어쩌란 말이냐. 처음 해 보는 일인데. 이 씨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하지만 가끔은 혼돈에 휩싸인다. “전 피디가 시키는 대로만 하거든요. 그러면 안 시켜도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왜 시키는 대로만 하냐고 뭐라고 해요. 그래서 내 판단에 따라 일을 하면 왜 혼자 판단하느냐고 뭐라고 하고. 그래서 또 물어보면 일일이 물어보지 말라고 뭐라고 해요.”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방송 스케줄 때문에, 이 씨는 그 누구에게도 업무 지도를 받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조연출에게 가장 필요한 업무 능력은 ‘눈치’다. 그리고 선배 복도 중요하다. “제 동기의 담당 피디는 조연출을 벌레 취급했어요. 배우지도 못하게 차단하고. 방송 쪽은 워낙 성격들이 안 좋아요. 그래서 저는 후배에게 일일이 알려 주는 선배가 될 거예요.” 이 씨의 꿈은 소박했다.

‘일잘’의 ‘부심’, 하지만 그들도 힘들다

“사람들이 저를 에이스라고 부릅니다.” 목소리에 당당함이 묻어났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 인사과에 근무하는 최성종(가명•30대 초반) 씨. 인사과도 다 같은 인사과가 아니라고 했다. 인사과 안에서도 핵심 부서에 근무하는 그의 별명은 바로 ‘에이스’. 스스로 ‘일잘’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시야가 넓고 생각이 깊은 편이에요. 상사가 원하는 걸 잘 캐치하고요.” 스스로에 대한 거침없는 호평에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그러자 그는 더욱 진지하게 자신을 어필했다. “저 같은 경우 일을 잘하니까 해외 출장도 많이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지고 네트워크가 넓어지고 일이 잘 풀리는 거예요. 다른 동료가 자장면을 만들고 있다면 저는 코스 요리를 만들고 있달까.”

그에게 ‘일 못하는 사람’의 기준을 물어봤다. 대답은 명쾌했다.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딴소리를 하는 사람이죠.” 실제로 그렇게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느냐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원들의 업무 능력은 사실 ‘고만고만하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업무에 얼마만큼 혼과 정성을 불어넣느냐다. 그는 보고서 하나 만들 때도 혼신의 힘을 다한다고 했다. 직원들의 업무 평가를 담당하는 부서장은 늘 그에게 최고 등급을 매긴다. 부서장한테만 잘 보인다고 다가 아니다. 동료끼리도 고과를 매기는 까닭에 동료와의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인사 고과는 곧 월급과 직결돼요. 경쟁을 할 수밖에 없죠.”

에이스인 그도 경쟁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회장 아들이거나 하다못해 집에 돈이 정말 많은 게 아니면 다들 이렇게 살 수밖에 없잖아요. 더 성실하게, 더 열심히, 더 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죠.”

정보 통신 업체의 임원 최보훈(가명 50대 중반) 씨는 명예퇴직과 정리 해고의 칼바람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남보다 더 오래, 더 많이 일했다. 이십여 년 동안 매일 가장 먼저 출근했다. 요즘도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선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사무실에서 홀로 일정을 짠다. 그리고 그 일정을 흐트러짐 없이 소화한다. 그의 수첩에는 해야 할 일들이 시간대별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사소한 메모 하나도 흘려 쓰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는 혹독한 정리 해고 칼바람을 이겨 낼 수 있었던 비결로 ‘성실’을 꼽았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그가 속한 팀은 다른 팀보다 많은 성과금을 챙겼다. “열심히 하는 개인은 팀의 분위기를 살린다”가 그의 지론이었다.

최 씨의 직장에선 상사에 의한 평가, 부하 직원에 의한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S급부터 시작해 A, B, C, D 순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D급 이하는 흔히 말하는 저성과자로 분류돼 퇴출 대상이 된다. 그는 “목표를 다 채우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준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증거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척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기준을 척 하고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런 그도 성과 평가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있다. 최 씨는 “사실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크게 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줄곧 성과 평가를 했다. 자연스레 평가 기준이 왜곡됐다. “학연, 지연, 연줄 같은 것이 과도하게 개입돼 조직 시스템을 훼손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진정한 의미의 재교육이 이뤄지고, 적성에 맞는 부서로의 재배치가 이뤄져야 하지만, 노동자 퇴출이라는 의도로 재교육 프로그램이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후배들에게는 ‘롤 모델’로 존경받는 임원이자, ‘일잘’의 표본인 그가 조심스럽게 고백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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