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를 향해 총을 겨누다

한국판 ‘배틀 로얄’이 시작됐다

“노동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 4.13 총선 후 박근혜 대통령의 첫 입장 표명이었다. 이 정도면 집착 수준이다. 지난해 노동 개혁으로 노동계와 번번이 날을 세운 정부였다. 시민 사회의 반발에도 시달렸다. 결국 총선에서 참패했지만 노동 개혁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흘 뒤에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나섰다.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기어이 현장에 안착시키겠다고 했다. 총선 결과를 숨죽이며 지켜본 기업들의 손에 다시 칼자루가 쥐어졌다. 이미 현장에서는 알게 모르게 쉬운 해고가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공직 사회까지. 우선은 눈엣가시인 반골 세력부터 없애자는 취지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까지, 대책 없이 밀고 들어오는 쉬운 해고

2016년 4월 19일. 노조 파괴 사업장인 만도(주)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회사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날이었다. 마감 세일에 몰려든 쇼핑객들처럼 희망퇴직자가 줄을 이었다. 결국 회사는 4시간 만에 신청을 중단시켰다. 조금 뒤 회사는 선착순 10명만 더 받겠다면서 ‘쇼’를 벌였다. 최종 85명이 희망퇴직 구매에 성공했다. 이보다 더 핫한 상품은 없었다.

회사는 지난해 말, 만도노조(기업 노조․교섭 대표 노조) 측에 ‘희망퇴직’과 ‘저성과자 고용 해지’ 시행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받지 않았다. 현장에서 관리자들의 압박이 거세졌다. “근무 시간에 핸드폰 보면 감점, 체조 안 하면 감점, 근무 시간 전인데도 명찰 안 달면 감점, 안전화 꺾어 신어도 감점이래요.” 회사가 40여 개 항목으로 노동자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관리자들은 ‘희망퇴직’과 ‘저성과자 해고’를 언급하며 현장을 통제했다. 결국 기업 노조는 희망퇴직 시행안을 받았고, 회사는 저성과자 해고 시행안을 슬그머니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저성과자 해고는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좋은 미끼가 됐다. “희망퇴직이 마무리되고 나면, 회사가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하겠죠. 그때 타깃은 저처럼 민주노조에 있는 사람들이고요.” 만도(주)의 다른 복수 노조인 금속노조 만도지부 노동자 A 씨는 자신도 곧 저성과자가 될 것 같다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서비스업도 예외는 없었다. 전 세종호텔 노조위원장 김상진 씨. 그는 지난해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현업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객실 판촉, 홍보 업무를 하던 그에게 느닷없이 식당 서빙 업무를 하라고 했다. 연봉도 20%가 삭감됐다. 이에 항의하자 임금 지급이 중단됐다. 회사는 최근 들어 김 씨에 대한 징계 해고를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임금 삭감 문제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회사가 임금 삭감 근거로 제출한 자료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인사 고과표가 첨부돼 있었다. 평가 항목은 ‘역량 평가’와 ‘업적 평가’ 두 가지였다. 그는 서비스업 노동자였다. 성과를 직접 수치화할 수 없는 노동이었다. 평가 항목은 모호했고 주관적이었다. 회사는 조직 가치를 이해하는지, 최신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는지, 담당 업무를 얼마나 우수하게 처리했는지, 조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등으로 점수를 매겼다. “생전 보지도 못한 평가표였어요. 저와 함께 소송을 제기한 조합원들은 대부분 C나 D 같은 최하위 점수를 받았더군요.”

‘공정 인사’가 목적인 저성과자 해고가 전혀 공정하지 않게 악용되고 있다. 노조 파괴를 위한 기똥찬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서비스 업종에서도 올해부터 저성과자 퇴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에서도 노동조합 간부를 저성과자로 특정하는 등 노조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도 쉬운 해고의 바람이 몰아친다. HMC투자증권은 2014년 성과 변동제를 도입했다. 저성과자를 분류해 ODS(out door sales)라는 부서로 몰아넣었다. 그해는 회사에 노동조합이 설립된 시기이기도 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 대부분이 ODS 부서로 발령받았다. 회사는 그곳에서 전혀 해 보지 않았던 ‘방문 판매’를 하라고 했다. “1년 6개월 동안 ODS에 있어 보니 영업 기반이 단절돼요. 자신도 없어지고 차별을 받으니 자괴감이나 수치심도 커지고. 회사에서 우리를 방치하는 거죠.” 노명래 HMC 지부장의 설명이다. 생전 안 해 본 방문 판매를 하다 보니 KPI(성과 지표) 기준을 맞추지 못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급여가 삭감됐다. ODS 대상자에 대한 기준은 있지만 노동자는 실제 ODS 발령과 원직 복직 기준을 알지 못했다. 기준은 회사만 알고 있었다.

HMC투자증권 영업 사원 B 씨는 정부의 ‘쉬운 해고’가 자신들의 목을 더욱 옥죄고 있다고 말했다. “ODS팀은 앞으로도 보강될 것 같아요. 저성과자를 자율적으로 퇴출하려는 분위기죠. 정부의 쉬운 해고는 ODS와 맥락이 같아요. 성과가 안 좋은 노동자로 몰아 쉽게 퇴출하는 거죠.”

9년 전 비극의 세월로 되돌리려 하는가

사람들은 그들을 ‘철밥통’이라고 했다. ‘땡보직’ 주제에 세금만 축낸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공무원의 이미지는 늘 그랬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돌연사 하기도 했다. ‘저성과자 퇴출제’라는 것이 도입되면서부터였다.

2007년, 서울시는 ‘현장시정지원단’이라는 퇴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전체 공무원 중 3%의 인원을 강제적으로 퇴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해 서울시청 공무원 한 명이 돌연사 했다. 사망한 그는 퇴출 인원에 포함돼 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사인은 심근 경색이었습니다. 마라톤도 열심히 하고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던 사람이에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겠죠.” 서울시청 공무원 C 씨는 아직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섬뜩하다고 했다. 옆자리 동료 직원도 ‘현장시정지원단’에 포함됐다. 그는 조직에 해를 끼친다거나 일을 나태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골라내다 보니 그만 남았다. 여자였고,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C 씨는 퇴출 인력으로 뽑힌 그가 동료들에게 남긴 이메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고마웠습니다.”

지원단으로 선발되면 산업체 근로 체험과 농촌 일손 돕기를 했다. 강제 노역이었다. 극기력을 키워 주겠다며 호국 현장 체험, 국토 종단 도보 순례에 보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군대 유격 훈련도 이보다는 낫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2008년에는 농촌진흥청에서 퇴출제가 시행됐다. 퇴출 인력 선정 방식은 ‘다면 평가’였다. 상사 평가가 50%, 동료 평가가 50%를 차지했다. 기능직은 동료 평가가 100%를 차지했다. 누군가를 죽여야 내가 살았다. “평가 이후 조직이 아예 무너져 내렸어요. 동료들은 서로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갈라졌죠.” 농촌진흥청 공무원 D 씨는 그 당시 동료가 곧 ‘적’이었다고 고백했다. 어느 순간 사라진 옆자리 동료는 ‘퇴출 인력’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돌아왔다. 퇴출 인력으로 뽑힌 107명 중 60%가 스스로 퇴사했다. “아마 다시는 퇴출제를 시행하지 못할 거예요. 동료끼리 눈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심했어요. 심지어 관리자들도 그때 상처를 쉽게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계속 죽었다. 수원시는 2012년 ‘소통 2012’라는 퇴출제를 도입했다. 장애를 가진 수원시 공무원이 직위 해제된 후 자살했다. 2014년에도 교육 대상자로 지목된 수원시청 공무원이 저수지에서 자살했다.

퇴출제는 이미 실패한 제도였다. 하지만 퇴출제 악몽을 경험한 공직 사회는 정부 ‘노동 개혁’의 1차 타깃이 됐다. 공무원, 공공 부문부터 손을 봐야 민간에까지 저성과자 해고 제도가 확산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정부는 올해부터 공무원 근무 성적을 S•A•B•C 등 네 등급으로 분류해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겠다고 했다. 성과 미흡자를 상대로 직위 해제 절차를 밟겠다고도 했다. 공직 사회는 성과를 수치화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어 내기 불가능한 구조였다. 하지만 정부는 성과 등급 이의 신청 기간마저 3일 이내로 단축해 버렸다. “이미 IMF 이후에 공직 사회에 성과주의가 밀고 들어왔지만 정착되지 못했어요. 평가 기준에 신뢰가 없었거든요. 정부는 실제 표적인 대공장의 연공급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직 사회를 마루타처럼 다루고 있는 거죠.” 농촌진흥청 공무원 D 씨의 설명이다.

쉽고 무책임한 해고, 제재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매번 강조한다. “대다수 성실한 근로자는 통상 해고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극히 예외적으로 업무 능력이 낮거나 근무 성적이 부진한 노동자에게만 통상 해고가 적용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성실함’과 ‘업무 능력’에 대한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재량권은 사용주에게 있다. ‘쉬운 해고’에 정부가 제재하거나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성과를 계량화해 객관적으로 업무를 평가하기 어려운 업종도 상당하다. 고용노동부도 이를 인정하는 바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계량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다. 그래서 다면 평가 등을 통해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화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평가 모델을 개발하고, 영세 기업을 상대로 한 컨설팅 사업을 진행해 다수의 민간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업의 부실하고 주관적인 성과 평가 지표를 제재할 방법은 없다. 기업에서 부당한 인사이동을 강요하고, 표적 해고를 해도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업에서 자율적으로 (성과 평가를) 하는 건데, 정부에서 이를 제재할 수는 없다”며 “평가 체계가 공정하지 못해 해고됐다면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 부당 해고로 판명 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일단 해고된 뒤 나가서 법대로 하라는 거다. 쉽고도 무책임한 말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류주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정부의 의도는 정리 해고의 상시화에 있다”고 설명했다. “사용자들 입장에서 정리 해고 절차는 까다롭죠.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경영상 위기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니까요. 또한 쌍용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정리 해고는 사회적 부작용이 많잖아요. 현재 법 제도로는 상시적인 인력 감축이 불편하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인력을 감축하는 방안을 생각해 낸 거죠.”

올해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저성과자 해고 지침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왜곡된 방식으로 현장에 뿌리내릴지는 이미 예견된 바다. 류주형 국장은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대원칙이 역전될 것”이라며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은 고용 관계의 전반적 틀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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