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업, 나라가 돕는다?

워커스 9호 정부 취업 서비스 체험기



“아유, 이러고 있지 말고 밖에 나가 봐. 나라에서 죄다 도와주려고 저 난리인데 뭐 하고 있는 거야 얘는….” 백수로 뒹구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당장에라도 아파트 1층에 내려가 알림판에 나부끼는 안내지를 떼어 내고 싶었다. 동에서 시에서 그리고 나라에서 해 준다는 게 많았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첨삭해 주고 모의 면접까지. 여기에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을 위해 커리어 컨설팅까지 해 준다고 했다. ‘저게 다 무슨 도움이 된다고.’ 당시에는 무시했다. 국가의 서비스에 대해 미덥지 못한 마음이 컸고, 내가 국가보다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 나라의 서비스가 궁금해진 건, 많아도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위 취업 준비생(취준생)들은 이런 서비스를 여전히 거들떠도 안 봤다. 그 와중에 대통령은 자꾸 청년 얘기를 했다.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은 시정 연설에서 청년을 서른두 번이나 언급했다. 예산도 늘어났다. 정부가 올해 청년 일자리에만 쓰는 돈이 2조 1000억 원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분류하는 청년 일자리 정책은 총 14개 부처, 67개 사업이라고 한다. 이쯤 되니 정부가 도와주는 취업 서비스의 질이 궁금해졌다. 뭐가 달라도 다른 건 아닐까.

굴림체 10포인트의 미덕

지난 3일 고양이를 내세워 홍보와 마케팅을 잘하는 어느 시의 일자리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청년 취준생을 위한 일자리센터만의 특별한 혜택을 자랑했다. 자기 탐색과 입사 서류 클리닉, 면접 클리닉, 모의 면접까지 도와주는 ‘취업 사관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무언가 취업을 위한 안내와 다정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갔지만 주민 센터나 구청과 별다를 거 없는 모양새였다. 번호표를 뽑아 순서를 기다려야 했지만, 마침 대기자가 없어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주민등록증 주세요.”

“앉자마자 주민등록증부터 내야 하나요?”

“네.”

고용노동부 조회를 하려고 하나, 그렇다면 내가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 텐데 싶어 당황했다. 하지만 달라고 하니 건넸다. 아마도 워크넷(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에서 제공하는 구인‧구직 정보 사이트)에 구인 등록이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워크넷 등록이 되어 있으시네요” 라며 주민등록증을 건넨 구직 상담가는 내가 워크넷에 체크해 놓은 요청 사항을 다시 한 번 체크했다.

“어디 보자. 연봉 2400 이상 원하시고, 서울지역 근무 원하시고요. 관심 분야는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죠?”

“네 맞아요. 그런데 그보다 제가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 클리닉을 좀 받고 싶은데요.”

입사 서류 클리닉 서비스, 면접 클리닉 서비스는 당연한 건 아니었다. 일 년에 다섯 번의 기회가 있는 사관 학교는 3대 1의 면접을 통과한 15명에게만 주어지는 서비스였다. 취업을 위한 취업 사관 학교의 합격이 먼저인 셈이다. 이마저도 만 29세까지만 허용된 일이다. 남자의 경우 군대 복무를 감안해 31세까지 가능하다. 상담가는 경기도에서 청년을 ‘만 29세’까지로 한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의 범위는 만 34세까지다. 지난해 정부는 청년 일자리 사업 지원 연령을 15~29세에서 15~34세로 확대했다. 최근 첫 직장을 얻는 나이가 늦어짐에 따라 차별이 없도록 연령 기준을 확대한 것이다. 이것이 왜 경기도에선 시행되지 않는지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상담가는 그저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만 말했다. 한 번 더 입사 서류 클리닉을 요청했다. 개인적으로 요청하고 서류를 가져온 상황에서 따로 서류를 검토해 줄 수는 있다고 했다. 이것저것 묻고 요청해서 그런지 팀장이 ‘입사 서류’를 봐줄 거라고 했다. 팀장은 몇 년간 청년 취업을 담당하고 강의도 한 베테랑이라고 했다. 팀장은 작은 방으로 안내해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꼼꼼히 검토했다. 그리고 입을 뗐다. “일단 정답이 없는 문제이니만큼 제 개인적인 의견이에요. 서류의 글자 포인트와 글자체가 다 같은 건가요? 굴림체 10포인트를 권장해 드리고요. 자유 형식일 경우 줄을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죽 그어 놓는 게 어떨까요. 그게 지금보다 보기 좋을 거 같은데. 연락처에 이메일도 쓰셨는데 한 칸 당겨서 전화번호 줄에 함께 맞추면 좋을 거 같네요.”

정확히 굴림체 10포인트로 쓴 이력서였다.

“자기 소개서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잘 쓰셨지만, 성장 과정이나 성격의 장·단점을 쓰셔야 할 거 같아요. 부모님이 뭘 하신다는 걸 드러내는 게 아니라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고, 그게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말씀 드리는 거예요.”

클리닉이 끝났다. 대학 4학년 때 ‘취업 강좌’를 들었다. 외부 전문 강사가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취업 컨설팅을 해 주는 강좌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당시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자기 소개서에 관한 것이다.

“성장 과정이나 성격의 장‧단점을 쓰는 건 정말 촌스러운 방식이에요. 그걸로 어떻게 눈에 띄겠어요.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언급하지 마세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센터를 나왔다.

자기 소개서 첨삭에 대한 기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설치한 다른 위원회로 돌렸다. 청년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청년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기획·조정·평가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한 청년의’ 단체인 셈이다. 이곳은 청년 창업과 취업에 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취업과 관련해 제공하는 서비스 중 ‘자기 소개서 클리닉’이 눈에 띄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사이트에 자기 소개서를 올려놓으면 컨설턴트가 답변을 다는 식이다. 이틀을 넘기지 않고 컨설팅이 완료됐다.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자기 소개서를 올렸는데 ‘자기 소개서가 일부분만 있다 보니, 전체 글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일일이 첨삭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소감이 달려 있었다. ‘경력 위주의 내용이 많으니 그 안에서 배운 경험과 노하우를 조금 더 녹여 쓰라’는 것과 ‘경험을 일관되게 정리해 이를 바탕으로 경험과 실적, 느낀 점을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같은 말이었다. 같은 말을 두 번에 걸쳐 강조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를 두고 클리닉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성의 없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하루에 많아야 3개의 자기 소개서 첨삭을 부탁하는 게시판이었고 그마저도 내가 부탁하기 전 10일간은 첨삭 요청도 없었다. 컨설턴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7명의 컨설턴트가 돌아가며 맡는다고 해도 이 정도 답밖에 못 하는 걸까. 자기 소개서는 서류 전형에서 구직자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자기 소개서를 타인에게 보이기도 쉽지 않다. 민낯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고 민망한 게 구직자들의 당연한 마음 아닐까. 그럼에도 게시판에 이를 올리고 첨삭을 부탁하는 것은 그만큼 절실한 것 아닐까. 과연 이 정도의 컨설팅을 기대한 것일까. 돈을 내고 받는 것이 아닌 무료 서비스이니 이 정도에 만족해야 할까. 전문 컨설턴트 이력이 무색한 컨설팅이었다.

말하는 연습, 딱 거기까지

수도권의 한 지자체는 온라인으로 취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최고의 여성 특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소개된 곳이다. 이곳에서 일대일 취업 상담이 가능하다. 눈에 띄는 건 온라인 모의 면접 서비스였다. 일대일 취업 상담을 신청하면 ‘나의 취업 상담사’가 정해진다. 신청한 다음 날 그는 메시지를 통해 취업 상담에 대해 안내를 했다. 일대일 취업 상담은 온라인으로 질문과 요청 사항 등을 적어 두면 평일 48시간 이내에 상담사가 답을 다는 식이다. 모의 면접을 신청하니 그에게 연락이 왔다.

면접을 위해서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야 했다. 컴퓨터에 화상 카메라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조건이 안 될 경우 스마트폰으로만 진행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에 어플리케이션을 받고 로그인을 했다. ‘취업 상담실’을 클릭하면 예약한 상담사의 상태가 뜬다. 상담사도 온라인에 접속해야 진행이 가능하기에 미리 시간을 맞춰야 한다. 상담사와 약속한 시간에 접속을 했지만 연결이 되는데 약 10분 정도 걸렸다. 상담사와 접속이 원활한 것은 아니었다. 헤드셋을 쓴 상담사가 휴대 전화 화면에 얼굴을 드러냈다. 상담사는 상냥했다. 상담사는 미리 첨부한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보고 ‘이직 사유’와 ‘입사하고 싶은 이유’, ‘입사 후 포부’, ‘경력’ 등 6개의 질문을 던졌다. 그 사이 두 번 접속이 끊겼다.

“경력직이라서 그런지 정말 답변을 잘하시네요. 훌륭하세요. 제가 모든 업무나 회사를 알 수는 없어 전문적인 상담이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면접 질문 적중률이 100%가 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도움이 되실 거예요.”

상담가의 말처럼 온라인 면접은 ‘말하는 연습’을 하는 정도로 활용하면 좋은 수준이다. ‘대화를 통해 내 말을 정리해 보는 기회’ 정도다. 전문적인 코멘트나 날카로운 질문을 기대하기보다는 면접을 앞두고 긴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 단절을 겪고 오랜만에 면접을 보는 사람에게 적절한 서비스다. 다만 접속은 원활하지 않다. 총 3번 접속이 끊겼다. 마지막 한 번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결국 대화를 종료했다.

“다정하고 사귀기 쉽게 보이고 싶으면” 서울시의 성차별적 면접 가이드

면접 가이드는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센터 홈페이지에는 구직 면접 요령 등을 안내하는 게시판이 있다. 문제는 여성의 경우다.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 게시판에 올라온 ‘구직 면접을 위한 옷차림 – 여성의 경우’ 게시물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① 보통 단정한 블라우스 위에 자켓을 입고 스커트를 입는 것이 적절하다. 무엇을 입든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

② 색상을 선택할 때에는 어떤 인상을 주고 싶은지를 미리 생각하는 것이 좋다. 보통 남색, 회색, 또는 검은색은 진지하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흐리거나 어두운 색들은 수수하고 믿음직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다정하고, 사귀기 쉽거나 혹은 창조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으면 따듯한 색상이 좋다.

③ 만약 악세사리를 사용한다면, 너무 화려거나 번쩍거리지 않고 품위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짧은 스커트, 비치거나 가슴이 깊게 파인 블라우스, 혹은 주렁주렁 매달린 악세사리 등과 산만한 차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④ 전문적으로 보여야지, 유혹적으로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화장을 잘 하면 세련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성의 경우 스커트를 적절한 면접 의상이라고 안내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짧은 스커트나 비치거나 가슴이 깊게 파인 블라우스 등은 입지 말라고 조언한다. 유혹적으로 보여선 안 되기 때문이란다. 물론 면접 복장의 ‘남성의 경우’를 따로 만들어 안내하지는 않는다. 성을 따로 구별해 제안하는 가이드에 완벽하게 성차별적인 조언을 곁들인다.

특색 없는 강연

박근혜 정부가 ‘청년’에게 관심이 많기는 많다. 지난해 말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을 지지하기 위한 재단이 만들어졌다. 대기업 실무자와의 만남, 중견·중소기업 채용 대행 등 대졸 구직자를 집중적으로 돕는다는 곳이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펀드로 운영되는 재단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제안해 출시된 이 펀드는 초기에 은행 직원을 강제로 가입시켜 논란이 있기도 했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한 그룹 임원의 강의를 신청했다. 다른 청강자 40여 명과 함께 약 90분간 강의를 들었다. 외국계 회사와 지금의 직장에서 발군의 능력을 자랑하는 강사였다. 그는 ‘선발 및 평가’, ‘조직 운영’, ‘인재 개발’, ‘보상’ 등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강의를 진행했다. 대부분 그의 경력에 대한 내용이었다. 강의를 다 듣지 않고 나왔다.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해 진행하고 있다.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자기 소개서를 컨설팅하고, 면접을 돕는다. 매달 유명한 CEO의 강의도 진행한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청년 취업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일까. 각기 다른 네 곳에서 다른 서비스를 이용해 본 후 강한 의문이 들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마음의 위안부터 현직에 있는 이들의 조언, 서류와 면접을 위한 충고까지 다양한 도움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 중에서 서류, 면접 등 실질적인 도움을 자신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각기 다른 재단 혹은 위원회, 단체를 만들어서 진행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에게 도움이 될까. 서비스를 체험했지만 어떤 도움인지 의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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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리 기자/ 사진 정운 기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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