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성공하고 싶다. 그런데 성공이 뭔지 모르겠다

워커스 9호 청년패널-“실패는 그냥 실패 아닌가요. 실패했는데 뭐가 괜찮겠어요”



[패널 소개] 

지원 어려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소질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무용을 반대했고 체격 조건도 발레리나에 적합하진 않았다. 발레를 그만두면서 어린 나이에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의 첫 실패가 준 교훈이다.

윤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던 기억이 없다. 성취욕이 강하지 않다. 욕심이 없으니 지금까지 삶에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주저앉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도 아직 없다. 욕심나는 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목표를 낮출 줄 안다.

정찬  전공 선택과 진로, 학풍까지 고민해 진학할 학교를 선택한 현명한 고등학생이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은 그 선택을 ‘실패’라고 했다. 아직은 자기가 선택한 일상의 ‘성공’이 모여 삶의 성공을 이룬다고 믿는다.

장훈  인생의 가장 큰 실패를 묻자 학과 구조조정에 맞서 총장실을 점거했던 투쟁에서 패배한 것이라고 답했다. 반대로 성공을 묻자 최근 투쟁의 성과로 얻어 낸 학교 이사진의 총사퇴라고 답했다. 삶의 목표와 판단이 명료하고 정확한 쿨가이.

윤희  엄청난 액수의 돈을 들여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도 못 하고 사는 처지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을 딱히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요즘은 ‘내가 정말 실패한 삶을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현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삶이라고 여긴다. 지금 하는 일이 딱히 돈을 많이 벌거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세상이 말하는 기준의 성공이라면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도 했다. 흔들릴 때마다 죽게 아픈 걸 보니 난 아무래도 아직 청춘인가 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말해 주셨는데, 성공의 아버지가 가정 환경이나 운, 부모님의 재력, 학벌이라는 말은 왜 해 주지 않았을까. TV에 나오는 대기업의 광고들은 실패를 거듭하면 결국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꾸 도전부터 하란다. 그러면 결국 성공한다고. 그런데 도대체 성공이 뭘까. 20대 정규직도 정리 해고하는 그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 실패는 뭘까.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는 것? 남들 버는 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것?

윤희     엄청난 액수의 돈을 들여 대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혹은 생산적인,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아요.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저한테 ‘할 수 있을 것’이라거나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격려를 해요. 어떤 친구들은 반쯤 농담이긴 해도 “학교 다닐 때 뭐하고 이렇게 나이 들도록 취업을 안 했냐”고 말하기도 하고요. 지금까지는 솔직히 주위에서 하는 말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진 않았거든요. 예전에는 이런 제 상황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스스로 마음이 흔들려서 ‘내가 실패한 건가, 결국 이렇게 아무것도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좀 상처가 돼요.

지원      애초에 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사범대에 다니게 됐어요. 아빠는 제가 적성과 맞지 않는 학과를 선택했다며 안타까워하셨어요. 아빠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제가 했던 선택 중에 가장 실패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하셨거든요. 전 그 소리가 참 듣기 싫었어요. 좋든 싫든 간에 어쨌든 전 학교에 다니고 있고 제가 사범대를 다녀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아빠가 그런 말을 하면 힘이 빠져요. 어떤 의도든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 그 삶에 대해 함부로 규정해서는 안 될 거예요.

정찬     고3 때 대학교 진학을 고민하다 우선 제가 가고 싶은 학과를 먼저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대학에 가서 대충 때우는 게 아니라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고 진로도 함께 고려해야 했죠. 하지만 대부분의 반 친구들은 흔히 말하는 간판을 위주로 봤기 때문에 학과는 점수에 맞춰서 가는 경향이 매우 강했죠. 저는 정말로 학풍이 중요했어요. 그때 알기로는 한국에 대표적인 진보적 학풍을 가진 대학이 세 군데 있었어요. 그중에서 제가 다닌 학교로 진학을 했고요. 전 성적으로는 소위 말하는 인서울이 가능했지만 제가 가고 싶은 학과와 학풍에 딱 맞는 학교는 인서울이 아니었어요. 저도 잠깐 고민은 했지만 바로 그 학교로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죠. 저는 지금도 그 선택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 대부분은 경악하셨죠. 그분들 나름의 진학 관리 업무 차원에서는 제 진학을 ‘실패’라고 규정하는 느낌을 받았죠.

서점에 온통 자리 잡은 자기 계발서는 날 위로하겠다면서 실패해도 괜찮다고 한다. 결국 성공하게 될 거라면서. 하지만 그 말은 결국 언젠가는 성공하라는 말 아닌가. 미래가 불안하고 지금의 가난이 힘겹다고 하면 이 시기를 자양분 삼으라고 격려한다. 젊을 때는 다소 실패를 경험해 봐야 한다고.

윤희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개똥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실패는 그냥 실패 아닌가요. 실패했는데 뭐가 괜찮겠어요. 젊어서는 다소 실패해 봐야 한다는 조언은 젊어서 힘들게 생활했으나 결국엔 사회적 기준에 따른 성공을 이뤄 낸 사례를 근거 삼아 말하는 거 같은데 그런 사례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리고 실패를 딛고 힘들게 성공했다는 인생 루트의 상정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정상적인 루트로 가지 못한 낙오자로 보려는 태도인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삶의 깊이가 더 깊어진다든지, 자신의 한계와 바닥을 알게 된다든지 실패의 시간을 통해서 얻는 게 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마음이 왜곡될 수도 있을 거예요.

지원     정말로 실패해도 괜찮으면 좋겠어요.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해 보고 겪어 봤을 때 그래도 돌아갈 곳이, 다시 시작할 여유가 주어진다면 실패해도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의 세상에선 실패했을 때 데미지가 너무 커요.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래서 젊었을 때 다 해 봐야 한다는 소리는 정말 무책임한 소리라고 생각해요. 실패해도 괜찮을 여력이거나 조건이 되는 사람들에게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겠죠.

현우     실패를 딛고 다음에 꼭 성공하려면 그만한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해요. 사업에 실패해도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부모의 재력, 시험에 실패해도 또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하는 부모의 재력. 개인이 돈을 모아서 그 돈으로 사업에 몇 번씩 실패한 후 다시 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죠. 이 사회에서.

장훈     어른들이 표현을 잘 못해요. 마치 자기랑은 상관없는 남 일 말하듯이 하니까요. 그래서 위로가 잘 안 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맞는 말인 경우들이 있어요. 무조건 꼰대들의 잔소리로 치부하면서 거부하지 말고 거기서도 도움이 되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으면 더 좋겠죠. 처음부터 하는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하면 좋겠지만, 처음이기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몰라요. 모든 일이요. 그런 건 옆에서 말해 줘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런 건 실패하고 부족한 부분과 중요한 부분을 신중하게 들여다보면서 다시 시도할 수 있게 되겠죠. 어른들이 말하는 실패를 딛고 성공하라는 말은 그런 의미겠죠.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은 수능 시험에서 1, 2등급을 받으면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고 3, 4등급을 받으면 치킨을 튀긴다고 했다. 5, 6등급을 받으면 치킨을 배달해야 한다고도. 난 수능 시험에서 꽤 높은 성적을 받았지만 치킨 시켜 먹을 돈이 늘 있지는 않다. 그런데 수능 1등급을 받고 서울대를 나와서 치킨을 배달하면 안 되나?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니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노오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공하려면 ‘노오력’을 하라고. ‘노오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보다 정말 ‘노오력’을 하면 이 헬조선에서도 성공을 할 수 있나? 아니, 정말 그렇게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서 견뎌 성공하는 게 삶의 진실인 건가? 

정찬     전 no pains, no gains라는 말이 이중적으로 와 닿아요. 순수하게 다른 부가적인 조건을 제외하고 개인의 노력이라는 관점에서만 봤을 때는 그 말이 정답처럼 맞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자기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현실의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는 노력을 통해 성과를 얻으라는 말이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거나 양극화나 부당한 대우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해요. 사실 좋은 듯 보이지만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해요.

지원     성공은 미래의 일이고 ‘너무너무 힘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현재의 일이죠. 미래의 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전 현재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노력이 나를 옭아매고 갉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성공에 도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고민할 것 같아요. ‘성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것 같고요.

윤희     그렇지만 전 ‘노력’ 자체의 효과에 대해서는 믿는 편이에요.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힘들어도 견뎌 내야 하죠. 그보다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그 힘든 과정을 저절로 견디게 될 거예요. 노력 자체는 긍정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윤규     노력의 의미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디는 것이라면 전 중간 어디쯤인 것 같아요. 저는 게을러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 쉬운 방법을 택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원하는 것의 기준이 낮아지는 일이 생겨요. 하지만 그렇다고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목적 자체가 흔들릴 정도까지 타협하진 않아요.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도 알고 있고 그러면 ‘최소한’은 하죠. 당연히 사서 고생하기는 싫고요. 만약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힘들면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목적지로 가는 길이 하나일 리 없잖아요.

현우     원래 노력은 힘들어요. 견디는 것도 일종의 실력이겠죠.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면 노력을 하는 게 당연해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 과정을 견뎌 내야겠죠. 전 노력하면 원하는 바를 꼭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오력을 하면 성공을 꼭 할 수 있든, 아니면 타고난 재주와 부모의 재력으로 적당히 노력하고 성공하든 어쨌든 세상은 무조건 성공하라고 말한다. 결론은 성공에 닿아 있다. 그러니까 실패도 괜찮다고 말하고 노오력도 해야 하는 거다. 자기 계발이니 힐링이니 하는 말들도 결론은 성공이다. 치유받아서 나중엔 성공하고, 자기를 계발해서 나중엔 성공하라고. 그런데 우리는 정말 성공을 해야 하는 걸까.

정찬     한국은 명문고-명문대-대기업의 코스나 혹은 “돈만 많으면 장땡이다!”라는 전형적인 물질 만능주의로 이어지는 단일한 기준이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는 사회예요. 성공해야 한다는 강요에는 개인의 발전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가장한 권위주의가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장훈     견딜 수 있다면 그만큼 노력하고 자기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충실한 삶을 살면 그건 자기의 성공이겠죠. 세상이 강요하는 성공이 아니라. 어쨌든 삶은 성공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사람이 뭔가 성취하면서 살아야 살맛도 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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