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 계층에 부담 지우는 SH공사

이것이 어떻게 주거 복지란 말인가

A 씨에게 임대 아파트는 꿈의 집이었다. 적은 돈으로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곳은 임대 아파트밖에 없어 보였다. 큰 평수는 생각도 안 했다. 작은 평수면 족했다. 문제는 임대료였다. 식당에서 일해 매달 월세를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만 할 뿐 감히 신청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SH공사에서 공급하는 임대 아파트는 보증금을 늘려 월 임대료를 줄이거나 전세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마침 살고 있는 지역에 입주자 모집 공고가 나 신청을 했고 천운이 따랐는지 높은 경쟁률에도 당첨이 됐다. 60 평생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뻤다. “꿈을 이루었다”며 입주할 날만 손꼽으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SH공사에서 앞으로 100% 전세 전환은 안 된다는 안내문을 보내온 것이다. 이후 계약자들은 임대료의 60%까지만 보증금으로 전환할 수 있고, 이미 전세 전환을 한 사람들도 추가 인상분에 대해서는 월 임대료로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집주인 빚 많으니 세입자 월세 내라고?

SH공사가 부채를 이유로 임대 주택에 대한 전세 전환을 금지했다. 입주민들의 월세(월 임대료)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월세 이자율은 연 6.7%다. 기존에 임대 보증금을 추가 납부해 전세로 전환했던 입주민도 재계약 시 인상분 중 임대료 상승분은 월세로 내야 한다. SH공사가 지난 4월 말께 임대 아파트 입주 예정자와 입주민에게 보낸 ‘상호 전환 제도 변경에 대한 안내’에는 “기존에 전세 전환한 세대는 추후 임대료가 인상되면 인상분은 추가 전세 전환이 불가하며, 월 임대료(월세)로만 납부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안내문에는 변경 사유도 담겨 있다. “임대 보증금이 회계상 부채로 계상돼 외부로부터 공사 부채가 과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임대 주택 건설 시 사용한 주택 기금에 대한 이자와 임대 주택의 수선 유지비 등 지출이 많아 최소한의 임대료 수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빚은 많고 돈은 없으니 월세를 받겠다’는 것이다.
제도 변경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A 씨는 “입주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대료를 꾸준히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관리비에 임대료 부담까지 더해진 ‘임대 아파트’는 그가 꿈꾼 ‘임대 아파트’와 많이 달랐다. A 씨는 “아무리 다른 데보다 싸다고 해도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이 최저임금 받아서 사는 사람들인데 월세 내고 관리비 내면서 어떻게 먹고사냐. 임대 아파트조차 못 들어가고 더 열악한 집으로 또 밀려날 수밖에 없다. 갑갑하다”라고 말했다.
SH와 LH 공급 아파트 입주민과 청약 예정자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SH공사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B 씨는 “누가 꼬박꼬박 월세가 올라가는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려고 하겠느냐. 갑작스럽게 주택 정책을 바꾸면 어떻게 하나. 공공 임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비판도 있다. SH공사는 서울시가 설립한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한 거주자는 “방금 박원순 시장 트위터에 글을 보냈다. 서민의 편에서 정책을 해야 할 공기업이 지들 편한 대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서울시와 SH공사는 공사 부채와 손실을 강조했다. SH공사는 2015년 3분기 기준으로 총부채가 16조 7966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임대 보증금 부채는 6조 3577억 원이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그동안 SH공사에서는 임대 주택 입주민의 주거 안정과 목돈 마련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면서 현재까지 전액 전환 방식을 고수했다. 하지만 부채가 날로 증가해 양질의 임대 주택 서비스 제공이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전환 제도를 진두지휘했다고 밝힌 SH공사 공공임대부 관계자 역시 공사의 손실을 강조했다. 그는 “임대 아파트를 공급, 유지하면서 현금이 많이 들어갔다. 게다가 임대 보증금은 회계 원칙상 채무로 잡혀 있어 갈수록 SH공사에 대한 기업 평가가 떨어지고 있다”며 “입주민들이 전세만 유지하면 들어오는 돈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아파트는 노후하고 있어 보완, 유지비는 점점 늘어난다. 임대 사업만 봤을 때 1년 적자가 3000억 원인데 이걸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와 SH공사의 설명에 공사가 지닌 공공성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동안 강조해 온 ‘주거 복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말로만 주거 복지, 행태는 ‘갓물주’

주거 복지는 서울시가 집중해 온 분야다. 겉으로는 그렇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말 열 곳의 ‘주거복지지원센터’를 열었다. 주거 약자의 주거 안정을 높이기 위해서다. 성과도 자랑했다. 지난해 서울시는 주거복지센터가 2014년 한 해에만 보증금, 월세, 연료비 연체 등 어려움을 겪는 위기 가구에 총 1,169건, 3억 9000만 원의 긴급 주거비와 연료비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공공 임대 주택, 주거비 지원 제도 등 주거 취약 계층에 대한 주거 복지 관련 상담도 모두 6,483명에게 총 1만 1162건 제공했다. 주거 복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별도의 ‘주거복지팀’도 운영하고 있다.
SH공사도 서울시의 주거 복지에 장단을 맞추듯 ‘주거 복지 서비스 전문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혀 왔다. 변창흠 SH공사 사장은 최근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싼 집만 지어 줬다고 제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주거 복지 관련 서비스를 총체적이고 전문적으로 해 주는 그런 역할을 설정했고 그게 비전”이라고 말했다.
SH공사는 올해 초 24명의 청년 주거 복지 상담사를 채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서울 시민의 주거 문제를 상담하고 주거 취약 계층의 실태를 조사한다. 서울시와 SH공사 모두 도시 개발에 그치지 않고 주거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SH공사의 제도 변화처럼 실제 정책은 주거 취약 계층에게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대표는 “SH공사의 임대 아파트에는 주거 취약 계층이 상당하다. 평균 소득 50% 이하의 조건이라는 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돈 만 원, 천 원도 큰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누릴 수 있었던 최소한의 전세 제도를 월세로 바꾸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SH공사가 공급하는 국민 임대, 재개발 임대에 1순위로 신청하려면 월 소득이 도시 근로자 평균 소득 50% 이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임대 모집 결과 1순위에서 마감되는 것으로 볼 때 임대 주택 입주민들의 소득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재정 투여 없이 입주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은 복지가 아니다. 정부 역시 SH에 일방적으로 부채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임대 보증금을 부채로 잡는 방식도 변해야 한다”라며 “국토부나 정부 역시 근본적으로 주거 복지에 대한 초점을 바꿔야 한다. 공공 주거 기금을 조성해서 어렵게 사는 이들에게 직접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주자들은 이럴수록 SH의 존재 의미가 희미해진다고 말한다. 현재 재개발 임대 주택에 살고 있는 C 씨는 “집주인인 SH가 ‘내 빚이 많으니 앞으로 월세 내. 싫으면 나가시든가’라고 통보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 국민이 전세난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정부가 전세를 확대해 주택 시장의 연착륙을 모색해도 모자란 시점에 거꾸로 월세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세입자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수익만 생각하는 ‘갓물주’들과 SH가 뭐가 다르냐.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SH의 존재 이유에 역행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양만 늘린다고 전부가 아니야

SH공사 측에서 월세를 확대하는 이번 정책 변경의 사유로 부채와 더불어 내세운 것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임대 주택 공급”과 “임대 주택 서비스의 질 향상”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임대 주택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해 임대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단지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이번 정책 변화는 한국 주거 복지의 한계가 드러난 일”이라며 “SH공사가 단기간 운영 수입이 아닌 임대 주택이 지닌 사회 정책적인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전한 주거를 공급하는 동시에 임대 주택을 매개로 자산 형성을 돕고 다른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의미다. 김 위원장은 “주택이 단순한 상품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순간 주거의 공공성은 무너진다”며 “주택 문제는 적극적인 탈 시장화에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임대 주택은 그중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SH공사의 손해는 사회적 투자의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주거 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정체성을 세워야 할 시기라는 조언도 나온다. 최근 서울시는 청년층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서울 리츠’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 리츠란 공공 기관 주도로 민간과 함께 부동산 투자 회사(리츠)를 설립하고 임대 주택을 지어 사회 초년생들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고 투자자에게는 5%대 수익률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올 하반기 시공사가 선정돼 착공될 예정이다.
진남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이러한 주거 복지 방식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진 부원장은 “민간 자원을 갖고 와서 사업을 하고 이익을 보장하려면 대상은 한정되고 가격은 상승한다”며 “결국 주거 복지가 필요한 쪽에 못 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자본의 성격상 주거 복지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우려다. “주거 복지의 핵심은 정부의 재정 투여가 늘어나는 것이지 무조건 임대 주택만 늘려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진 부원장은 “최근 주거 복지에 대한 발표를 들여다보면 공공성이 훼손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며 “공급 세대의 규모만 중요한 게 아니다. 장기적인 주거 복지의 방향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집은 인권이다. 먹고 자고 숨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자신만의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 인권이고 복지다. 하지만 현실에는 숨만 쉬고 10년간 월급을 모아도 서울에서 집 한 채 사기 힘들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떠다닌다. 결혼부터 저출산까지 주거 문제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20대는 20대대로 30대는 30대대로 중년층, 노년층까지 주거는 공통의 문제이자 해결되지 않는 화두다. 최근 여러 사회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나오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다만, 이 방안들이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주택 공급 방식인지 주거 복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방향인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SH공사는 주거 복지보다 단기간의 손실을 메울 수 있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 SH공사의 이번 선택이 주거 복지를 대하는 공기업과 지자체의 입장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워커스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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