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본주의 위기 속 청년, 어디로 가고 있나요

미 밀레니얼 세대 51%, 자본주의 지지하지 않아

  프랑스 밤샘시위 / 로어메그

자본주의에 대한 청년의 의식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 지난 4월 미국 하버드대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밀레니얼 세대1 51%가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주의를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30%를 기록했다. 조사를 수행한 하버드대 재학생 잭 러스트베이더는 〈워싱턴포스트〉에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예전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냉전 시대의 청년에게는 자본주의가 소련이나 다른 전체주의 체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지만, 오늘날 자본주의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세계 금융 위기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대로 50대 이상 응답자의 과반수는 자본주의를 지지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부정적인 견해는 2011년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수행한 조사보다 소폭 상승한 결과다. 당시 18~29세 사이 응답자 47%는 자본주의에 부정적이었다. 이 결과가 세계 청년의 의식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경제 위기 속에서 성장한 이들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청년의 의식 변화를 일정하게 가늠해 볼 수 있다.

실제 밀레니얼 세대는 세계 경제 위기 아래 확대된 자본주의 모순 속에서 자라난 이들이다. 특히 지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와 함께 각 정부의 긴축이 시작된 후로 청년들의 미래는 한층 더 어두워졌다. 평균 실업률을 훨씬 밑도는 청년 실업률, 일자리 축소와 비정규직 등 노동 불안정 확대, 사회 보장과 연금 축소 등의 뉴스가 매일 쏟아졌다. 이러한 청년들에게 자본주의는 무역 자유화와 IMF와 같은 초국적 자본을 의미하고, 금융 자유화는 비정규직과 외주·하청을 확대하는 노동 유연화, 교육과 의료의 영리화와 민영화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이들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자본주의로 인식하고 경험했으며, 이런 것이 자신의 삶을 어렵게 한다고 여기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주요 시위도 자본주의 위기로 고조된 문제와 같은 맥락이다.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뉴욕 사무소가 지난 2013년 발표한 〈세계 시위〉 보고서를 보면, 주요한 시위의 이슈는 정치 체제의 실패, 지구적 정의, 인권 등이었다. 이 기관은 2006년에서 2013년 사이 기간을 조사해 모두 843건의 주요 시위를 분석했는데 특히 세계적인 규모로 진행된 시위는 IMF 등 초국적 금융 기구가 대표하는 자유 무역과 기후 변화 그리고 제국주의 관련 이슈에 집중됐다고 밝혔다.

거리로 나오는 청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성장한 청년 세대는 기성 노동조합이나 정치 단체와는 구별되는 방식의 시위 형태를 만들어 기성 체제에 도전했다. 이 시위 양식은 공공 공간을 점거하고 자유 공간을 확보해 토론하는 혁명, 해방 공간에서의 시위와 유사했다. 2011년 100만 명이 벌인 행진으로 17일 만에 독재를 무너뜨린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시위, 그리스 신타그마 광장 시위와 같은 해 5월 15일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비롯해 58개 도시에서 동시에 일어난 스페인 인디그나도스 운동(15M), 2011년 세계 82개국 950개 도시가 공명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OWS), 2013년 터키 탁심 광장 점거 시위, 같은 해 우크라이나 유로 마이단 시위, 2014년 홍콩 우산 운동, 2016년 프랑스 밤샘 시위 등이 모두 그랬다.

이들은 공공 공간을 점거하여 기존 사회의 질서를 교란했다. 확보한 공간에선 총회를 통해 공론의 장을 만들고 토론과 협의를 지속했다. 또 시위 전반에 걸쳐 민주적 의사소통, 상호 부조와 연대, 공동 식당과 도서관 및 의료 시설 운영, 예술과 창작 등 새로운 사회를 만들며 체현해 가는 방식으로 연대했다. SNS를 통한 자율적인 동원과 토론 확대도 주요 소통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공공 공간 점거 시위는 다양한 행진과 집회, 대치 등 저항의 거점으로 작용했다. 청년 세대 외에도 다양한 이들이 세대를 초월해 참여했다. 이들은 자주 ‘지도자 없는’ 시위로 일컬어졌으나 사회 운동이나 노동조합의 참여, 공동의 토론과 연대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집트 타흐리르에서의 조직적 성폭력 사건, 우크라이나 유로 마이단에서 좌파에 대한 극우 폭력 사건 등 다양한 세력 간 갈등이 노출되기도 했다.

한편 소외된 빈민 지역을 중심으로 직접적인 폭동도 계속됐다. 2005년 프랑스 파리 교외 폭동, 2014년 미국 퍼거슨 폭동 외에도 2006~2013년 사이 방글라데시, 볼리비아, 아이티 등 17개국에서 95건의 폭동이 일어났다.

사실 ‘지도자 없는’ 운동이란 근대 이래 대중 동원의 전통적인 주체였던 노조나 정치 단체가 주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향은 바로 노조의 가입률이 떨어진 것과도 맞물린다. OECD 평균 노조 가입률은 2000년 20.4%에서 2014년 16.7%로 낮아졌다. 청년의 시위는 자본주의 모순은 심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항할 대중 조직은 약화한 현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청년의 광장 시위는 지역에 따라 기성 좌파와 연대를 고무하기도 했지만 우파적 전략에 활용되는 결과를 내기도 했다.

좌파와 극우의 부상 그리고 전쟁까지

청년의 저항은 자본주의 경제 불평등에 대한 분노나 다른 사회를 위한 열망 속에서 형성됐지만 그 결과는 서로 달랐다. 무역 자유화와 노동 유연화에 반대하는 것은 좌파뿐 아니라 우파 특히 극우파도 마찬가지였다. 무역 자유화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확대한다고 반대하지만(좌파), 개방에 반대하고 국수적인 고립주의도 무역 자유화를 반대한다(우파). 노동 유연화를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임금을 삭감한다고 반대하지만(좌파), 이주노동자나 여성 노동자가 유입되어 노동의 질이 떨어진다고 반대하기도 한다(우파). 그래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청년은 좌파로 갈 수도 있고 우파로 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서구 사회에서 주류적인 정치 구조에 큰 변화가 일고 있는데, 급진적인 좌파 정당이 부상하기도 하고 극우파 정당이 부상하기도 했다.

서구에선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기존 사민주의/자유주의 정당 내에서의 사회주의 개혁 담론 확대로 나아간 반면2, 유럽에선 양당 체제를 몰락시키고 좌파나 새로운 형태의 정당 부상으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월가 점령 시위(OWS)는 15달러 운동과 ‘흑인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으로 이어지다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면서 샌더스의 정치 혁명 운동으로 다시 살아났다. 샌더스 후보 측에선 현재 전국에서 50만 명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경제 위기가 강타한 그리스에서 시리자(급진 좌파 동맹)가 긴축 반대와 구제 금융 재협상을 내세우며 대안으로 부상해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시리자는 더욱 강화된 긴축 정책을 시행하면서 민중 운동과 갈등을 빚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운동이 촉발됐고 그 뒤 전국에서 수백 개의 풀뿌리 모임이 결성된 한편 대중적인 강제 퇴거와 의료 사유화 반대 운동을 경과하며 창당한 포데모스가 제2 야당으로 부상했다. 아일랜드에선 물 투쟁에 이어 좌파 신페인당이 부상했고, 영국에선 노동당 내 좌파 제레미 코빈이 당 대표로 선출된 한편 노동당 풀뿌리 지지 그룹인 모멘텀(Momentum)이 결성돼 당내 사회주의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포르투갈에선 사회주의 좌파 블록이 참여하는 좌파 연정이 들어섰고 아이슬란드에선 해적당이 제2당으로 부상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극우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에서 공화당의 아웃사이더라 불린 극우 트럼프 후보가 득세하고, 프랑스와 영국, 독일을 비롯해 북유럽과 서유럽에서도 난민 위기와 더불어 극우가 확대됐다. 동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마이단 시위처럼 지역 열강의 경쟁 속에서 내전으로 비화해 우파 정부가 집권하는 사례도 있었다. 중남미에서 경제 위기 아래 저항은 우파의 공세와 맞물려 핑크 타이드3 중도/좌파 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로 나아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4년 동안 지속한 페론주의 정부가 막을 내리고 우파 정치인인 마크리가 집권했으며,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서는 쿠데타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애초 2010년 말 튀니지를 기점으로 ‘아랍의 봄’이 일어나 이집트, 바레인, 예멘, 리비아, 시리아 등지로 퍼졌으나 이슬람 근본주의인 이슬람국가(IS)가 청년의 저항을 빨아들였다. 독재는 반란 속에서 무너졌으나, 수십 년간의 탄압 속에서 유실된 시민 사회의 기층에서 가장 큰 조직력을 갖고 있던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경제 위기 속에서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군사 쿠데타를 통해 구체제로 복귀했다. 한편 시리아/이라크 내전이 종파주의와 제국주의 개입 속에 확대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부상했고 다수의 청년은 이를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보다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중국 노동운동 확대, 홍콩 입법원 선거를 문제로 시작된 2014년 우산 운동, 같은 해 중국과의 양안 서비스 무역 협정 체결을 문제로 일어난 대만 해바라기 운동이 주목을 받았다. 또 미얀마, 캄보디아 등 임금 인상 시위를 비롯해 일본에선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계기가 된 탈핵 운동과 평화 헌법 개정 반대 시위가 대중적으로 일어났으며, 이 시위에는 실즈(SEALD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 등 새로운 청년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필리핀에선 ‘필리핀판 트럼프’라 불린 두테르테 대통령 후보의 열풍이 불어 그가 당선됐다.

청년의 새로운 움직임 속에 세계의 미래는?

세계 경제 위기에 잇따라 터져 나온 시위는 동시대 최대의 반자본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제 위기에 따른 균열은 국가주의나 개혁주의 또는 극우에 활용되면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여러 나라에서 유실됐다. 특히 서구를 강타한 경제 위기 속에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민족주의와 극우 정당이 기득권에 대한 반발 정서를 삼켰다. 제국주의 갈등이 첨예한 지역인 우크라이나나 이집트에서 우파와 제국주의의 반동은 구체제에 대한 저항을 전복시키고 자신의 이권을 위해 활용했다. 한편, 자본주의 경제 위기 속에서 집권했으나 결국 기성 정당의 전철을 밟은 그리스 시리자나, 경제 위기와 함께 위기에 빠진 중남미 핑크 타이드 정권의 한계도 나타나고 있다.

반자본주의 웹진 〈로어매그〉의 편집자 제롬 로스는 “좌파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말하지만 정작 좌파의 위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자본의 위기를 계속 말할 수 있지만 실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좌파의 위기다. 이 위기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시대의 도전에 무능한 집단적 기관(collective agency)으로서의 위기다. 심지어 2008년 추락(세계 금융 위기)이 연 기회를 활용하지도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상력의 위기다. 좌파는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데 완전히 무능하다. … 최근 시위의 보다 깊은 정치적 맥락을 폭로하는 유일한 길은 이 운동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 자신의 언어로 나아가는 동시대 투쟁을 이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지구적 정치 경제의 맥락 안에서 각 투쟁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세계 시위〉 보고서는 우리가 파리 혁명이 일어난 1848년이나 러시아 혁명의 1917년 또는 1968년보다 훨씬 강도 높은, 근대 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고 기록한다. 한국에선 미국 금융 위기 후 10년 가까이 지속한 세계 공항에 이어 구조조정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이곳의 청년과 좌파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신자유주의 속에서 성장한 청년이 사회로 나오는 앞으로의 10년은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워커스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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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비류

    기사 잘 읽었습니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과 청년문제를 바라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