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운동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북미서비스노조 SEIU 총회 참관기

[출처: 알바노조]

지금의 청년들은 글로벌 세대라고 불리지만, 필자는 태어나서 한 번도 외국에 나간 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다. 제주도도 강정 마을 투쟁 때문에 배 타고 간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SEIU(Service Employee International Union, 국내에는 북미서비스노조로 번역된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푸에르토리코 지역을 포괄한다)의 초청으로 미국에 가게 됐다. 여권 발급부터 공항 탑승까지 좌충우돌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캐리어를 부쳐 주는 카운터가 있어 당당히 짐을 가지고 갔다. 직원이 짐을 올려 달라고 하길래 책상 위에 캐리어를 힘껏 올렸다가 큰 웃음을 줬다. “손님, 짐은 옆에 레일에….” 나의 동료들은 비행기 타려면 신발 벗고 타야 한다며 농을 치기도 했다. 비행기에 카펫 깔려 있다며. 정말인 줄 알고 검색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델타항공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비행기 승무원의 모습이었다. 내가 봐 왔던 비행기 승무원은 날씬한 몸매에 치마를 입고 잔머리 없이 머리망을 한 젊은 여성이었다. 그런데, 델타항공의 승무원은 외모, 인종, 연령, 헤어스타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승무원도 기내 서비스를 했으며, 머리카락은 자유로웠다. 그렇다면 한국의 승무원만 다른 규정을 받고 있는가? 그랬다. 귀국할 때 탄 대한항공의 승무원은 앉아서 손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하나같이 젊은 여성이었다. 여성 노동자에게 강요되는 화장과 철저한 외모 규정은 한국만의 잘못된 문화였다. 이후 미국의 동료에게 물어보니 외모와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등은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3일 동안 진행된 SEIU 총회는 한마디로 큰 충격이었다. 내용보다는 문화적인 차이가 가장 크게 느껴졌다. 일단 규모가 너무 달랐다. SEIU는 조합원이 200만 명이다. 대의원만 약 3,000명으로 1,500명 이상의 대의원이 모였다. 총회 장소는 디트로이트의 COBO 센터로, 한국의 벡스코 같은 대형 건물이었다. 이 화려한 건물에 노동조합의 깃발이 걸리고, 홍보 부스가 마련됐다. 3,000명은 너끈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대형 홀을 세 개 정도 빌렸는데, 한 홀은 식당, 한 홀은 오락실(두더지 게임과 농구공 던지는 게임 등이 있었다)과 인포메이션, 각국의 투쟁을 상징하는 깃발 등 박람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공간이었고, 마지막 한 홀이 총회 장소였는데 대형 콘서트를 하는 분위기였다. 대형 방송용 카메라가 총회 장소를 비추고, 대형 스크린이 그것을 구현했다. 총회 장소 중간중간에 마이크 무대가 설치되어, 조합원들이 그 무대 위에 올라서 발언을 할 수 있게 했다. 마이크 무대에는 번호를 붙여 의장이 번호를 부르면 화면에 그 무대가 나오는 형태였다.

총회에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종이 문서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모두에게 아이패드를 나눠 줬는데, 아이패드 대여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번 총회를 위해 어플을 만들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총회의 자세한 문서를 받고 싶다면, 스마트폰에서 ‘SEIU 2016’을 검색하면 된다. 문서는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권 밖의 노동자도 읽을 수 있도록 번역되어 있다. 총회 내용을 위해 번역 기계와 통역사가 배치되었다. 언어 평등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었다.

우리가 묵은 곳은 호텔이었고, 매일 작은 파티가 벌어졌다. 필자는 호텔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는데 ‘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다 얼마야? 이 화려함에 경탄과 함께 왠지 초강대국의 노동운동은 다르다는 위화감이 함께 들었다. 옛 조선의 운동가가 러시아로 갔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화려하게 총회를 하면 미국의 보수 언론이 공격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조합원이 200만 명이고 조합원의 조합비 납부율이 상당히 높다면 못 할 일도 아니다. 이런 하드웨어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하드웨어가 갖춰져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연설할 때 모두 스티브 잡스처럼 한다. 자신만의 스토리로 시작해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스타일. 청중은 기립을 자주 해 주고 박수도 많이 쳐 준다. 들어 보니 현장 간부 때부터 연설 교육을 한다고 한다. 연설에서 유머가 중요하고 특유의 몸짓이 총회의 재미를 더한다. 한 편의 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양한 리더가 등장했다. 노동조합의 간부뿐만 아니라, 현장의 스타가 여러 명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연설 시간을 보장하고 충분히 드러날 수 있게 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표결 과정. 의장은 찬성하냐고 묻고, 찬성하면 참석자는 ‘I’라고 외친다. 반대는 ‘NO’. 찬성의 목소리가 크면 가결. 분간하기 어려우면 일어서게 하고 의장이 대충 세서 결정한다. 토론을 이만 끝내고 표결하자는 발언이 가장 큰 박수를 받는 것은 똑같다. 안건 표결뿐만 아니라 간부를 이런 식으로 뽑아서 문화 충격을 받았다. 물론 총회 전에 사전 토론을 많이 했다고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여겨진 미국에서 오히려 절차보다는 내부 단결과 교육, 축제로서 총회를 사고하는 것이 신선했다.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

안건 심의 시간과 발언 시간은 제한된다. 안건 심의 시간은 약 40분 정도, 발언 시간은 3분이다. 화면에 제한 시간이 뜨는데, 각각의 마이크 무대에 지역 지부의 위원장과 조합원이 함께 오르고 그 장면이 스크린에 뜨면 함성이 터져 나온다.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연출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이 발언이 각자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기후 변화 안건이 있다면 기후 변화를 통해 자신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발언하는 스타일이다. 15달러 운동을 이야기할 때는 아이의 운동화를 사 주지 못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조합원 각각의 스토리가 이야기되고 공유되며 그것이 곧 조합원을 교육하고 결의를 모으는 역할을 했다. 이야기가 중심이 되니 조합원의 참여도가 높고 조합의 주인공이 조합원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간부 위주의 발언과 토론이 벌어지는 한국의 총회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여성과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연령 차별도 적다. 92세의 한 여성 조합원은 65년간 노조 활동을 했다. 최근에 연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두 번 연행됐다고 한다. 이분의 발언은 많은 조합원에게 큰 용기를 줬다. 그녀는 SEIU 조합원의 자부심 같았다. 대부분 조합원은 흑인이다. 간부는 백인 비율이 높다. 그래도 의도적으로 인종적 다양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국가를 부르는 것은 다소 충격이었다. 미국 국가와 캐나다, 푸에르토리코 국가를 불렀다. 나를 초대한 사람에게 노동조합에서 왜 국가를 부르냐고 물어 봤더니 노동조합 구성원이 이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를 초대한 이 사람은 국제 담당자가 아니라 조직국 소속이다. ‘전 세계가 SEIU의 조직 대상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외교부가 없고 국무부가 외교 일을 하는 것을 보며 드는 생각과 비슷한 느낌이다.

조직국에 대해서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알아보니 SEIU의 조직국에는 책상이 없다고 한다. 나가서 조직하라고. 이 말을 듣고 알바노조 상근자의 책상을 뺄까? 고민하기도 했다.

SEIU 활동가를 오거나이저(Organizer)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연봉도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능력 있는 좋은 인재가 대기업이 아니라 노동조합 상근자를 꿈꿀 수 있게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약 6개월의 트레이닝 기간과 평가도 있다고 하는데, 예산이 축소되면 구조조정되기도 한다. 한국적 정서와 멀지만 실용주의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총회는 새로운 시대의 노동운동 조직, 노조가 사회 운동에 나서는 것, 힐러리 지지를 주요한 의제로 다뤘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 사회 운동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실리주의적인 노동운동을 해 온 미국 노조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있었다.

인상적인 논리는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여성, 성소수자, 인종, 이민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단결을 위해서라는 논리가 마음에 들었다. 흔히 위의 운동을 소수자 운동이라고 하고 운동을 분열시킨다는 비난을 받는데, 오히려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단결을 해친다는 것이다. 매우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분열되어 있으면 함께 싸울 수 없고 삶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 노동조합의 힘도 약해진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 문제도 상당히 신경을 썼는데,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먹을 권리를 노동조합이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씨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연결된다. 이처럼 노동조합이 시민 단체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내용을 결의문 형태로 총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노동조합 운동이 사회 운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장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러한 계획을 말이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으로 쉽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자료집을 줄줄 읽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면 계획과 결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조합원의 눈높이에 맞춰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것이 충분한 내용의 전달과 토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총회의 내용보다는 총회의 문화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았다. 우리의 운동과 조직 문화도 바꿀 수 있을까? 역사를 생략한 완전한 도약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노력은 언제나 기존의 운동 속에서 탄생한다. 지난 수십 년간의 비정규직 노동운동 속에서 탄생한 알바노조가 새로운 문화와 운동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워커스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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