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전쟁 가능한 나라가 되는가

[워커스 19호]참의원 선거에서 여당 압승

[출처: 레이버넷 일본]

개헌선을 넘은 여당

지난 10일 일본 참의원 선거1)에서 자민·공명 연립 여당이 압승했다. 또, ‘개헌 세력’이라고 불리는 오사카유신, 일본의마음을소중히하는당 의석을 합하면, 이번 선거의 ‘숨겨진 쟁점’인 헌법 개정 발의 조건2) 이상의 의석수를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모두 갖게 되었다.

작년 8월, 이른바 ‘전쟁법안(안전보장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각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진행한 리버럴 진영은 개헌 세력에 개헌선을 넘는 의석을 주지 않는 것을 최대 목표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했다. 개헌 세력이 노리는 것은, 바로 군대를 보유하지 않겠다고 명시하는 일본 헌법 9조 개정이다. 9조의 제약 때문에 현재 편법으로 운용하는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하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거의 개헌 진영 안에서만 헌법 개정이 논의됐고, 대부분 국민도 헌법 개정에 부정적이어서 개헌 세력이 양원에서 2/3 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하기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결과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헌 세력의 승리로 개헌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교적 진보적인 <아사히신문> 여론 조사에 따르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1%,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48%다. 친여당적 언론 그룹 FNN의 조사조차 개헌 필요가 43.3%, 불필요가 45.5%로 양쪽이 팽팽하게 부딪히는 모습이다. 개헌에 대한 민의는 아직 애매한 상태이며, 지금 개헌을 발의해도 국민 투표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연립 여당의 공명당은 개헌에 소극적이고, 만일 국민 투표에서 부결돼 개헌 세력이 받을 타격을 고려하면, 지금 즉시 개헌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또 아베 정권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 개정 논의를 피하고, 이른바 ‘아베노믹스’ 선전에 매달렸기 때문에 노골적인 개헌 추진은 어렵다.

지금 일본 최대의 문제는 경제다. 현재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상태이고, 경기는 침체하고 있다. 국가 부채 1000조 엔을 넘은 재정은 비상경보가 울려 퍼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증세는 피할 수 없지만, 아베 정권은 중의원 선거에서 약속했던 소비세 증세 공약을 파기하고, 참의원 선거에서는 증세 연기를 새로운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국민적 합의 없는 개헌을 강행할 수 있을까? 실제로 현재 일본의 위기는 안전 보장상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 파탄의 위기다. 1000조 엔이 넘는 국가 부채는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증세하면 경제가 위축되고 오히려 세입이 줄어든다는 딜레마가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를 받던 ‘아베노믹스’는 해결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선거 국면에서 민의는 증세 연기에 덤벼들었다. 여기에는 최대 야당인 민진당3) 책임도 명백하다. 민진당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대안적 경제 정책을 제출하지 못했다. 아베 정권 출범 초기 발표한 ‘아베노믹스’는 대담한 경제 정책 패키지였지만, 현재의 ‘아베노믹스’는 무책임한 경제 관료들이 만든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정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보수·신자유주의 체질인 민진당은 현재 위기에 유효한 경제 대책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야당은 경제 쟁점화를 피해 ‘개헌 저지’를 최대 쟁점으로 설정했지만, 여당이 ‘아베노믹스’에 집중하면서 지루한 경제 논의가 됐고, 개헌 논의는 여당 의도대로 쟁점화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선거의 결과는, 유권자들이 멀리 있는 헌법 문제보다 오늘의 적은 세금 부담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경화에 대항하는 새로운 운동의 대두

여당의 선거 전략 앞에 무기력한 민진당을 움직이고 아베 정권의 개헌 기세에 제동을 건 것은, 지난여름 연일 국회 의사당 앞을 채운 젊은이나 시민의 목소리였다. 노예처럼 조용히 살아온 일본 시민이 강하게 나온 계기는 아베 정권이 자위대의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을 골자로 한 안보 법안을 제출하면서다. 일본은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헌법 해석을 무시하는 아베 정권의 소위 ‘헌법 쿠데타’에 대해 야당은 물론, 리버럴 성향의 시민도 일제히 반발했다. 수만 명의 시민이 국회 앞을 채우는 모습을 직접 본 아베의 공포는, 아마 한국에서 광우병 촛불 시위 당시 광화문 앞을 채운 시민을 바라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포와 같은 종류였을 것이다. 민주당이나 유신의당 등 자위대에 긍정적인 보수 야당마저 아베 정권의 안보 법안에 강하게 반대했고, 시민과 학생들까지 안보 법안 반대를 외쳤다. 이 중 특히 큰 화제가 된 것은 ‘SEALDs’4)라는 학생 모임이었다.

안보 법안이 제출되기 전년도에 특정비밀보호법 5)도 강한 반대 속에 국회를 통과했고, 특정비밀보호법에 의문을 가진 학생들이 만든 모임이 SEALDs의 모태가 되었다. 그들은 기존 일본의 시민운동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운동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무엇보다도 정치에 무관심한 학생들이 앞장섰고, 그들에 공감하는 많은 젊은이를 국회 앞에 모이게 한 의미는 크다.

SEALDs의 핵심 멤버들이 사회 운동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핵발전 반대 운동이 계기가 됐다. 핵발전 반대 운동은 1980년대 낡은 학생 운동이 일본에서 사라진 이래 최대 규모로 일본에 퍼졌고, 매주 금요일 밤 도쿄 수상 관저 앞에서 집회가 계속됐다. 이후 스페인 인디그나도스 운동이나 미국의 월가 점거(Occupy Wall Street) 운동을 참고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SEALDs의 운동 방식이 만들어졌다.

SEALDs는 기존 운동 단체와 달리 조직을 갖지 않는 모임으로 내부에서 철저한 논의를 통해 활동 계획을 세우고, 시위를 조직하고,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그들의 주장은 첨예하지 않고, 행동도 전투적이지 않다. 기존 좌파로부터는 ‘부르주아 학생의 놀이’라고 야유를 당하고, 우파로부터는 ‘어리석은 학생이 떠들고 있다’는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안보 법안 반대를 외쳐 국회 앞으로 모인 많은 일반 시민들은 그들을 지지했다.

일본에서도 좌파나 리버럴은 정파 간 대립이나 내부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고, 안보 법안 반대 운동도 그런 조직적 대립 구도 속에서 힘을 잃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낡은 시민운동의 틀을 넘어 탄생한 SEALDs가 기존 리버럴의 구심이 됐다. 게다가 SEALDs는 10대, 20대뿐만 아니라 50~60대까지 모아 버렸다.

SEALDs를 구심으로 모인 사람들은 안보 법안이 성립한 이후 헌법을 무시하고 폭주하는 아베 정권을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안보법제의폐지와입헌주의의회복을추구하는시민연합(시민연합)’을 구성했다. 시민연합의 목적은 선거에서 야당을 승리하게 해 안보 법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리버럴 진영 내부에서 대립을 계속하고, 결국 선거로 자민·공명 양당에 뒤져 온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들6)에 참의원 선거 정책 협정과 선거 협력을 호소한 것이다.

그 결과 전국 32개 1인 선거구에서 야당 통일·시민연합 추천 후보 중 11명의 후보가 여당 후보를 이기고 당선했다. 놀라운 것은 미군 기지 문제를 안고 있는 오키나와와 핵발전소 사고 후유증이 끝나지 않는 후쿠시마 지역에서, 시민연합 추천 통일 후보가 현직 장관을 낙선시킨 것이다. 이러한 성과에 시민연합은 확실한 반응을 느끼고 있다.

일본 사회 운동에서 이번 야 4당이 한정적이라 해도 후보 단일화를 성공시킨 것은, 기적과 같은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긴 역사를 가진 일본 정당들은 긴 역사만큼 길고 날카로운 대립을 계속해 왔다. 실제로 당 현장 활동가 안에선 “왜 우리당을 파괴하자고 한 놈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가”라는 불만도 있었고, 야 4당 간 정책 협정을 체결하고, 후보 단일화를 합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한다. 대립의 역사를 타파할 수 있었던 것은 헌법 파괴의 위기로부터 일본 사회를 지키라는 시민들의 강한 압력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번 시민연합의 경험은 전문 정치인들에 의한 정치를 주권자들의 손에 되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국회 앞으로 모인 주권자들이 터무니없는 대립에 빠져 자멸하는 기존 정당에 주권자의 요구를 들이대고 정치적 협조를 끌어낸 의미는 크다. 그리고 오는 31일 실시되는 도쿄 도지사 선거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시민들의 힘이 야 4당 단일 후보를 만들었다.

헌법 개정 저지 운동으로

아베는 자민당이 2012년에 발표한 헌법 개정 초안을 기반으로 국민적 합의를 얻을 수 있는 부분부터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개헌 세력은 진짜 목적인 9조 개정 이전에 어떤 조항이라도 개정에 착수하되 헌법 9조 개정, 궁극적으로는 ‘자주 헌법 제정’을 노리고 있다. 아베는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정부가 일시적으로 강대한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긴급 사태 조항’을 언급한 바 있다. 헌법 개정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지만, 헌법 개정에는 빨라도 3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어쨌든 아베 정권은 이후 9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자위대가 존재하는 모순 등 헌법 개정 필요성에 관해 언론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선전을 시작할 것이다.

개헌 세력에 의한 헌법 파괴 움직임에 따라 우리는 선거 외에도 전반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안보 법제 헌법 위반 소송, 정부에 의한 언론 장악 감시, 개헌에 대항하는 이론적 정비,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는 안보 정책 개발, 인권·평화의 가치 홍보, 정권을 압박하는 힘 있는 직접 행동 등이다.
작년 여름의 경험 이후 일본의 민중은 많은 이들이 거리에 나오면 정권도 경솔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는 사실, 선거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시민도 선거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만약 아베가 2/3 의석수를 믿고 개헌에 착수하면, 일본의 민중은 즉시 국회 앞에 모여 정권을 압박할 것이다.<워커스 19호>

1) 일본 국회는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제로 구성된다. 참의원은 영미권의 상원에 해당하며, 임기는 6년, 해산은 없고, 3년마다 참의원 정수 1/2 의석을 선거로 뽑는다. 선거구는 비례구와 지역구가 있다. 중의원 지역구는 소선거구제이고, 참의원 지역구는 중선거구제이다.
2) 헌법 개정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발의하고, 국민 투표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3) 구 민주당. 보수 지향 구 유신당이 분열돼 일부는 ‘오사카유신’으로, 일부는 구 민주당과 합당해 민진당이 되었다.
4) 자유와민주주의를위한학생긴급행동,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 약칭: SEALDs
5) 방위, 외교, 스파이 방지, 테러 활동 방지 등 4개 분야에서 예민한 정보를 ‘특정 비밀’로 지정하고, 비밀 누출을 금지하는 법률. 알 권리 침해, 정부에 의한 정보 독점 등의 논란이 되었다.
6) 민진당, 공산당, 사회민주당, 생활의당 등 4당.
덧붙이는 말

‘레이버넷일본’ 공동 대표. ‘레이버넷일본’은 주로 노동운동에 관한 소식들을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이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 소식들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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