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계약 일용 잡부로 살던 시절

소소한연대기 -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 15년

  사진/ 정운 기자

3년 만에 학교 비정규직 5천 명을 조직하다

2002년 초 경기도의 학교 영양사들이 전국여성노동조합 (여성노조)의 문을 두드렸다. 최순임 여성노조 사무처장은 “그때 일용직 영양사들 상담이 들어와 만나 보니까 일용 잡급직이며, 연차도 없고, 생리 휴가나 퇴직금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기억했다. 당시 경기도 학교 영양사들이 여성노조를 찾은 직접적인 계기는 비정규직 영양사가 근무하는 곳에 정규직 영양사가 발령 나면 그 학교에서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영양사들이 여성노조 지부를 만들어 싸움을 시작하자 도서관 사서, 과학 실험 보조원, 조리원들이 잇따라 여성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같은 조합원들인데도 함께 행동하는 걸 꺼렸다. 교육청 앞 집회도 함께하지 못하고 날짜와 시간을 바꿔서 진행해야 했다. 꾸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각성을 해 나갔고, 교육부 앞 집회를 함께할 수 있었다.

여성노조는 모든 역량을 학교 비정규직 조직화에 쏟았다. 3년 동안 5천 명의 조합원이 늘어났다. ‘일용 잡부’에서 당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태어났다. 2004년 7월 ‘학교 회계직 계약 관리 지침’이 만들어지면서 일용 잡급직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5개월 단위 학기 계약이 1년 계약으로 바뀌었고 퇴직금과 연차가 생겼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이 있는 자리에 정규직을 발령하지 않게 됐다. 이어 2년이 지나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돼 더 이상 고용 불안에 떨지 않게 됐다.

“학교에서 대접도 달라지고, 함부로 못 해요. 예전에는 제일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된 거죠. 우리도 뭉치니까 힘이 생긴다며 조합원들이 아주 좋아했어요.” 여성노조는 IMF 구제 금융 사태 이후 늘어 가는 여성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권익 개선 활동을 인정받아 2005년 제21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2016년 공동 교섭 공동 파업으로 노동 조건 개선

2016년 6월 23일 아침 서울시교육청 언덕길. 분홍색과 초록색 조끼를 걸친 여성 노동자들의 무지갯빛 물결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조리복을 입고 고무장갑과 고무장화를 낀 여성 노동자가 무대에 올라 춤을 추자 조합원들이 일제히 막대 풍선을 흔들며 환호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여성노조, 서울일반노조 서울지부가 연대해 개최한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 임단협 승리 총파업 결의 대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여금 도입, 급식비 등 차별 금지, 방학 중 생계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23~24일 이틀 동안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급식실의 조리 인력 감소로 서울 지역 국공립학교 1,150곳 중 110곳에서 급식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학교는 급식 대신 빵과 우유를 제공하거나 도시락을 지참하도록 했고, 12개 학교는 단축 수업을 했다. 영양사, 조리사, 교무·행정 지원 인력, 과학실·전산실 전문 인력, 도서관 사서 등 25개 직종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거리로 나선 풍경은 화사했다. 노동자들의 얼굴엔 웃음과 미소가 가득했다.

7월 11일 서울시교육청과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정기 상여금을 연 50만 원씩 지급하고 기본급을 3% 인상하기로 했다. 월 급식비를 기존 4만 원에서 8만 원으로 현실화하고, 명절 휴가비도 4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학교 비정규직 관련 노조들은 복수 노조 시대의 모범적인 교섭을 만들기 위해 다수 노조가 대표 교섭 노조가 되는 게 아니라 조합원 수와 상관없이 4개 노조가 공동 교섭 대표로 교육청과 교섭을 벌여 왔고, 공동 파업을 통해 이 같은 성과를 만들어 냈다.

2016년 학교 비정규직 조합원 7만여 명 확대

2002년 여성노조가 전국에서 처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투쟁에 나선 지 15년,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학교 비정규직 현실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이던 거대 노동운동 조직과 정파들이 앞다퉈 비정규직 조직화에 뛰어들었다. 15년 전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던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은 2016년 기준 대략 7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학교 비정규직은 학교 회계 직원(교육공무직원) 14만 1,965명, 비정규직 강사 15만 3,015명, 파견·용역 근로자 2만 7,266명, 기간제 교사 4만 2,033명 등 약 40만 명에 이른다. 주요 조직 대상인 회계 직원으로만 보면 50%에 육박하는 노조 조직률이다. 동일 업종 조직률로 최대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일선 학교 교사와 관리자들에게 노동의 소중함과 노동 3권을 알려 내는 교육 효과를 낳았다. 교사와 달리 선거 운동이 자유로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교육감 선거를 통한 정치 세력화에 적극 나섰다. 2010년 5명의 진보 교육감을 만들어 낸 데 이어 2014년에는 13명의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0교시 수업을 없애 9시 등교 제도를 도입하고 야간 자율 학습을 없애는 등 학교 현장을 하나씩 바꿔 나가고 있다. 민주노총 가입과 관련한 패권주의 논쟁, 직종별 노조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지난 15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지난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지방 정부 3년,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가?’ 토론회에서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지난 2년 동안 학교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과 차별적 처우는 제자리걸음”이라며 “진보 교육감들이 있는 교육청의 비정규직 문제가 박근혜 정부의 대책보다 못한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2014년 교육부는 1년 이상 상시 지속 업무를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장기 근속 가산금을 인상하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비정규직 강사 1만 5,651명이 잘려 나갔고, 학교 회계직 노동자도 1,554명이 줄었다. 배동산 국장은 “그나마 충남교육청에서 외주 위탁으로 주 15시간 미만 근무를 하는 초등 돌봄 교사들을 직접 고용 무기 계약으로 바꾼 게 유일한 제도 개선 내용”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교육감 직접 고용 제도 확립을 위한 종합적인 실행 계획 수립 필요하다. 정규직 대비 90% 수준까지 상향시키고 교육공무직법을 법제화해 각종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웠기 때문에 이 정도의 권리라도 확보한 겁니다.” 배동산 국장의 말처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