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록 데이터 사회의 문턱에서

[워커스 22호 기술문화비평]

  사진 홍진훤


점점 많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더 오래 살게 되면서 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 아니겠는가.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든다. 매일 생계를 위한 야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종일 가사노동과 육아로 피로에 찌든 사람들이 따로 시간을 내 운동이나 건강관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휴식 시간이나 일과 후에 잠깐 짬을 내 자기 건강을 챙기는 것도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는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휴식을 취하는 것이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자기기록을 통한 건강관리

정기적으로 운동하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니 헬스클럽 같은 곳에 몇 달 등록해두었다가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하는 바람에 아까운 돈을 날린 경험을 다들 한 번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일상생활에서 가벼운 운동을 시도하고 지속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주로 손목에 차는 스마트 시계나 밴드와 같은 웨어러블(wearable) 기기들을 사용한다. 웨어러블 기기들을 착용하기만 하면 매일 혹은 매 순간 걸음수와 거리를 측정하여 운동량을 기록하고 심지어 심장 박동수나 혈압까지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체중계와 연동하면 몸무게의 변화도 기록할 수 있고 매일 수면 패턴을 파악하여 아침에 가장 덜 피곤한 시간에 알람을 울리게 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과 연결하면 달리기나 자전거를 타고 움직인 경로를 지도상에 표시해서 확인할 수도 있고, 기간을 설정하여 그동안의 운동량 변화 추이를 그래프로 볼 수도 있다.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의 의지로 관리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저렴하고 편리한 도구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이 몸을 얼마나 움직이고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장기간에 걸쳐 직접 관찰하면 어떤 시점에서 무슨 이유로 건강이 좋아지거나 나빠졌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신체 상태를 지속해서 측정하고 추적하는 활동을 자기기록(self-tracking)이라고 부른다. 조그만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기만 하면 자신의 몸에 관한 각종 데이터를 자동으로 기록해서 분석하고 충고까지 해주니 정말 스마트하다고 할 수 있겠다. 디지털 시대에는 자기기록을 통한 건강관리가 여러모로 편리해졌고, 자기기록은 누구나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자 문화가 되고 있다.

새로운 산업의 원료로서의 데이터

이러한 편리함과 정확성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가능해졌다. 여기에는 소형화된 정밀 센서, 사물 사이의 통신, 데이터 저장 및 처리 기술 등 첨단 기술들이 총망라되었다. 그러나 이 기술들이 총화 된 작은 기기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은 작고 오래가는 배터리 전력만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그 기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다시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를 자극하여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말하자면 ‘데이터’다. 정확히 말해, 자기기록 기기들은 우리의 신체 활동이나 상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이다. 우리 신체의 모든 활동과 상태는 숫자로 측정된 다음 데이터화되어 기록되고 저장되고 분석된다. 이렇게 수량화된 데이터는 우리 자신에 관한 매우 밀도 높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우리 자신도 알 수 없는 많은 고급 정보가 데이터를 통해 추출될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기록 기기를 통해 장기간 축적된 나의 운동이나 건강 데이터를 취득하게 된다면, 나아가 자기기록 기기를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의 데이터를 모두 취합할 수 있다면(그것이 빅데이터다), 그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정보를 손에 넣은 셈이다. ‘나’라는 사람의 개별화된 신체 활동 정보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 혹은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지닌 일반적 특성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이러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추적해서 전송해준다면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화수분이 아닌가.

현재 우리 정부는 그러한 개인 정보와 데이터를 보호하기보다는 새로운 산업을 위해 어떤 걸림돌을 없앨지 고민하는 듯하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중이라는 다보스발 전언을 앞세워 개인의 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제들을 없애자고 대통령까지 나서고 있다. 우리는 머지않아 생활 속에서 무한정 생산하고 있는 데이터를 별다른 동의도 없이 고스란히 특정 산업이나 국가에 가져다 바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데이터의 축적으로 생성된 가치가 일부 기업의 자본 축적으로 이어질 뿐 우리 개인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데이터 노동 : 노동과 인적자원 관리로서의 자기기록

현재 한 개인의 연평균 데이터 생산량은 약 1테라바이트 라고 하는데, 아마도 실제로 생산해내는 데이터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자동차나 집안에 설치해 두는 감시카메라(블랙박스와 CCTV)만 생각해 봐도 엄청난 양의 시각 데이터를 쉬지 않고 만들어 내는 셈이다. 더 활동적인 사람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탈 때도 헬멧에 액션캠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데이터들은 따로 외부의 장소에 저장되기보다는 개인의 디지털 저장소에 저장된 후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움직임과 신체 상태, 건강정보를 24시간 끊임없이 추적하고 기록할 수 있는 자기기록 기술은 이 모든 생명 데이터를 회오리바람처럼 빨아들여 저 멀리 클라우드(cloud) 속에 저장해둔다. 물론 이렇게 축적된 빅데이터는 마치 땅속의 화석연료처럼 발굴, 가공, 정제돼 거래된다.

자기기록 활동은 자신의 신체 활동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추적하고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다. 앞서 보았던 건강 관리처럼 개인적인 필요와 목적에 따라 자발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스마트 밴드를 손목에 차고 (이때 반드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야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직장인들이 퇴근 후 한강 변을 달리는 모습을 비추는 런닝화나 운동복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광고에서는 그들이 운동이라는 형태의 자기계발에 나서야 하는 절박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노동자가 자기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새벽과 저녁 시간을 쪼개 영어학원을 다니거나 인맥을 관리하는 것과 다름없다. 당연하게도 노동자 개인의 건강은 그 자신의 행복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인 동시에 그를 고용한 회사의 인적자원 관리 차원에서도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선진국의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자기기록을 장려하고 은근히 강요하기까지 한다. 직원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따로 두어 적극적으로 직원들의 건강에 개입한다. 직원의 건강 악화로 인한 의료보험료 지출보다 미리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일과 후에도 자기기록 장치들을 착용하고 다니며 건강관리와 자기계발 활동에 힘쓰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당장 다음 인사고과에 반영될 것이 때문이다. 이렇게 자발적인 건강관리 장치를 사용하는 자기기록 활동은 일상적 자기 계발을 요구하는 노동 환경하에서 노동의 연장이 되고 만다.

자신을 추적하는 자기 관리의 주체들

이것의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 개인은 자기 건강과 생산성 향상의 책임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회사는 노동 환경이나 업무 과정을 개선하여 노동자를 보호하는 대신, 마치 노동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듯 관리 프로그램을 운용함으로써 작업 중 사고나 건강을 해치는 과도한 노동을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어찌되었건 노동자 개인은 자기 관리의 책임을 지고 건강관리와 자기계발에 힘쓰지 않을 수 없다.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몸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삶의 형태가 불안정해지고 파편화되면서 운동과 건강 관리의 방식도 조각조각 부스러진 시간의 틈새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조각난 시간을 이리저리 연결하여 생산성 향상과 자기 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활동에서 생산하는 데이터마저 빼앗기는 것이 이 시대의 정보기술-노동 시스템하에 있는 노동자의 현실이다. 강변을 달리며 맛보는 시원한 가을바람과 튼튼해진 근육 위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우리가 자신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그렇게 삭막한 데이터 착취와 노동의 자기 관리의 세상에서 멀리 있다고? 천만에, 이미 우리는 그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덧붙이는 말

김상민- 문화연구자, 서울대 강사, <문화/과학> 편집위원. 미디어 문화와 기술미학 분야 연구. <속물과 잉여> 공저, <불순한 테크놀러지> 공저, <디지털 자기기록의 문화와 기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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