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전날 문서 대량 파쇄한 희망원...추가 의혹 제기에도 ‘모른다’ 일관

국민의당 ‘희망원 진상조사위원회’, 두 차례에 걸쳐 희망원 현장조사

거주인 사망과 급식 비리 등 각종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대구시립희망원(아래 희망원)에 대해 국민의당이 자체적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지난 9월 19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를 통해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가 추가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현장조사 내용과 비마이너가 이후 추가 취재를 통해 확보한 내용을 중심으로 희망원을 둘러싼 문제점들을 정리해 봤다.

  정중규 위원장(왼쪽)과 김광수 의원(중간), 임춘석 희망원 사무국장(오른쪽)이 2차 현장조사를 위해 희망원 내 진료소로 향하는 모습

“사망자 많은 이유는 노숙인의 건강 특성과 인력 부족 때문?”

2014년부터 지난 2년 8개월 간 희망원에서는 129명의 거주인이 사망했다. 2016년 1월 31일 기준, 희망원 거주인이 총 999명이니까, 총인원 대비 12% 이상 사람들이 죽은 것이다. 사망원인을 살펴보면, ‘기도폐쇄’가 유난히 많다.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 등 주말에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 희망원은 2016년 대구시의 시정조치로 주말 당직자가 2명으로 확충되기 전까지는 1000여 명이 있는 시설에 단 한 명만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다. 즉, 직원의 관리가 소홀한 주말에 거주인이 음식을 먹다 목이 막혀 사망하곤 했다는 것이다.

희망원 측은 사망자 수가 많은 것은 본래 노숙인들이 거리생활에서 몸이 많이 상해서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희망원은 몸이 많이 상해서 들어오는 노숙인을 돌보기 위해 진료소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희망원에서는 원내진료만 2014년에 11317건, 2015년 7855건, 2016년 6월까지 4185건이나 됐다. 노숙인뿐 아니라 장애인까지 거주하고 있으니 시설 내 진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희망원 의료인력을 살펴보면, 2014년에는 공중보건의, 상근의, 촉탁의를 모두 포함해 의사는 여섯 명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2015년에는 세 명으로 줄었고, 2016년에도 유지되고 있다. 간호사는 총 12명. 그나마도 밤에는 단 한 명이 당직을 선다.

몸이 상한 사람은 식단도 중요하다. 보양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양 균형과 양질의 식사는 몸을 회복해가는 단계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희망원은 급식 비리로 얼룩져 있었다. 식료품 거래 내역 기록보다 적은 양을 받거나 아예 받지 않는 방식으로 차액을 남겨 식비를 횡령해 왔다. 횡령한 금액이 2015년 2월부터 11월까지만 ‘영유통’과의 거래에서 1억 8천만 원, ‘참푸드’와의 거래에서 1억 3천만 원에 달했다. 주문량보다 더 적은 양을 받으니, 자연히 배식양도 줄어들었다. 19일 국민의당 진상조사에서는 "밥이 너무 적어 배가 고프다"는 거주인들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썩은 과일이 나오거나, 지난 식사 때 남긴 재료를 재사용하느라 메밀국수가 들어간 된장국 같은 해괴한 메뉴가 나오기도 했다.

희망원은 거주인에 대한 관리 소홀은 ‘복지부의 인력 배치 기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복지부 매뉴얼에 따라 대구시에서 인건비 보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거주인들을 제대로 관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한정된 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제시하는 인력 배치 기준은 최저선을 설정하는 것이므로, 시설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추가 고용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희망원의 자부담 고용의 여지는 없었을까.

대구시가 제공한 2016년 희망원(노숙인 시설) 종사자 기본급 기준을 살펴보면, 1호봉을 기준으로 원장이 249만 3천 원, 사무국장은 237만 6천 원, 생활복지사는 191만2천 원이었다. 복지부가 발간한 ‘2016년 노숙인 등의 복지사업 안내’에 나온 종사자 기본급과 비교하면 각각 41만1천 원(원장), 67만3천 원(사무국장), 35만2천 원(생활복지사) 높았다. 희망원에는 복지부 기준에는 없는 ‘팀장’급 임원도 있다. 부장급은 209만6천 원, 과장급은 194만6천 원을 받는다. 격차는 호봉이 높아질수록 점점 벌어져서, 10호봉 이후부터 원장과 사무국장은 복지부 기준보다 각각 64만 원, 84만 원 가량을 더 받는다. 물론, 복지부가 제시한 기준은 ‘최저선’이다. 그러나, 인력은 복지부가 제시한 ‘최저선’에 정확히 맞추면서 기본급만 최저선을 훌쩍 뛰어넘는 점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희망원 네 개 시설에서는 자판기와 매점이 각각 운영 중인데, 주요 고객은 당연 거주인들이다. 거주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발생한 자판기 수입은 매해 약 4800만 원에 이른다. 그리고 희망원은 이를 ‘김장비’나 ‘여름 휴가비’로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네 개 시설에서 각각 ‘직책보조비’ 명목으로 적게는 수십 만 원에서 많게는 8천여만 원에 이르기까지 지출되었다. 종사자 부족을 호소한 태도와 모순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16년 노숙인 시설 종사자 기본급 비교표 (비마이너 재구성)

의혹, 의혹, 의혹들...”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한 희망원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은 28일 진행된 2차 희망원 현장조사에서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했다. 복지부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를 위해 대구시가 작성한 조사요약보고서에 “지난 대통령 선거 시 기표 도우미(선관위)와 같이 기표대에서 본인 의사와는 다르게 기표 도우미가 기표한 사실을 확인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김 의원은 이러한 사실과 더불어 “이것 외에도 부정투표 관련 증언이 더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조사에서 김 의원은 “(현재는 희망원을 퇴소한) A 씨가 투표 당시 참관인 두 명과 함께 임춘석 희망원 사무국장과 함께 투표소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당시 참관인이 A 씨의 의사와 다르게 투표를 했다고 했고, A 씨가 이 문제에 항의하자 임 사무국장이 ‘이미 실수했는데 어떻게 하겠냐’며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고 진술했다.”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임 국장은 “거주인 투표 지원은 내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투표장 근처에도 간 적이 없다.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투표장에 임 국장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위증에 해당한다”는 문제 제기에 임 국장은 “2010년 이전에는 투표 지원 업무를 했다”고 뒤늦게 말을 바꿨다.

이어진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희망원은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했다. 지난 2월 16일, 대구시는 희망원 감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감사 하루 전날인 15일, 희망원은 대대적인 문서 파쇄를 했다. 희망원이 마지막으로 대규모 문서 파쇄를 한 것이 1998년이었다. 18년 만에 진행한 문서파쇄가 ‘공교롭게도’ 대구시 감사 하루 전날 진행된 것이다. 문서 파쇄가 감사에 대비해 무언가를 은폐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서 파쇄 담당자는 “공간이 협소해졌고, 모두 기한이 오래된 문서들인 데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파쇄했다”고 해명했으나, 문서 파쇄를 윗선에 보고하거나 결재를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종류가 많으니 그중 한 서류철이라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할 법도 한데, 담당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서류 목록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재차 주장했다. 정중규 희망원 진상조사위원장은 “10월 14일 국감종합감사일까지 정확히 어떤 문서들을 파쇄했는지, 98년 이후 파쇄한 적 없으니 서류 대조를 해서 정확히 제출하라”고 주문했다.

  희망원 내부 진료소 입원실 모습

‘가족적 조직’ 강조하는 희망원, 필요할 때만 ‘가족’인가

희망원에서 문제로 지적되었던 사안 중에는 거주인 노동 문제도 있다. 어떤 이는 정문에서 경비를 섰고, 어떤 이는 식당에서 일을 했다. 거주인 중 누군가 아파서 외부 병원으로 가면 간병인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직원 복리후생비’ 재원인 자판기도 거주인이 관리했다. 모두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했다. 정문 경비는 월 38만 원을 받았는데, 정기 휴무는 없고, 야간에도 일을 했다. 간병으로 나가면 하루에 1만 원을 받았는데, 근무시간은 24시간이었다. 희망원 진상조사위 1차 간담회에서는 “중증장애인 두 명을 정신요양시설에 두어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돌보게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희망원은 이를 ‘자조직 운영(가정적 역할)’이라고 부른다. 거주인들의 ‘잔존능력’을 유지 및 향상하고, 가족적인 모습을 지향하며, ‘봉사’를 통해 ‘서로 돕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러나 거주인 노동이 인건비에 드는 비용을 줄이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의심을 차치하더라도, 희망원의 ‘가족적 조직’이라는 설명은 2011년 12월 희망원에서 사망한 서모 씨의 사례를 짚어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 많다.

서 씨는 스무살이 된 1988년 희망원에 입소했다. 2011년 12월 27일 사망할 때까지, 당시 부원장이었던 김모 씨의 집으로 매일 출근해 가사도우미로 일했다. 김 씨는 서 씨는 ‘우리 딸’이라고 불렀고, 무연고자인 서 씨는 김 씨는 ‘아빠’라고 불렀다. ‘가족이라서’ 그랬는지 월급은 4만 원이었다. 하지만 일과가 끝나고 나면 서 씨는 다시 희망원 생활관으로 돌아왔고, 아침이 밝으면 다시 ‘아빠’ 집으로 가사일을 하러 갔다.

2011년 12월 13일, 평소 건강했던 서 씨는 열이 나서 원내 진료소를 찾았다. 진료소에서는 서 씨에게 항생제 등을 처방했다. 그러나 증상이 더 심해져서 같은 달 19일 외부 병원(당시 논곡가톨릭병원, 현 성요셉요양병원)으로 옮겼다. 폐렴이었다. 20일에 3차 병원(대구가톨릭병원)으로 옮겼다. 증상이 심각해 기도삽관을 했다. 그러나 기도삽관 후 하루만에 서 씨는 2차 병원으로 옮겨졌다. 기도삽관까지 할 만큼 위독한 환자를 2차 병원으로 옮긴다는 것은, ‘살 가망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 씨는 2차 병원인 가야기독병원으로 후송되었고, 27일에 사망했다. 열이 나서 진료소를 찾은 지 2주 만에 사망한 것이다.

그러나 서 씨가 3차 병원에서 2차 병원으로 옮길 때, 그러니까 이제 죽음을 준비하러 갈 때, 그의 곁에는 ‘가족’이 없었다. 당시 당직을 섰던 것으로 기록된 간호사는 오랫동안 희망원에 있었던 서 씨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서 씨가 죽음을 향해 가던 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했다. '그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5년이나 지난 일인데' 라며 말끝을 흐리는 간호사는 오히려 “기억하느냐”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이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야간 당직 간호사는 단 한 명, 진료소에 있는 환자만 50명이 넘는데, 이들을 다 제쳐두고 가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희망원의 많은 의혹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다. 인권침해 의혹이 불거지자, 국가인권위원회는 8월에 2차에 걸쳐 조사를 했고, 대구시는 9월 20일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두 기관 모두 10월 중으로 조사결과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김광수 의원 역시 14일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이 문제를 다시 다룰 예정이다.
덧붙이는 말

최한별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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