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총파업에 나선 이유?

[워커스 23호/이슈] 공공부문 총파업, 참여자 목소리를 담다

‘귀족노조’ ‘철밥통’ ‘뜨신 밥 먹고 배가 불렀다’ ‘우리나라의 위기와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집단’ 정부로부터, 보수 언론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당했던 공공부문의 노동자들. 이들의 투쟁은 곧잘 이기주의로 포장됐고, ‘국민을 볼모로 삼는’ 떼쓰기로 치부 당했다. 그런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성과연봉제(성과퇴출제)’를 철회시키기 위해 지난 9월 27일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성과퇴출제 폐지!’를 외친다. 성과연봉제는 정부가 사활을 걸고 공공기관을 압박해 5개월 만에 전면 도입한 제도다. 그 과정에서 노사 합의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 의결만 거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단호한 태도로 파업을 바라보는 정부가 과연 두 손 들까 싶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파업을 결심한 이유만큼 많다.

  사진 / 정운

‘우리가 옳다’ 확신에 찬 공공노동자들

이번 파업은 양대 노총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함께 나선 사상 최대 파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9월 29일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14개 사업장, 6만 2,000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정부가 어떤 대화 의지도 보이지 않아 2주차를 맞이한 파업은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공운수노조는 길거리 선전전, 총력투쟁대회, 촛불집회, 항의 방문 등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고 있다.

2차까지 진행된 총력투쟁 대회는 전국에서 5만 명, 3만 명이 모였다. 조합원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건강보험노조 소속 정나현(가명)씨는 아직 ‘신입’ 소리가 익숙한 입사 2년 차 사원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노조 동의 없이 임금체계가 개편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충분히 설명하는 시간도, 설득하려는 노력도 없던 점이 가장 크게 화가 난다고 했다. “무노동 무임금이잖아요. 그걸 감수하면서 파업에 나선 거예요. 다들 성과연봉제를 막겠다는 마음이 강경해요. 올해 입사자 빼곤 다 나왔다니까요.”

정부는 철도노조만 바라본다
정부는 특히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이라 규정하며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직위해제로 옭아매려 하고 있다. 정부와 철도노조의 오랜 악연은 2013년 수서발 KTX 민영화를 두고 23일이라는 최장기 파업을 벌인 이후 더 심화했다. 보수언론도 철도노조가 명분 없이 싸우고 있다며 때리기 일쑤다. 대규모 공공기관들이 파업에 나섰지만 정부가 유독 철도 파업을 주목하는 건 이런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철도 노동자들을 만났다. 철도 노동자들은 철도처럼 각 직무가 협업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경쟁을 도입하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들에 비틀린 충성을 할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지난 9월 30일 집회 현장에서 조합원을 챙기는 김숭식 철도노조 서울본부 연대사업국장에게 다가가 성과연봉제가 미칠 영향에 관해 물었다. 그는 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턴사원에서 정직원이 된 친구가 그런 표현을 썼어요. ‘성과퇴출제는 평생 인턴제다’ 왜냐면 계속 평가를 받아야 하니까요. 저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4개월 하고 정규직 되면서 경쟁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경쟁하라잖아요. 대체 무슨 경쟁을 할까요. 빨리 달리기를 해야 하나요?”

철도 기관사들은 99%가 넘는 파업참가율을 보인다. 철도공사는 대체 인력을 뽑겠다며 모집 공고를 내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기관사들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충분한 훈련 없이 투입되면 대형 사고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사 최정식 씨는 성과연봉제가 줄 세우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성과연봉제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 관리자가 매기는 점수가 절대적 평가 기준이 될 겁니다. 관리자한테 잘 보이려고 아부를 하는 직원도 있을 거고, 본인의 권리를 깎아가며 아파도 열차를 타고, 휴식 시간을 쪼개가며 조금 더 차를 많이 타려고 하겠죠.”

간부들부터 시작한 성과연봉제 엿보기

표 발매를 돕고 기기를 관리하고 승강장 안전을 살피는 역무원도 성과연봉제가 미칠 영향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평가를 위해 직무와 크게 상관없는 수치들이 중요해 질 거로 예상했다. 역무원으로 일하는 장영달 철도노조 영등포지부장은 2010년부터 1, 2급 간부들에게 도입된 성과연봉제로 이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좋은 보직으로 옮기기 위해 과도한 실적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장 지부장에 따르면 서울 모 역의 역장은 부정승차 적발 건수로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제가 그 역장님한테 벌써 여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거냐고 물었어요. 해당 역무원들이 정상적인 근무를 못 하고 부정 승차 적발에만 혈안이 돼 있어요.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승객의 안전과 서비스잖아요. 오죽했으면 그 역장님께 ‘조합원들 돈이라도 십시일반 모아 드릴 테니, 직원들 그렇게 쥐어짜지 말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고속 차량을 관리하는 김형균 교선부장은 지난 4일, 2차 총파업 총력결의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재벌을 살리기 위해 노동자가 희생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재벌을 구제하기 위한 돈이 많이 들잖아요. 노동자를 비용으로 보니까 민영화 형태로, 구조조정 형태로, 비정규직화 형태로 노동자를 거의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성과연봉제는 이런 정세에서 노동자가 절대 피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김 부장은 이번 공공 파업에 민주노조의 운명까지 달려있다고 봤다. “노동자들은 단결이 생명인데 성과 경쟁은 노동자를 뿌리부터 깨는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밀리면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다 깨집니다.” 그는 파업을 이끄는 지도부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국회에 자꾸 기대하게 되는 건 싸움의 성과를 그쪽에 넘겨주는 겁니다. 정치권에 의지하지 말고 노동자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합니다. 설사 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싸워야 하고, 우리 힘으로 세력화하고 힘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작금의 상황은 우려스럽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안전을 위해’ ‘민주 노조 사수를 위해’ 공공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심한 이유는 다양했다. 이들이 바라는 건 우선 대화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 직접 대보자는 것. 직접 교섭이든, 토론이든 자신 있다고 했다. 공공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가 틀린 제도라는 것을 입증할 준비가 돼 있다. <워커스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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