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촉구...“여성의 몸은 출산용이 아니다”

여성·사회단체, 인공임신중절 처벌 강화 입법예고안 철회 촉구

노란 세월호 광장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공고한 인공임신중절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 입법예고안에 반발하는 의미로 여성·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인 것이다. 이들은 입법예고안 철회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형법 상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성과재생산포럼과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을 비롯한 72개 여성·사회단체는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입법예고안 철회와 함께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지난달 22일 보건복지부는 현행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에 ‘비도덕적 진료 행위’의 항목으로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포함시키고, 이를 시술한 의사는 최대 12개월까지 자격을 정지할 수 있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어 이달 9일 산부인과 의사들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정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11월 2일부터 전면적인 시술 중단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여성·사회단체들은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인공임신중절 시술이 ‘비도덕적 진료 행위’의 항목으로 포함될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여전히 ‘임신중지’가 ‘죄’로서 존재하는 현실에 있다”며 입법예고안 철회에서 나아가 ‘낙태죄’ 또한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성·사회단체들이 이 같은 기자회견을 연 까닭은 근본적으로 “그 동안 정부가 법으로는 인공임신중절을 엄격하게 금지해 놓고도, 실제로는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강제 불임, 강제 낙태와 출산 억제 정책을 시행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생명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채, 우리 삶의 권리를 무시하고,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온 법과 정책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다양한 단체가 참석해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안을 규탄하고 낙태죄 폐지가 필요한 이유에 관해 의견을 밝혔다.

백영경 한국여성연구소 교수는 “오늘은 여성을 임신, 출산의 도구화한 국가 정책의 전환점이 돼야 한다”며 “국가는 여성의 자궁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과 사회 그리고 아이를 위해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미경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소장은 “이번 보건복지부의 시행령은 그동안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우선시하며 모체와 태아를 관리해오면서 장애여성과 태아의 생명을 유린해온 정책 선상에 있다”며 “장애여성과 태아가 존엄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세계적으로 연간 4만7천여 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단으로 사망하기 때문에 WHO도 임신중단권을 여성 인권의 하나로 본다”며 “정부의 이번 입법예고안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다”라고 제기했다.

나영 자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은 “지금 이 자리에선 304명을 바다 한가운데에서 죽어가게 한 국가에 책임을 묻기 위해 싸우고 있으며, 최근에는 백남기 어르신이 국가에 의해 돌아가셨고 그 국가는 또 한센인에게는 강제 낙태를 강행해왔다”며 “가부장 남성 중심 사회와 공모해온 국가는 생명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 묻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위원은 “이 자리에 나오면 ‘낙태충’이니 ‘문란하게 살다가 낙태하려는 살인마’니라는 비난이 일 것이라는 주위의 염려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성의 삶과 생명을 위해 나왔다”며 “나는 자궁, 엄마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며 여성의 몸과 삶을 먼저 존중하라”고 밝혔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임신을 지속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재생산권을 지지하는 여성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임신중지는 마지막 비상구로서 선택된 것이며 누구도 쉽게 낙태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인지, 원치 않은 임신에 상처받은 여성에게 조력하는 의사가 비도덕적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 보건복지부 입법예고안 철회를 포함해 낙태죄 폐지를 위해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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