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재건 기업의 두 얼굴…노조 파괴, 성 상납 논란까지

[워커스 24호] 세아상역, 클린턴 재단에 1억1,290만 원 기부

“세아상역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성 상납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기록이 있어요.” 지난 11일 아이티 노동운동단체 노동자투쟁연합의 야닉 에티엔느 씨가 미국 방송사 'ABC뉴스'에서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 한국 의류업체 세아상역 아이티 현지 공장의 노사문제가 쟁점이 되자 나온 말이다.

2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힐러리 테마주로 세아상역의 자회사인 인디에프가 각광받고 있다. 아이티 재건사업으로 맺어진 클린턴 가와 세아상역 경영진 간의 친분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미국 대선에선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힐러리를 공격하기 위해 세아상역이 아이티 노동자 권리를 침해한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

최근 허리케인 매슈가 강타해 1,0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난 아이티. 2010년에는 지진으로 3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지진에 연이은 재해로 유엔과 미국 그리고 한국 기업이 재건과 구호라는 이름으로 아이티에 다가갔다. 하지만 명분과는 다른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면서 여기저기서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실제 세아상역과 힐러리 클린턴이 함께 추진한 ‘카라콜 산업단지 개발’은 아이티 재건사업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았던 사업이다. 그러나 지금은 트럼프마저 공격할 정도로 다양한 논란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 패션 OEM 1위이자 세계 최대 니트 의류 제조 및 수출 기업. 주요 거래처는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와 갭, 자라, 망고를 비롯해 세계 주요 브랜드를 총망라한다. 최근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패션으로만 영업이익 1조 원을 넘봤다. 이런 굴지의 세아상역이 그동안 아이티에서 무슨 일을 벌여온 걸까?

재건과 봉사의 기업 vs 노동자 착취와 학대

  카라콜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채무자들의 신분증이 고리대금업자 차량에 전시돼 있다. [출처: 2013년 젠더액션 보고서]

국내에서 세아상역은 기업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내세운다. 실제로 이들은 아이티에서 의류 기부와 의료봉사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해왔다. 이미 2개소가 운영되고 있는 ‘세아학교’는 올해 첫 번째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세아는 아이티를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트럭도 아이티 오지를 누빈다. 그러나 이 기업에 대한 잡음이 나오기 시작된 건 오래전이다.

세아상역이 참가한 아이티 카라콜 산업단지 건설사업은 2010년 아이티가 지진 피해로 국가적 재난을 겪은 뒤, 같은 해 10월 미국 국무부, 아이티 정부, 미주개발은행(IDB)이 함께 아이티 재건 명목으로 착수한 사업이다. 미국 정부는 전력공장과 항구, 주택을 미주개발은행은 산업단지 시설과 인프라를, 세아상역은 경영과 자체 시설에 대해 일부를 투자했다. 아이티 정부는 땅을 제공하고 관련 세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2012년 10월 카라콜 산업단지가 개관한 뒤 본격 가동을 시작해 현재 세아상역은 산업단지의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입주사다.

그러나 세아상역의 현지 공장이 있는 카라콜 산업단지는 그 부지부터 아이티 농민들 삶의 터전을 뺏은 곳이다. 2012년 <뉴욕타임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아이티 북동부 카라콜 지역은 지진 진앙으로부터 160km 이상 떨어져 지진 피해와는 관련이 먼 비옥한 토지였다. 농민들은 여기서 옥수수, 고구마와 콩과 같은 작물을 키웠다. 그러나 아이티 정부는 여기서 경작하던 366명의 농부를 쫓아내고 이 토지에 산업단지를 건설했다. 정부는 농민에게 보상을 약속했지만 생계를 대신하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대신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농작물 가격이 올라가 오히려 생계를 위협했다. 더구나 모두 4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 원조로 지어진 카라콜 산업단지의 95%(2013년 기준)는 사용되지 않은 채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쪽에 세워진 전력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는 종종 범람해 농작물을 덮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산호초로 이뤄진 아이티 북부 해안의 생태 환경이 파괴된다고 우려했다.

아이티 재건 사업 채결 전에도 세아상역 남미 공장에서 노동자 탄압 보고가 잇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관계없이 아이티 재건 사업은 체결됐고 이 논란이 다시 아이티에서 반복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애초 세아상역의 노동탄압 논란은 2010년 12월, 미국노총이 카라콜 산업단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세아상역이 과테말라에서 저지른 노동법과 형법 위반 사실을 밝히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5장에 달하는 이 기록을 보면 세아상역은 뇌물, 협박, 그리고 노조 결성을 막거나 해체하기 위한 강제 구금으로 고발됐다. 게다가 한 현지 노동조합은 과테말라 당국이 방관한 노동조합 리더의 강간 피해 사건에 세아상역 관리자의 연루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이 같은 논란을 다시 취재한 'ABC뉴스'에 세아상역 대변인은 “지역 관리자 2명을 해고하고 불만 처리절차 개선을 포함한 적합한 조치가 취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금융공사(IFC)가 협력해 추진하는 ‘더 좋은 일(BetterWork)’ 프로젝트가 올 4월에 발표한 아이티 보고서에 따르면, 세아상역 소유의 공장(S&H Global S.A.)은 조사 대상 25개 공장 중 유일하게 ‘성적 괴롭힘’ 항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았다. ‘더 좋은 일’ 보고서가 “성적 괴롭힘은 가장 민감하고 발견하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로 발생 정도를 충분히 알 수 없다”고 밝힌 것처럼 피해 사례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더 좋은 일’ 아이티 보고서는 이외에도 세아상역이 운영하는 공장에 대해 유급휴가와 출산휴가,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과 굴욕적 대우, 고용계약, 노동환경, 초과근무 등의 문제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세아상역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만약 무언가 (문제가) 제기된다면, 신속히 대응할 것”이라고 'ABC뉴스'에 밝혔을 뿐이다.

한편, 미국에 위치한 여성인권단체 ‘젠더 액션’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세아상역은 니카라과에서도 노조 지도부 해고와 노조 활동 탄압으로 고발당한 바 있다.

국제노동운동단체 노동권컨소시엄(Workers' Rights Consortium)에 따르면, 세아상역에 고용된 아이티 현지 노동자들의 임금도 법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발효된 법에 따라 아이티 의류노동자는 하루 8시간 노동에 6.81달러를 받아야 하지만 2013년 기준, 노동자의 대부분은 4.54달러를 받고 있다. 이 단체는 카라콜 산업단지의 평균 노동자들이 법정 임금보다 34%를 덜 받고 있고, 이곳에 위치한 주요 기업은 세아상역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세아상역에서 1년 이상 일했던 27세 여성노동자는 하루에 6달러 이상 받아야 하지만 4달러 정도만 받고 있다며, 이 때문에 빚을 지고 있어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토로한 바 있다.

노동권컨소시엄에 따르면, 사용자들은 3가지 방법으로 임금을 갈취하는데, 노동자들이 할 수 없는 물량 목표를 설정하거나 추가 노동수당을 주지 않거나, 기록된 노동시간 전후 또는 점심시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카라콜 상주 공장은 대부분 저임금으로 산업단지 내외에서는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있다. 한 고리대금업자는 산업단지 외부에 자신의 차를 주차하고 자신에게 빚을 진 세아상역 공장 노동자 등의 신분증을 전시해놓기도 했다.

세아상역, 클린턴 재단에 1억1,290만 원 기부

이 같은 세아상역은 아이티 진출을 계기로 클린턴 측과 공적, 사적으로 깊이 연결된 것으로 드러나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16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보도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 최측근 인사가 한국 의류기업의 아이티 진출 과정에 도움을 주면서 양측이 ‘특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클린턴의 국무장관 재임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셰릴 밀스는 세아상역의 아이티 공장 개설에 도움을 주었고, 밀스가 국무부에서 일하는 동안 세아상역은 클린턴 가족재단인 ‘클린턴 재단’의 사업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기부자가 됐다. 또 이 둘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가나에서 인프라 사업을 하는 회사 ‘블랙아이비’를 매개로 사업적 관계를 이어갔다.

ABC뉴스에 따르면, 카라콜 산업단지 개발에 관계된 당사자 대부분은 클린턴 재단에 기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주개발은행은 지금까지 클린턴 재단에 100~500만 달러, 월마트는 100~500만 달러, 갭은 10~25만 달러를 이 재단에 지원했다. 2012년, 세아상역은 5~10만 달러(1억1290만 원)를 재단에 기부했다. 미국 민간연구기관 경제정책연구센터의 연구원 제이크 존슨은 “클린턴 재단 기부자들은 아이티에서의 원조 사업에서 뚜렷한 이득을 취했다”며 “클린턴 재단에 기부하고 있던 자들이 아이티 재건 사업에 포함된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지적했다.

세아상역은 아이티에 봉제공장 5개를 건립하고 6번째 공장을 계획하고 있다. 아이티 현지 법인은 지난해 세아상역의 대미 수출액 1조5,400억 원 가운데 약 15%를 생산했다.<워커스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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