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파가 가장 증오하는 사나이, “우리 힘은 풀뿌리 연대”

[워커스 25호] 〈노 헤이트 스피치〉 저자 간바라 하지메 변호사 인터뷰

“친하게 지내요.” 일본 극우의 혐한 시위에 나타난 손자보가 대번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레이버넷 일본>에 올라온 사진에는 욱일기를 들고 행진하는 일본 극우의 시위를 시민들의 손자보가 빽빽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본 시민의 ‘카운터 행동(대항 행동)’은 ‘시바키 부대(인종주의 타격부대)’, ‘플래카드 부대’, ‘횡단막 부대’, ‘알림이 부대’, ‘여성조’ 등 유기적인 위력을 낳았다. 결국 극우 재특회(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시위는 올해 법적으로 저지됐다. 때마침 일본 극우파가 가장 증오하는 사나이, 간바라 하지메 변호사가 집필한 <노 헤이트 스피치>를 <나름북스> 출판사가 발간하면서 국내에서도 일본 카운터 행동의 문맥이 자세히 소개됐다. ‘시바키 부대’의 회원이자 일본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액션 인권변호사’로도 유명한 그를 《워커스》가 서면 인터뷰했다. 간바라 변호사 인터뷰 번역은 <레이버넷 일본>의 야스다 유키히로 공동대표가 도움을 줬다. 인터뷰는 <나름북스>의 도움으로 성사됐다.

[출처: 나름북스]

‘카운터 행동’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3년 2월 9일, (극우 단체가)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의 한인 타운을 줄지어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카운터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조센진(조선인)들을 다 죽여 버려” 등을 외치면서 걷고 있는 시위대를 보고는 매우 놀랐고, 그래서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반(反) 인종주의(anti-racism) 운동은 인종주의가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최종적으로는 다수자의 인권도 빼앗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치스와 같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죠.

지난 5월 24일 일본에서는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대처법’, 일명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은 카운터 행동의 성과로 평가되는데요.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 해소법>은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벌칙도 없고, ‘불법체류자’ 등을 차별 대상자에서 제외해 불완전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애초 이 법으로는 헤이트스피치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16년 6월 5일, 가와사키에서 진행된 ‘헤이트 데모(혐오 시위)’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경찰이 카운터 행동이 아니라, 헤이트 데모 쪽에 더 엄격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시위는 중단됐습니다. 법 제정이 경찰을 변화시키는 배경이 됐던 것입니다. 이후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법 제정으로 조금이라도 일본 공권력의 대응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카운터 행동은 ‘시바키 부대(인종주의 타격부대)’, ‘플래카드 부대’, ‘횡단막 부대’, ‘알림이 부대’, ‘여성조’ 등 유기적이고 다양한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신은 이 운동이 새로운 정치 참여의 모델을 제공했고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개척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카운터 운동이 나타난 배경에는 틀림없이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재난과 그 후 원전사고의 영향이 있습니다. 지진 재난과 원전사고로 정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났죠. 2012년경부터 국회 주변에서 원전에 항의하는 시위가 활발해지고, 길거리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일상화됐습니다. 그 연장선에 카운터 운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정부나 우파 언론은 정부의 경찰폭력에 맞선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대항을 ‘폭력적’이라고 하면서 시위 전체를 “불법” 행동으로 매도합니다. ‘시바키 부대’는 이름에서부터, ‘시바쿠’의 어원, “가느다란 끈 같은 걸로 때린다”처럼 그 의미부터 폭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이 사회에서 인정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바키 부대’의 최초 모집 요건에는, “비폭력 활동”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것을 쓴 노마1씨는 예를 들면, 톨스토이로 대표되는 ‘절대적 비폭력주의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실력 행사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상가입니다. 그래도 시바키 부대가 ‘비폭력’ 전술을 쓴 이유는, 기존의 반인종주의 운동이 실력을 행사하다가 경찰의 탄압대상이 되면서 인종주의자들의 조롱거리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피하고자 사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술적으로 ‘비폭력’ 방침을 채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카운터 운동 참가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비폭력’ 전술에도 일탈 행동이 나타나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카운터 운동이 사회적으로 지지받는 이유는, 거의 모두가 ‘비폭력’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재일(코리안)’과 ‘재특회’ 구도를 피하며 운동의 주체를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설정했다며 큰 의미를 뒀습니다.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 중요했던 것은, 피해자인 재일 코리안이 아니라,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운동의 주체로 내세운 것입니다. 이로써 ‘재일’ 대 ‘재특회’라는 구도를 피하고, ‘일본 사회’ 대 ‘인종주의자’라는 구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재일’ 대 ‘재특회’라는 구도가 생기면, 재일 코리안들이 운동의 전면에 서게 됩니다. 그러면 많은 재일 코리안은 주저합니다. 피해를 본 재일 코리언들은 복수를 두려워해서 형사고소를 망설입니다. 피해자가 많으면 그 내부에도 복잡한 사정이 생깁니다. 재일 코리언의 경우 2세, 3세 재일들과 소위 뉴커머(일본인과 결혼한 재일 코리언)들도 각자의 생각이 조금씩 다릅니다. 피해자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카운터 운동은 운동 주체를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했기 때문에 이 어려운 문제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에서 혐한 시위는 혐한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넷 우익의 확대 이후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온라인 극우가 늘어났고 오프라인 행동도 합니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반인종주의, 여성 혐오 여론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넷, SNS의 활용은 한편에서는 사회운동을 활성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네토우요>(인터넷 우익)로 대표되는 인종주의 운동의 온상이 됐습니다. 인터넷상 인종주의나 성차별(sexism)을 해소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 규제라는 문제에 직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법적 규제에 의지하지 말고, 우선 시민운동의 힘으로, 인터넷상의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를 해소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본 극우 여론에 불을 지핀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였다며 재특회는 이를 계기로 한인 거리에서 이른바 ‘산보’를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우파는 일제 식민지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한국의 민족주의 감정을 쉽게 동원하고 있는데요.

일본에도, 한국에도 서로 미움을 부채질하는 극우세력이 존재합니다.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상대를 악마와 같이 묘사하고, 불신과 미움을 부채질하는 것입니다. 반면, 많은 일반시민은 문화나 스포츠의 상호 교류를 통해, 서로가 악마가 아닌 것, 신뢰할 수 있는 친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익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는 문화적 교류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상호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나름북스]

민족주의에 대한 한일 각 우파 정부의 태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우파는 독도,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우파가 주도하는 역사 왜곡에 대해 구 식민지 시대 형성된 민족적 감정에 기초하여 대응하는 반면, 일본 우파는 제국주의적 입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에서도 인종주의는 출신국의 경제적 지위와 인종적 우열에 기초하여,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종주의는 제국주의의 문화적 담론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당신 또한 “일본처럼 총리 자신이 과거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하거나, 침략 전쟁을 저지른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정부를 가진 나라에서는 헤이트 스피치 규제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헤이트 스피치 규제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아베 정권이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에 대해 확인하고 피해자들에게 명확히 사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노 헤이트 스피치>는 역사 왜곡 문제 해결에도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유감스럽지만, 카운터 운동을 함께하는 사람 안에 역사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보다 쉽게 카운터 운동에 참여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러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재판을 직접 해오기도 했고, 카운터 운동 참가자 중에는 재판을 함께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역사 문제와 인종주의 문제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고, 카운터 운동 참가자들이 좀 더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세계적으로는 인종주의가 확대됐고 극우가 부상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운동의 성장기로 나타났지만, 정치적 성과는 야당보다는 자민당이 취하고 있습니다.

일본 민주당은 자민당 일당독재를 타파하며 2009년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애초 많은 국민은 관료주의 타파, 대미 외교 재검토, 빈곤문제 해결 등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모두 배신당했습니다. 특히,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로 기존 공약을 헛되게 해서 자민당 시대의 정책으로 돌아가, 많은 국민은 민주당이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거기에 원전사고가 일어나고, 사고 대처의 서투름 때문에 민주당은 결정적으로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 또 그때 중국이나 한국과의 마찰이 늘어나 내셔널리즘이 가속하면서, 우익적인 지향이 더 강한 자민당이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당신은 인종주의 타파를 위해서는 법적 규제보다도 “최후의 힘은 시민의 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민주주의가 단지 ‘선거’만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라며 “민주주의는 오직 사람들의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반인종주의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이 아니라 단결이며, 꾸준한 운동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미국 공민권운동은 킹 목사를 비롯한 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단결을 기반으로 전진하며, 최종적으로 승리했습니다. 공민권운동에서 시위, 연좌 등 많은 ‘시민적 불복종’ 운동이 성과를 올렸습니다. 유럽에서는 인종주의를 규제하는 법률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인종주의 근절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인종주의를 규제하는 법률이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독일에서도 아직 네오나치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들과 대항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시민의 운동입니다.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평화로운 세계를 함께 구축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1) 카운터 행동은 일본 음악잡지 편집장인 노마 야스미치 씨가 트위터를 통해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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