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꼬리 치고 짖고, 개처럼 장사하기

[워커스 25호] 청년자영업보고서

트윗(@goyo_bookshop) 1. 겟과로 태어나서 장사하는 것도 힘들다. 손님을 개처럼 기다림… 다음 생이 있다면 고양이나 고양이과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다.

트윗 2. 생각해보니 반가운 손님 오면 꼬리치며 나가는데 가끔 무례한 사람들에게 잘 짖기도 함. 진짜 개처럼 장사함.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손님과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다시 시작됐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폭염 이후 손님이 꽤 있었고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 시기가 끝나감을 하루하루 느낀다. 급격히 떨어진 기온, 차갑게 내리는 비. 한때 내게 너무나 익숙했던 고요 이상의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손님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일없이 한가한 것은 아니다. 작은 서점이지만 혼자 운영하다 보니 일일이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늘 쌓여 있다. 책 선별·입고·관리와 자잘한 메일 회신은 물론이고, SNS 게시 글을 작성하거나 연재 중인 글을 쓰거나 행사나 모임을 기획하고 섭외하고 홍보 디자인 물을 만드는 등의 일을 손님 응대 시간 외에 틈틈이, 혹은 운영 시간 외에 해야 한다. 이와 중에 매체 취재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있다. 책을 읽는 일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일과 관련된 도서들이 과제처럼 쌓여서 우선 읽어야 할 책 목록이 길어져만 간다.

그렇지만 서점에서 이런 일들을 하는 중에도 머리나 몸의 감각은 밖을 향해 있다. 계속 계속 기다리는 것이다, 손님의 방문을. 지나가는 사람의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빼 들거나 기척에 움찔거리게 된다. 그러다가 익숙한 손님의 얼굴이 등장하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거나 인사하는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그러던 어느 날 떠올랐다. 고향 집에 있는 우리 강아지가. 집에 있는 내내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은 소리만 나도 문 앞으로 달려가 앉아 있는 그 모습 말이다.

장사에 적합하지 않은 ‘갯과’ 사람

생각해보니 그랬다.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고,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꼬리 칠 기세로 반가워했다. 그리고 또 하나.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손님이 오면 친절함을 거두고 대하거나, 불쾌함을 드러내어 서점 문을 나서게 하기도 했다. 경계해야 할 사람이라는 감이 오면 짖어서 쫓아내기. 이것 또한 딱 개였다. 그래서 그날, 앞에 적은 트윗을 날렸다. 사람을 두고 갯과, 고양잇과로 분류할 수 있다면 나는 딱 갯과다. 꼬리도 잘 치고 짖기도 잘하며 가끔 물기도 한다. 어쩌면 갯과 사람에게 장사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특히, 짖어야 할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자꾸만 움츠러든다.

서점 운영 초반에는 짖고 물기보다는 꼬리 칠 일이 더 많았다. 손님 대부분이 좋은 분이었다. 비록 좋지 않더라도,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공간에 어렵게 찾아와준 누군가라면 그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고요서사에 대해 무어라 말하든 반갑고 감사했다고 적을 수 있다면 참 좋았겠지만 난 처음부터 그러지 못했다. 편집자 시절 강인규 기자의 칼럼 집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 안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손님은 왕’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그 말이 감정 노동자들, 즉 서비스직에 얼마나 폭력적인지 말이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불편하지 않았다.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주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거나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방문한 가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말들이 말이다. 돈을 쓰는 게 목적이 아니더라도 열려 있는 상업공간을 자유롭게 둘러보고 그곳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을 당연한 일, 혹은 나에게 주어진 권리처럼 여겼다.

그런데 막상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손님’이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무례’가 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사장인지 알바인지 묻는다거나(난 들어온 사람의 직책을 대뜸 묻지 않는다), 왜 이 가게를 시작하게 됐는지 묻는다거나(당신이 선택한 직업이 무엇인지, 선택의 이유가 무엇인지 난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 책은 어디에서 들여 어떻게 고르고 노하우는 무엇인지 묻는다든지(식당가서 재료 구입처와 요리법을 묻나?) 하는 일은 정말 무수하다.

혹은 책을 사러 왔는지, 내 취향을 간파하러 왔는지 헷갈리는 경우들도 있다. 서가를 둘러보고 “대충 어떤 취향인지 알겠네요”라든지(내 개인 서재가 아니라 판매용 서가다), “아 그런 종류를 좋아하는구나?”라든지(그냥 추천해 달래서 한두 권 말했을 뿐이다), 누구누구 작가 책은 읽어봤는지 등을 시험하듯 묻는다.

무례에는 무례로, 오는 손님 막는 사장들

손님이 가게 주인에게 무엇이든 물을 권리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나 또한 질문의 의도를 밝히지 않는 한 대답을 거부하는 일도 잦아졌다. 조금 더 말해볼까. 가게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 권리도, 묻지 않았는데 평가할 권리도, 사적인 이야기를 궁금해할 권리 또한 없다. 무례에는 무례로, 이게 가게 운영 1년이 지나 내가 체득한 태도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이 서점을 오래 운영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주위에 있는 젊은 자영업자들이 모두 이런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손님의 무례를 웃는 얼굴로 견디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되는 경우에만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영업이 끝난 후 조용히 소주를 마시며 속을 삭인다. 나처럼 손님에게 할 말을 하는 경우들도 있다. 면전에 대고 하지 못하면 반복되는 손님들의 무례한 행동을 SNS를 통해서라도 알리고 자제를 권한다.

예전에 경리단길의 모 술집을 갔을 때 신선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중년의 남성이 사장이었던 그 술집은 손님을 ‘걸러서’ 받았다. 가게에 자리가 있더라도 시끄럽거나 제멋대로 굴 듯이 보이는 손님은 받지 않았다. 특별한 기준이 있지는 않았고 손님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순전히 사장이 감에 따라 판단했다. 이전에는 가게 주인이 손님을 걸러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맘에 안 드는 손님에게 욕이나 시원하게 하는 ‘욕쟁이 할머니’ 같은 사장 캐릭터만 들어봤을 뿐.

사람들에게 짖어댈 일이 잦아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들어올 때 쫓아내지만 않을 뿐, 나도 손님을 걸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기준에서 무례하다고 느낀 사람에게 나 또한 냉대하면 그 손님이 다시 올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책이나 출판을 좀 안다며 거들먹대는 어르신들에게 내 특기인 ‘되바라짐’을 드러낼 때가 있는데, 그들이 어쩌면 내게 베풀었을지도 모를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차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내 멋대로 응수할 때마다 속이 시원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태도로 대한 이후의 맘이 편안할 리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손님의 입장이었을 때 내가 범한 무례의 기억이 나를 덮쳐올 때가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어쩌면 나를 괴롭힌 사람이라고 여긴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선량하고 예의 바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내가 돈을 내는 입장이 되면 무례의 가면을 써도 된다고 언제부터 누가 가르치기라도 했을까.

종일 가게에 있다 보면, 출입문을 떡하니 막고 주정차를 한 사람에게도 언성을 높여야 하고, 이래저래 꼰대처럼 굴거나 심심풀이 수다나 떨고 싶어 오는 아저씨도 쫓아내야 한다. 그러니, 제발 손님하고는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늘 꼬리 치는 개처럼 장사하고 싶다. 그렇다고 나를 개처럼 대해달라는 뜻은 아니다. 가게 주인도 손님인 당신과 한 공간에 있는 어엿한 사람이다. (워커스 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