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어찌할거나

[워커스 25호] 나를 찾아서

“위 아 더 월드” 조선일보, 한겨레, JTBC가 한마음처럼 박근혜 정권을 공격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0월 25일 JTBC의 태블릿 PC 보도 이후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듯한 정국입니다. 임기 최초로 대통령은 “순수한 마음”을 담은 사과문을 발표했고, 하루하루 속보와 단독 보도가 쏟아지며 또 어떤 새로운 게 나올지 그 어느 때보다 뉴스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정치권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지만, 뭐가 얼마나 다른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거국중립내각, 책임 총리, 과도내각 등등 여러 말들이 나왔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이전처럼 국정운영 일선에 서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반대하는 것 같고, 어떻게 사태를 수습할 것이냐를 두고 새누리당, 민주당, 국민의당이 서로를 비판하는 모양새입니다. 각자 내년 대선에 대한 노림수를 갖고 있겠지요.

한편 광장에서는 촛불이 다시 타오를 조짐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퇴진”은 그저 현실감 없는 구호로 여겨졌을 뿐이었죠. 그런데 이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사람 모두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습니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 등 박근혜와 최순실을 향해 여론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슬며시 궁금해집니다. 박근혜는 어떻게 한순간에 버린 카드로 전락한 것일까. 최순실이 권력의 실세이긴 한 걸까. 재벌의 청부사업인 노동개악, 그 시범타인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에 맞선 철도파업은 한 달이 넘었고, 이제 재벌은 강제모금의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짜고 있습니다. 진짜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전국이 시끌시끌한 지금,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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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ype 이정현 형

박근혜 대통령을 옹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충만한 당신, 역시 진정한 충신은 주군이 위기에 몰렸을 때 드러나는 법이지요. 덕분에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자”,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얘기 듣는다”는 주옥같은 명언이 나왔습니다. 당신은 95초짜리 사전녹화 사과문을 읽고선 질의응답도 없이 퇴장한 대통령의 뒷모습에 비통함이나 측은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군요. 보수언론과 새누리당, 아니 친박까지도 대통령을 외면하며 버린 카드 취급하고, 믿었던 대통령 최측근마저 검찰에 끌려가서는 “대통령이 시켰다”고 배신하는 이 어지러운 정국에서 굽히지 않는 소신을 보여주는 당신은 이 시대의 충신입니다. 봉건시대면 뭐 어떻습니까. 옆에서 의리 지키면 나중에 뭘 좀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저러나, 불과 반년 전만 해도 ‘내가 진짜 친박’이라며 총선에서 열을 올리던 새누리당의 그 많던 친박, 진박, 심지어 뼈박들은 어디 갔을까요. 격세지감입니다.

B type 조선일보 형

지난 총선을 거치며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돌아선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 대통령 탈당과 친박 해체까지 거침없이 주장하는 조선일보. JTBC와 함께 최순실 게이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쌍두마차로 나날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금씩 논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단 불은 지펴놨는데, 연일 대통령 퇴진시위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거국중립내각으로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조선일보가 이 와중에도 일관되게 산업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정권이 무능해서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 한다는 주장과 함께 말이죠. 성과연봉제를 칭송하고 1달 넘게 이어지는 철도파업을 귀족노조의 불법파업으로 몰아가는 기사도 꾸준히 나옵니다.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사설도 재단을 만들기 위해 재벌들에게 강제로 돈을 뜯었다는 게 이유. 지금 대통령은 무능하니, 새로운 내각으로 구조조정도 밀어붙이고 파업도 때려잡고 재벌들이 마음 편하게 돈 좀 벌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역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장입니다.

C type 김종인 형

박근혜도 싫고, 문재인도 싫은 당신은 폭풍 같은 정세의 한가운데서 오직 개헌만을 외치는 김종인에게 끌립니다.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는 제도정치의 영원한 떡밥이죠. 정치가 개판인 이유는 무능한 대통령이 국정의 전권을 손에 쥐었기 때문이고, 능력 있는 내각이 권력을 쥐어야 정치도 경제도 바로 선다는 신념 아래 내각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4.19 직후에 내각제로 들어선 장면 정권이 한국 정치사에서 손꼽는 무능정권으로 평가받는 건 어떻게 답하실는지.

어쨌든 김종인은 최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60명만 똑똑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내각을 구성하고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건데요. 전문적인 정치 엘리트와 관료의 정권은 과연 지금보다 나을까요? 생각해보니 김종인의 입에서 ‘민주주의’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같이 개헌 주장하다가 책임총리 떡밥을 물었던 손학규는….

D type 문재인 형

박근헤 정권이 식물 정권으로 전락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지금 당장 정권을 끌어내리는 정치적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당신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계산이 복잡해진 문재인 형에 속합니다. 정권이 민심의 대대적인 저항에 직면하는 것은 야당에 유리하지만, 혹시라도 앞서나갔다가 역풍을 맞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지금 이 국면만 유지된다면 내년 대선에서 충분히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셈법입니다. 촛불시위가 광범위하게 퍼지는 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잘만 이용한다면 내년 대선 승리의 토대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치권이 굳이 촛불에 참여할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촛불은 촛불일 뿐, 정치적 협상력을 높여주는 훌륭한 무기이지만 그 자체로 정권을 엎어버린다거나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지금 사태를 수습하는 것 따위는 선택지로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을 정상상태로 만들어줄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은 높아지고 있고, 분명한 입장과 태도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거리에 나가서 촛불을 들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계속 페이스북에 글만 쓰고 기자들과 얘기하는 것만으로 퉁 칠 것인가. 왠지 우유부단, 눈치 보기라고 느끼는 건 저뿐인지.

E type 심상정 형

애매모호한 민주당, 국민의당과 달리 정의당은 비교적 분명하게 대통령 하야와 조기 대선 실시라는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나아가 새누리당을 해체하라고 요구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중립내각도 필요 없고 일단 대통령이 물러난 뒤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과도내각을 꾸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애초에 정의당의 전략은 야권연대를 통해 대통령은 민주당이 가져가는 대신 내각에 참여해 일정 지분을 확보하는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었는데, 그 실현이 멀지 않았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을 수사하라는 구호에서 멈춘 민주당과 하야하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건 정의당은 분명 차이를 보입니다. 4.19나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는 당신에게 정의당은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헌법 내 진보”를 외쳤던 심상정 대표, 그런데 그 헌법이 만든 체제는 과연 또 다른 최순실과 박근혜의 등장을 막을 수 있을까요?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권력이 대중의 손에 없는데, 공직과 비선이라는 게 칼로 무 자르듯 명확히 구분되는 것일지 의문입니다.

F type 촛불 시민 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민주시민의 자부심을 안고 늦가을 추위에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오는 당신은 촛불 시민입니다. 웬일인지 조선일보마저도 이번 촛불시위는 나름대로 ‘중립적’인 시각에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이 2%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시국선언이 발표되는 지금 촛불은 대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누리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촛불에 참여한 사람이 있다고 하니, 가히 2008년 촛불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단 박근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당신, 그런데 그다음은 뭐가 되어야 하는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하야가 맞는지 퇴진이 맞는지, 중립내각이 들어서야 하는지 아니면 대선을 앞당겨서 치러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대통령만 물러나면 되는지, 뭐가 더 바뀌어야 하는지도 쉽지 않은 질문. 어쨌든 대통령은 물러날 생각이 없고 여당도 모르게 개각을 강행하면서 일단 지금은 박근혜 물러가라고 외치는 게 중요하겠지만, 박근혜 개인의 무능, 불통, 혹은 종교(?)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G type 반체제 형

제도정치에 뿌리 깊은 반감을 품는 당신, 하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진성 좌파입니다. 비선 실세 재단을 만들어주는 데에는 순식간에 800억 원을 모아놓고, 최저임금위원회에 와서는 한 푼도 올려줄 수 없다며 강짜를 놓던 재벌들이 이제 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증스럽죠. 박근혜, 최순실은 그들이 쓰다 버릴 수 있는 카드일 뿐, 권력 실세라고 믿지 않습니다. 재벌이라는 진짜 권력에 기생해 이득을 취하는 아전이나 마름 정도는 될 수 있겠지요.

박근혜가 물러나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걸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봤자 어차피 재벌들은 다시 자신들의 권력을 누릴 테니까요. 헌법은 그저 이 진정한 권력 실세에 민주적 외피를 둘러주는 장막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이참에 권력구조를 뒤엎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여론의 이목이 꽂힌 상황에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을 제기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요. 어쨌든 하루하루 정세는 급변하고, 당신의 앞에는 가장 무거운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H type 무관심 형

뭔가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딱히 변화를 원하지는 않는 당신의 생각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당신은 약간 냉소적인 유형일지도 모릅니다. 촛불 들고 거리에 나가봤자 어차피 변하는 것도 없고, 또 뭔가 변한다고 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어쩌면 지금 까면 깔수록 튀어나오는 의혹들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말 그대로 의혹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마 저게 다 사실이겠어?”라고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지요. 어차피 정치란 그 나물에 그 밥, 복잡한 일에 신경 쓰기보다 오늘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보내는 게 중요한 당신.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련 뉴스들을 한 번 훑어보는 걸 추천합니다. 웬만한 드라마보다 재밌거든요. (워커스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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