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극우에 돌아선 러스트 벨트

[워커스 인터] 부상한 극우 vs 유럽 좌파 공동의 대응

프랑스 북부 칼레 해협에 인접한 작은 마을 메리쿠르.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산업도시다. 이곳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대대로 공산당원이었던 중년 남성 로랑 다쏭빌 씨는 2년 전 국민전선으로 당적을 옮겼다. 현재는 이 지역 국민전선 대표로 대선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는 “좌파는 우리가 극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린 르펜 당수의 말을 잘 들어보세요. 중요한 내용은 좌파정책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좌파가 자기 전통을 잊어 버렸죠”라고 <뉴욕타임스>에 토로했다. 다쏭빌 씨는 전체 좌우 스펙트럼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게는요”라며 “(좌우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칼레 해협 연안에 사는 많은 이들은 다쏭빌 씨와 같은 생각을 한다. 1970년대 프랑스가 제조업에서 서비스 기반의 경제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이곳 같은 산업도시들은 침체를 거듭해 지금은 소위 프랑스식 ‘러스트 벨트’가 됐다. 칼레 해협의 노동계급 유권자들은 애초 프랑스공산당이나 사회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이 더 이상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듯, 이곳 노동자들도 좌파 정당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출처: commons.wikimedia.org]

국민전선은 이러한 노동계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르펜은 올랑드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대해 ‘사회적 억압’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국민전선은 위기의 책임을 자본가가 아닌 이주민에 전가하며 대안을 찾는다. 그들에게 극우라는 딱지가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가 아닌 눈앞에 보이는 이주민을 적대하는 이들의 구호는 약자를 공격하며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하지만 사회적 불황과 잇따른 테러와 맞물린 지금은 꽤나 선동적인 구호다.

그러나 극우 르펜이 지지율 1위를 달리더라도 결선에서 신생 우파 에마뉘엘 마크롱이 우파와
중도 표를 모으며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크롱은 올랑드 정부의 경제 관료이자 사회당 우파 출신이지만 당내 경선을 거부하고 독자 출마해 제3의 길을 내걸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출신의 마크롱이 집권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소급된 제3의 길을 다시 걷는다면 자본가계급에는 아쉬울 것이 없는 선거가 된다. 물론 노동자계급에는 암울한 미래만 펼쳐질 테지만 말이다.

배신당한 노동계층

프랑스 노동계층의 새로운 대리자로 나선 극우의 부상은 올랑드 사회당 정부의 책임이 크다. 2012년 대선에서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이끄는 우파 정부에 신물난 유권자들을 향해 ‘진정한 적’은 ‘금융의 세계화’라며 자신을 ‘정의의 후보’라고 불렀다. 대표적으로 1백만 유로 이상을 버는 소득자에게 75%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조치는 올랑드 집권 뒤 반짝 빛을 냈지만 2014년 돌연 끝나버렸다. 올랑드는 애초 독일이 지지하는 긴축 정책도 반대했다. 하지만 취임 1개월 만에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연합의 재정 계획을 지원했고, 반발하는 급진좌파를 비난했다. 초기 좌파 성향의 내각도 중도적인 인물로 교체했다. 물론 올랑드만 유권자들을 기만한 것은 아니다. 1981년 선출된 미테랑 사회당 정부도 주요산업 국유화, 임금 인상, 연금 수령 연령 인하를 내걸고 승리했지만 결국 규제 완화와 경제 자유화를 향한 길을 걸었다.

그뿐 아니라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과 무슬림, 이주민 차별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올랑드 정부는 감시체제를 강화했고, 사회는 더욱 보수화했다. 캐나다 진보언론 <글로벌리서치>에 기고한 스테판 키퍼 요크대학 교수에 따르면, 연이은 프랑스 테러로 비상사태령이 실시된 2015년 말 이래, 4천 건 이상의 인권 침해 사건이 일어났으며 기습 검거와 가택 수색도 비일비재했다. 600명 이상이 자택 구금을 당했고, 자신의 위치를 하루에 세 번까지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또 수많은 모스크가 폐쇄됐다.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시위도 금지됐다. 2015년 12월 파리 기후회의 시위를 준비하던 환경운동가까지 수백 명이 구금됐다.

하지만 수색과 체포, 통행금지, 자택 구금 등 비상사태로 취해진 조치들은 ‘대테러’의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신 2015, 2016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테러와 아무 상관 없는 수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의심과 차별의 문화, 무슬림과 이주민에 대한 육체적, 심리적인 학대가 늘어났다. 사회당 내 좌파 부상했지만 이번 대선에서 사회당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이 위기는 지지율 4%로 곤두박질친 올랑드의 사회당을 에마뉘엘 마크롱이 박차고 나오며 시작됐다. 마크롱은 ‘전진’(En Marche!)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중도를 표방하며 좌우를 넘나드는 ‘혁명’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는 원래 지난 8월까지 올랑드 정부의 경제산업부 장관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로스차일드 은행 임원 출신의 자유주의자이자 임기 중 국영철도회사 SNCF를 민영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크롱이 표방하는 제3의 길은 공공부문 일자리 축소 등의 우파적 구조조정이다.

이런 마크롱에 사회당 우파는 힘을 싣고 있다. 경선 승자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약속했던 사회당 우파는 마크롱 만이 극우 르펜을 물리칠 수 있다며 지지 입장을 숨기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당 정부의 환경부 장관이었던 세골랜 루아얄은 노골적으로 그의 편에 섰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회당 간부와 지지자의 61%가 마크롱에 동조하고 있다.

이 같은 사회당 내 분열 속에서 당 개혁을 외치며 등장한 좌파 브누아 아몽 후보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몽 후보는 지난 1월 29일 사회당 당내 경선에서 59% 대 41.3%로 마뉘엘 발스 전 총리를 물리치며 기대를 모았었다. 그는 금융자본주의에서 복지국가로의 회귀를 강조하며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실업으로부터 임금노동자들을 해방시키자고 주장한다. 이 같은 기조 덕분에 프랑스의 샌더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사회당 기득권을 대변하는 발스 개인에 대한 반발 때문일 뿐 당내 입지는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아몽은 경선 승리 후 프랑스 좌파와 녹색당에 공동 정부 구성을 제안했지만 성사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녹색당과의 연합으로 끌어올 수 있는 지지율은 많이 잡아도 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8년 사회당을 탈당해 좌파당을 창당한 장뤽 멜랑숑도 애초 대화 의사를 밝히기는 했다. 기실 아몽이나 멜랑숑 후보 모두 현재의 제5 공화국을 끝내고 더 많은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제6 공화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헤게모니 문제로 양 진영 간 대화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7만 명 이상이 서명운동에 나서 아몽과 멜랑숑에 선거연합을 요구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최근에는 멜랑숑이 사회당의 ‘영구차’에 타지 않겠다고 밝혔고, 아몽도 멜랑숑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양측의 연합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아몽 보다 조금 낮았던 멜량송의 지지율은 점차 상승하는 추세다.

한편, 2002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반자본주의신당은 처음부터 독자노선을 고수했지만 지지율 0.5% 아래의 미미한 세를 보이고 있다. 이 정당은 노동계급과 민중이 신자유주의에 책임이 있는 정당들로부터 독자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아몽에 대해서도 사회당 정부에서 장관으로 일했다는 점을 들며 비판하고 있다.

부상한 극우 vs 유럽 좌파 공동의 대응

프랑스 대선에서 국민전선이 패배한다 해도 연이어 치러지는 총선에는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독일 총선도 앞둔 올해는, 극우가 부상한 유럽의 앞날을 결정지을 중요한 시기다. 극우 독일대안당은 지난해 9월 이래 16개 주의회 중 10개에 진출했다. 전국 지지율은 8.5%를 유지하고 있다. 브렉시트를 적극 지지하며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영국독립당은 10%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오스트리아 대선과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집권이 가까스로 좌절됐지만 지지율은 여전히 높다.

이에 맞서 유럽 좌파들은 유럽연합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분명히 하며 다른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있다. 최근 발표된 10개의 원칙은** 다른 유럽을 위한 ‘플랜B’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서 만들어졌다. EU집행위에 대한 불복종, 유로존 탈퇴 권리 보장, 일국적인 동시에 유럽 민중에 대한 호소, 시민참여를 통한 부채 감사 착수, 자본의 이동 통제, 금융과 에너지 분야 사회화 등을 약속하자는 것이다. 이 안에는 스페인 포데모스와 통합좌파, 포르투갈 레프트블록, 독일 좌파당,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 그리스의 민중연합과 안타르시아 등 15개 유럽 국가의 좌파들이 참여했다.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 통치와 극우의 밀물 속에서 유럽 좌파가 이 공동의 논의를 어떻게 진전시킬지 더욱 주목되는 시점이다.[워커스 29호]

*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BVA가 3월 15-17일 수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1명의 대선후보 중 26%로 1위를 달리고 있는 르펜에 이어 사회당에서 탈당한 중도우파 에마뉘엘 마크롱이 25%로 2위, 우파 프랑수아 피용은 19.5%,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이 12.5%, 좌파당의 장뤽 멜랑숑이 12%를 달리고 있다.
** 제3세계외채탕감위원회(CADTM)의 에릭 투쌍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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