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되는데 낙태는 ‘외 않되’?

[연속기고] 우리 사회가 만드는 임신의 공포

[편집자 주] “투표는 되는데 낙태는 외 않되(왜 안돼)? 탄핵도 했는데 왜 아직이지?”라고 페미니스트들이 묻는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후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던 “불꽃페미액션”이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2017년, 지금 낙태죄 폐지가 기본이 돼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0일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낙태 관련 동향은 법률적, 종교적, 정치적 공론화에 따라 변했다기보다는 출산인구정책 추세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산아제한이 국가시책이던 시기, 정부는 낙태의 인구 억제 효과 때문에 이를 사실상 방관했지만 근래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특히 2009년부터 불법 낙태를 단속하고 출산을 장려하는 흐름으로 변했다. 하지만 낙태죄를 유지하고 임신중절을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고, 보다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는 우선 우리사회가 얼마나 임신하기 쉬운 사회인지를 말하고 싶다. 일단 학교에서의 성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2014년 보건교육포럼이 전국 초중고교생 3,7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실에서 받는 체계적 성교육은 21.2%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가정통신문 등 인쇄물로 하거나(15%), 강당에 모여 한꺼번에 했다(12.5%)고 답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정자, 난자 등에 관한 기초생물지식을 전달하거나, 모든 성행위를 선악으로 구분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 또한 ‘혼전 성관계는 옳지 못하다’, ‘여자들은 함부로 몸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이나 생물적인 지식만을 들어오며 자랐다. 콘돔을 처음 만져보았던 것도 페미들의 성교육이라는 여성주의 성교육에서였다. 이렇다 보니, 나의 주위에서도 피임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고민하는 여성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일래로 한 여성지인은 피임을 하지 않고 성관계를 맺고 나서 2주간을 매우 두려워하고 힘들어했다. 임신테스트기는 성관계후 최소 2주가 지난 다음에야 측정가능하기 때문에 첫 성관계 후 2주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것이다. 특히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성관계에서 여성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남자친구가 싫어할까봐,’ ‘내가 성관계 거부하면 싫어할까봐, ‘너무 밝히는 것 같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은 피임 없는 섹스를 하고, 성관계 하는 순간부터 임신걱정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 성관계에 대해 잘 알 경우, ‘걸레’, ‘더러운 년’ 등으로 치부, 수치로 돌리는 사회/문화도 여성이 성관계를 수동적이게 받아들이고, 비혼 여성이 임신했을 경우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구조로 만든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청소년인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05년 전체 34만여 건의 임신중절수술 중 불법 낙태는 95.5%였고, 비혼 여성의 임신은 14만4000명, 기혼여성의 임신은 19만8000여 명으로 추정했다. 비혼 여성의 경우 20대가 대부분(78.6%)이었고, 비혼 여성이 절대 다수를 구성하는 10대의 경우, 1만2천여 건에 달했다. 낙태 시술 당시 임신 12주 이상인 경우는 드물지만, 10대 여성의 경우 그 비율이 다른 집단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편이었다. 특히 10대 여성이 임신 12주 이후 낙태하는 비율은 12%에 달했다. 이는 미성년자의 경우 임신을 인지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늦으며, 낙태시술 비용을 마련하는 데 금전적 부담도 크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10일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나는 이 조사 결과를 보면서 굉장히 슬펐다. 왜 항상 피임 없는 성관계의 모든 피해와 그에 따른 2차 피해 등은 여성이 겪어야 할까? 여성 한 사람만을 손가락질 하며 탓할까? 임신의 책임을 나눠야 할 상대 남성, 또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쉬쉬하며 수치심만 느끼라 종용하던 국가와 사회의 책임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한 여성이 임신했다면, 출산이나 임신 중절은 오롯이 그 여성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임신은 그녀의 교육권, 노동권 등을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임신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미루려는 것은 금물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1968년 유럽에서 일어난 68혁명 중 페미니즘 운동에 나선 페트라 켈리가 말한 구호입니다. 우리 사회는 성관계, 즉 섹슈얼리티를 가장 사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하지만 섹슈얼리티 내의 성차별, 성별위계 등은 여전히 여성들을 옭아매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이 사회의 부와 권력은 대부분 남성들이 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인 것이다. 대선주자들에게 낙태죄 폐지를 요구한다.

[기자회견문]“투표는 되는데 낙태는 외 않되? 탄핵도 했는데 왜 아직이지? why?”

형법상의 낙태죄는 그 처벌대상을 의사와 여성으로만 두고 있다. 혼자 한 임신도 아닐텐데 남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

한편, 미디어에서는 콘돔을 끼지 않고도 성관계를 하는 남성이 나와 자랑스럽게 ‘체외사정을 하니 괜찮다’고 떠든다. 학교에서 배우는 성교육은 피임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보건복지부는 여성에게 ‘다 맡기더라도 피임까지 맡기진 마세요’라고 광고한다.

하루하루 얼탱이 없는 현실이다. 학자들은 낙태죄가 이미 ‘사문화 되었다’고 하는데 남성들은 ‘고발하겠다’며 여성들을 협박하는데 좋은 빌미가 된 현실이다. 제대로 된 피임법을 아는 것도, 심지어 피임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것도 하늘에 별따기인데 임신에 대한 책임은 여성들만이 지고 있다.

모자보건법 14조는 일부 사유들을 정해 인공임신중절을 ‘허’하고 있다. 그런데 준강간으로 임신을 하거나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위협할 경우에도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시술받을 수 있다. 또한,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를 허한다고 한다. 이는 우생학적인 관점으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제한하고 국가가 시민을 선별해 태어날 권리를 선택적으로 부여하겠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2011년 유엔은 ‘사회경제적인 사유’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합법화하라는 권고를 했고, 전 세계 인구의 40%가 속한 56개국에서 임신 초기의 인공임신중절을 전면 허용하고 있다. 합법화 이후에 오히려 인공임신중절 건수가 증가하지 않았고, 합병증 발생은 감소했다. 낙태죄 폐지는 전세계적인 요구이자 성숙한 국가로서의 기준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물타기, 몰카 범죄 방관, 사이버 성폭력 방관, 가임기 지도 작성, 고스펙 여성 ‘후려치기’ 보고서 발표… 국가는 근 2년간 여성들의 고통을 외면면서 우리의 몸을, 삶을 적극적으로 억압해왔다.

그리고 시민들은 최초로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광장에서 더 나은 국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리친 여성들이 여기에 있다. 2012년, 대선에 낙태죄 논란은 밀렸다. 2017년, 지금 낙태죄 폐지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정권교체다. 투표는 되는데 낙태는 외않되? 탄핵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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