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에게 시어머니와 싸우라고 했다

[워커스] 코르셋 벗기

“엄마랑 싸워. 네가 이겨.”

E의 말에 ‘시어머니와 싸우라니.... 으이구, 철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E는 진심이었다. 시어머니가 혼배성사(천주교식 결혼예식)를 결혼식보다 먼저 해야 한다고 고집했을 때, ‘무리해서 혼배성사를 하면 기쁜 마음이 덜 할 것 같다’고 내 의견을 말했다. 시어머니에게 솔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는 그 이후로 내가 그녀 앞에서 ‘쫄아 있다’고 했다.

양쪽 집안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부모님 지원 없이 결혼식과 신혼집을 준비하기로 했다. 시어머니는 결혼 준비과정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는 대체로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혼배성사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E가 시어머니와 전화로 싸우는 중이었다. 시어머니의 고함이 전화기를 뚫고 나왔다. 그녀는 “결혼식을 성당에서 하고 싶었는데, 혼배성사만은 양보 못 한다”고 했다. 차분하게 설득할 생각으로 E의 손에서 전화기를 가져왔다. 시어머니가 이제 가족이니 솔직하고 편하게 지내자고 했던 것이 생각나, 솔직해지기로 용기를 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신을 하찮게 여긴다고 역정을 냈다. E는 내 손에서 전화기를 뺏어 “엄마가 솔직하고 편하게 지내자고 했으면서, 엄마가 말한 편함에 다리아는 없다”고 따졌다.

[출처: 자료사진]

결국 시어머니 소원대로 됐다. 혼인성사 전날, 시어머니는 전화로 성사 때 뭘 입을 거냐고 물었다. 싸운 뒤 첫 통화였다. 원피스라고 답했다. 시어머니는 결혼식에는 비싼 드레스를 입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고작 원피스냐, 한복을 입으라고 나무랐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성사 당일 아침, 시어머니는 또 전화했다. 미사예물로 얼마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 금액은 반전세인 우리 집의 한 달 월세라 그렇게는 못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알겠다고 답했다. 시어머니와 성당에서 만났다. 그녀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전화 한번 안 하냐고 핀잔했다. E는 그렇다 쳐도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당시에는 나도 그 말에 수긍했다. 시댁과의 갈등에서 싸움은 E에게 맡기고 나는 뒤에 숨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E가 내 목소리를 대신해 주길 바랐다.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나는 약자기 때문이다. “엄마만 편하면 되는 거냐”고 따졌을 때처럼, E가 온전히 내 편이 돼 싸워줬으면 했다.

결혼한 뒤 첫 명절이 다가오자 나는 슬슬 걱정됐다. 명절에 며느리가 시댁에서 일하는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시어머니에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E가 낸 방법은 시댁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시댁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현실성 없는 제안이며, E가 무책임하다고 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시댁에서 날 뭐라고 욕할지 뻔했다.

결국 나는 어마어마한 양의 다양한 전을 부쳤고, 커다란 대야에 가득 담긴 그릇을 닦았다. 그 사이 E는 ‘명절 때 제사상 차리느라 고생하지 말고 외식하자, 원래 제사 준비는 남자가 한다, 제사 음식은 조상이 좋아하는 몇 가지로 간소하게 차리면 된다’ 등의 설을 풀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소용없었다. 얼마 뒤 두 번의 제사가 더 있었고, 추석 때도 온갖 음식이 상에 올랐다. 나는 깨달았다. 제사에 있어 E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아마 명절에 내가 시댁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E가 잘 설명했어도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지난해 추석까지 E와 나는 시댁 문제로 종종 크게 싸웠다. 그는 나름 노력하지만, 나는 계속 차별과 억압 속에 있다. 상황이 계속되니 나는 E가 내 편이 아니라고 짜증을 냈고, 그는 내 말에 서운해 했다. 나에게는 말하지 않지만, E는 시어머니와도 다퉜을 것이다. 나는 E를 시어머니와 나 사이의 중재자쯤으로 여겼으나, 그는 결혼생활에서 생기는 모든 갈등에 자신도 똑같이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도 고민이 많고 힘들었다. 게다가 대부분 남자가 그렇듯이 ‘우리 엄마는 다를 것’이고 생각했던 그는, 별반 다르지 않은 상투적인 고부갈등의 전개에 당황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E에게 시어머니 앞에서는 내 욕을, 내 앞에서는 시어머니 욕을 하라고 조언했다. E는 무슨 미친 짓이냐며,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했다.

E는 시어머니와 나의 관계를 보며 마치 군대 같다고 했다. 후임 때 당한 일을 자신의 후임에게 반복하며 ‘그래도 너는 편한 거야, 우리 때는 더 했어’라고 말하는 상사. E는 시어머니가 친정과 시댁, 양쪽을 공평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보며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에게 늘 E씨 집안이 먼저라고 시달렸는데도 엄마는 할머니처럼 되고 싶나?”
“어머니는 E씨도 아닌데.”
“할머니도 E씨는 아니었어.”


시어머니와 싸우라던 E의 말은 진심이다. E는 무엇보다 내 안에 ‘한(恨)’이 생길까 봐 걱정했다. E는 시어머니에게 내 진심을 드러내야 후회하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솔직한 것 자체가 충분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녀의 반응이나 관계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시어머니와의 대화가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가 잘 안다.)

나는 E의 말대로 시어머니에게 진심을 말로 하는 대신 그녀와 거리 두기를 택했다. E는 내 안에 미움이 쌓이지 않도록 시어머니에게 표현해서 풀길 바라지만, 지금은 이게 내 진심이다. 이런 결정을 하기 까지는 ‘시댁이 넘지 못할 산이 아니’라고 말해 준 E의 영향도 크다. 그리고 지금은 E도 시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아내의 시어머니가 된 엄마를 새롭게 어떻게 봐야 할지, 엄마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답을 찾는 중이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오면 어쩌나 불안하지만, 분명한 건 시어머니와 거리를 둔 뒤로 E와 나는 더는 싸우지 않는다.(계속)[워커스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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