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드러내자, 우리 존재 ‘퀴어’

[워커스 인터뷰]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인터뷰

7월 1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1년에 한 번뿐인 성소수자의 명절. 올해 퀴어 명절은 유달리 우여곡절이 많다. 대선 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날을 세웠고, 최근까지는 시청광장을 점거한 친박 단체 때문에 애를 먹었다. 게다가 서울시는 ‘(퀴어문화축제가) 광장의 조성목적에 위배’된다고 통보해왔다. 혐오세력과 싸우기도 벅찬데, 서울시와 대통령 후보까지 성소수자 혐오에 한몫했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올해 퀴어문화축제 슬로건이다. ‘지금’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6일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만났다.

[출처: 사계]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슬로건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건가

슬로건은 그해 성소수자들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이다. 언제나처럼 시민 공모로 선정됐는데, 90% 이상이 ‘나중’이라는 말을 문제 삼았다. 그중 4개를 추렸다. ‘지금 바로 여기에, 예외 없는 평등을’,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사랑에 나중은 없다’, ‘숙제는 나중에, 인권은 지금’이 그것이다. 새 정부가 많은 시도를 하는 것 같지만 사회적 약자 이슈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 시절 발언이 성소수자 존재를 개혁과제에서 직접 뒤로 미룬 것이다.

올해 퀴어문화축제는 여느 때보다 우여곡절이 많다. ‘6월 퀴어’를 ‘잔디’에 빼앗긴 과정과 배경을 설명해 달라

성소수자에게 6월은 ‘자긍심의 달’이다. 퀴어퍼레이드는 미국 뉴욕의 ‘스톤월 항쟁’을 계기로 시작됐는데 그게 1969년 6월 27일이었다. 당시 경찰은 술집 ‘스톤월 인’에 급습해 성소수자를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군중은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경찰에 맞서 싸웠다. 성소수자들은 1년 후인 1970년 6월 센트럴파크에서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려고 자긍심 행진(Pride parade)에 나서며
퀴어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올 퀴어문화축제도 원래는 6월에 열릴 예정이었다. 서울시청에 광장 사용 신청서를 접수했는데 시청은 친박 단체로 인한 광장 정리나 잔디 문제로 퀴어문화축제와 함께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 시청은 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시 ‘나중에’였다. 조직위 요청에 시는 늦게서야 입장을 통보했는데 잔디 식재가 얼마나 걸리는지, 다른 대책이 있는지도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광장에 왜 꼭 잔디를 심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박원순 시장의 성소수자 관계 행정은 어떤가

박원순 시장이 ‘성소수자 차별 금지’가 포함된 서울인권헌장을 스스로 폐기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박 시장은 시 행정의 지향점은커녕 의지 표명도 없다. 지향점이 없으니 시 행정이 움직이지 않고 문제가 충돌할 때 원리적 답변만 나온다.

혐오세력은 퀴어문화축제 참여자의 노출이 지나치다며 ‘음란 집회’라는 공격을 한다. 축제에서 성소수자들이 신체를 드러내는 건 어떤 메시지인가

내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나의 몸 일부든 전체든 이 사회에 내가 존재한다는 메시지다. 나라는 존재가 숨기고 감춰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에도 여러 방법이 있고 노출은 그 방법의 하나다.

일부는 퀴어문화축제가 비도덕적이고 음란하다고 한다. 그런데 음란과 도덕의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 성소수자 혐오 세력에게 퀴어문화축제가 자극적인 건 사실이다. 그들이 흔히 보지 못했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옷 차림으로 고추를 달고 나오는 음성 고추축제와 신체가 다 드러나는 신촌 물총축제는 과연 어떤가. 우리는 이 축제를 비도덕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결국, 도덕과 음란의 기준은 익숙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다. 이 사회에 얼마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성소수자 혐오세력은 HIV/AIDS(에이즈) 문제를 성소수자 인권을 탄압하는 근거로 사용하며 성수자와 에이즈 환자의 인권 모두를 억압해왔다. 또 퀴어문화축제를 두고도 같은 논리로 비난하는데

기득권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적을 만드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우파는 이를 위해 동성애 에이즈 확산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성애자를 낙인찍고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천대했다. 20세기 동성애 혐오 사회가 유지됐던 틀이다. 이후 40년 동안 세계보건기구, 한국질병관리본부도 누차 설명했다. 에이즈는 콘돔을 끼지 않거나 안전하게 섹스하지 않는 모든 이에 노출될 수 있는 바이러스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는다. 인정하는 순간 성소수자를 공격할 도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특히 에이즈 공포가 남다르다. 영화에서도 편견을 그대로 각색해 공포를 조장한다. 한국 정부도 관리 가능한 질병을 방치했다. 이런 요인들이 얽혀 근거 없는 공포심이 커졌다.

그동안 극우 기독교 세력은 어떻게 축제를 방해했나

사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때는 일부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피켓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다. 집단적인 방해 움직임은 2014년 시작됐다.

당시 퀴어퍼레이드가 서울 연세로에서 열렸는데 극우 기독교인들이 무대와 행진 경로를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쫓겨나지 않게 행진 경로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기도 했다. 우리도 당황해 대응할 수 없었다. 그러더니 행진 차량 밑에 들어가고, 행진 경로에 수백 명이 드러누워 막기 시작했다. 결국 퍼레이드가 4시간 정체됐다. 코스는 두 번이나 변경됐다. 현장에 있던 많은 성소수자는 분노했다. ‘저들이 뭔데 내가 이런 위협을 받고 대우를 받아야 하나’였다. 성소수자들 사이에선 ‘우리가 물러나는 순간 진다’는 인식이 퍼졌다. 곧 저들에 대항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구호가 터져 나왔다. 밤 9시가 되자 축제 방해 세력이 빠지면서 다시 퍼레이드를 할 수 있었다. 1만5000명에 달했던 퀴어퍼레이드 참여자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SNS상으로 퍼레이드를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고 이내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시청 광장에 쳐진 울타리 때문에 개방적인 축제의 본질에서 멀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일단 빌딩 숲인 서울에서 모두가 서로를 볼 수 있는 광장은 시청 광장, 광화문 광장뿐이다. 다른 곳은 건물들로 행사 단절 현상이 심하다. 울타리는 조직위도 의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림막을 칼로 찢고 장내에 들어와 성소수자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축제 참여자를 보호해야 하는 조직위는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경찰도 문제였다. 가두리 양식마냥 울타리 펜스를 쳤다. 또 시민이 축제 공간에 들어서려면 성소수자를 지지한다고 입증해야 했다. 이것도 얼마나 폭력적인가. 경찰에 보호를 요청한 데 대한 고민도 많다. 성소수자들이 억압된 사회에서 1년에 단 하루 축제에 참여하며 해방감을 느끼는 것인데 경찰로부터 관리되는 느낌도 받기 때문이다. 경찰의 지나친 통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혐오세력이라는 위험 요소가 사라져야 한다. 조직위는 위험 요소를 차단하면서도 축제의 본질을 보장하려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지금은 동성애 처벌 군형법이 가장 중요한 이슈다. 군형법 92조 6항은 동성애자를 문제 삼는다. 성소수자란 이유로 수사 대상이 되고, 구속되는 것이다. 지난 4월 인천지방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힘써야 한다. 보수 기독교의 조직적 공격으로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만의 문제인 것처럼 주목됐다. 사회적 혐오를 확산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본 틀이다. 우리가 이 혐오에 맞서 싸우는 운동을 펼치는 한편, 제도권도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가 겪은 정부와 지자체 공무원은 어정쩡하기만 하다.

조직위가 생각하는 퀴어문화축제 본연의 의미는 무엇인가

축제는 다양한 것을 즐기는 장이다. 사실 퀴어문화축제가 태동한 건 퀴어 콘텐츠를 편하고 안전하게 접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퀴어문화축제는 해외 축제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일주일의 축제 기간을 갖고 콘텐츠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축제의 핵심은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인 나도 이 세상에 어울릴 수 있고 자긍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문화 행사이기도, 집회이기도, 세상에 지르는 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더라도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건 이곳은 성소수자의 장이라는 사실이다.

7월 15일 퀴어문화축제 참가를 위한 메시지를 부탁한다

일단, 날씨가 매우 더울 테니 각오 단단히 하라. 퀴어문화축제는 사회에 성소수자가 있음을 알리는 행사다. 따라서 성소수자만 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지지하는 모든 이가 함께하는 자리다. 참여자들은 여느 때보다 좀 더 자신 있는 모습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 축제를 더 즐겨야 할 때다. 혹여나 불의의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 말고 관계자에게 말해 달라. 조직위는 언제나 안전이 중요하다. 축제를 통해 성소수자와 시민이 서로가 사는 이야기에, 분위기에, 표정에 같이 공감했으면 좋겠다.[워커스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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