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 논란...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기반한 갈등을 넘어

한미정상회담 무엇을 남겼나

[출처: 변혁정치]

집착 1.

지난 6월 30일 미국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이 끝났지만 7시간을 지체하고서야 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배경은 트럼프의 어이없는 집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6개 합의 항목 중 세 번째 경제 분야의 제목 ‘Advancing Free and Fair Trade to Promote Economic Growth(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증진)’에서 ‘Free’를 뺄 것을 미국 측이 요구해 ‘Advancing Fair Trade to Promote Growth(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공정한 무역 증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시간을 소진했다고 한다. ‘Buy America Hire American’이란 구호 아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기존의 자유무역질서를 재편하겠다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일차로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은 폐기되거나 재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특히 한미FTA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불공정한 무역협정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재앙이라고 비난해 온 트럼프의 수사는 ‘공정무역’으로 표현되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미국인, 특히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우리의 정책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행정명령으로, “중국이 세계경제 질서를 쓰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토록 공들여 체결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다. 그리고 협상이 진행 중인 유럽연합EU과의 다자협정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EU 개별 회원국별 무역협정을 따로 맺어야 한다는 어려움에 재논의로 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인 4월 29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FTA를 비롯한 14개 FTA 전체를 재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나머지 12개 FTA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NAFTA와 한미FTA가 표적이다. 이미 NAFTA의 다른 두 당사국 캐나다와 멕시코는 재협상에 동의한 상태이고, 의회에 NAFTA 재협상을 통고한 지 90일이 경과하는 8월 16일부터 실제 재협상이 시작된다. 한국과의 FTA는 이제 운을 뗀 데 불과하다.

집착 2.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자유무역협정은 미국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억제하는 재앙으로 여겨졌다. 버니 샌더스나 힐러리조차도 TPP를 반대하고 나섰으니, 트럼프의 당선으로 한미FTA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에서는 자동차와 철강 같은 산업부문을 거론하고 한미FTA 체결 이후 미국의 적자가 늘어났다는 수치들을 발표하면서 한미FTA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얘기해왔다. 그러자 한국 측은 한미FTA 재협상이 의제로 제기되는 것조차 봉쇄하고자 향후 20년간 5,600만 톤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도입해 경상수지 균형을 꾀하기로 했다. 자동차와 철강은 일본과 중국으로 화살을 돌리면서, 일단 공동성명은 한국정부가 의도한대로 관철되었다.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합의는 결코 없었다"며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를 보고하고 있다.

한국은 2004년 칠레와 FTA를 체결한 이후 미국, 유럽, 중국과 같은 대륙을 포함하여 전세계 51개 국가와 FTA를 체결하여 FTA체결 세계 3위 국가를 자랑한다. 김대중정권은 97년 말 외환위기에 겁먹은 국민을 겁박하여 세계화, 민영화, 유연화를 기조로 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였다. 여기에 FTA는 역진방지장치와 투자자국가소송제 등으로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를 되돌릴 수 없게 하는 국가 간 통상체제로 기능해왔다. FTA는 김대중정권 이래 박근혜정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해왔고 재협상, 폐기는 입에 올리기조차 어려운 금과옥조였다. 따라서 트럼프의 재협상 요구는 한국에서는 금도를 넘는 요구처럼 읽혀졌다. 셰일가스를 사주고 재벌을 동원해 미국에 투자를 해서 임시방편 입막음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미FTA 협정문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개정을 위한 재협상은 열려있다. 한미FTA 협정문 제22장 ‘제도규정 및 분쟁해결’ 편에는 ‘이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이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합의는 결코 없었다”는 정부의 대국민 보고는 대국민 선전일 뿐이다.

민중무역협정

자유무역협정은 이름 그대로 자본이동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 자본의 시장을 확장하는 협정이기에 지구적 수준의 노동자민중 억압적 무역협정이다. 문재인정권의 한미FTA에 대한 집착은 그 자체 정권의 계급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트럼프가 언급하는 공정무역이란, ‘경제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공정 무역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부의 편중, 환경파괴, 노동력 착취, 인권침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두된 무역형태이자 사회운동을 일컫는 말’(두산백과)로서의 공정무역도 물론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개입하여 국가 간 담벼락을 높여 자본운동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겠다는 보호무역의 수사적 표현으로서의 공정무역일 뿐이다. FTA 재협상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자본 간의 전쟁이자 이데올로기투쟁일 뿐이고, 노동자민중 억압적 자본축적체제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를 기반으로 하며, 생태․민주․연대에 조응하는 지구적 수준에서의 대안적 민중무역협정이 제기되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사회변혁노동자당이 발행하는 <변혁정치>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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