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승원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

공공부문 노동자의 큰 선배, 방대한 노동자 역사의 기록자

민주노조 운동을 이끌었고 최근엔 노동자 운동 역사 기록에 전념했던 이승원(55)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의 장례가 27일 민주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노동자역사 한내, 전국공공운수노조, 민주유플러스노조가 공동장례위원회를 꾸리고 장례를 이끌었다.



27일 오전 10시 서울 신촌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실에서 영결식이 있었고, 이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식과 추모대회가 진행됐다. 고인을 추모하는 80여 명의 가족, 친지, 동료들이 함께했다.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어려운 투석을 하면서도 노동운동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으로 노동자대투쟁 30주년 책자와 전시회를 기획하며 동분서주한 모습은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며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동지가 이루었던 일들의 흔적이 너무 무겁게 다가와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고 심정을 전했다.

송인규 민주유플러스노동조합 위원장은 “데이콤시절 선배이자 동료로서 지내며 어려운 때 위원장을 맡아 진두지휘한 당당한 모습이 너무 그립다”며 “제주 43항쟁, 사북탄광노동자 역사기행을 참여하며 봤던 모습에서 민주노조운동 역사복원 사업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계승해 나가겠다”고 추모사를 남겼다.


낮 12시 30분부터 진행된 마석 모란공원 추모대회에서 공동 장례위원장 조상수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은 고인을 “언제나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모범적인 활동가”라고 칭했다. 조 위원장은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의 선봉장이었고 또한 노동자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전달하고자 했던 역사운동가”였다며 “동지가 사랑했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그 뜻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노개투와 촛불항쟁 등 수많은 투쟁의 역사를 동지와 함께했는데 비정규직철폐와 노조 할 권리를 외치는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민주노조가 화두”라며 “약해지고 무너진 민주노조의 틈을 비집고 자리 잡은 비정규직 천만의 벽을 마주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최 직무대행은 “이런 시기에 동지가 없는 빈자리가 안타깝다”며 “민주노조운동의 큰 발자취를 남기고 간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 이승원 사무처장의 딸 이지연 씨는 “저와 어머니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밖에서도 사랑받으신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며 “마지막 가는 길까지 함께 해주신 것 잊지 않겠다”고 모인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민중가수 최도은 씨는 양규헌 대표가 지은 가사에 곡을 붙여 조가를 준비했다. 최 씨는 “그렇게 부르짖던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주역들이, 노동 열사들이 잠든 이곳에 선배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용기 잃지 말고 살라는 선배의 뜻을 따르겠다”고 노래를 시작했다.

민주노조와 함께한 20년…비정규직 투쟁에도 앞장 서

고 이승원 사무처장의 활동은 민주노조 역사의 궤와 함께한다. 1987년 한국데이타통신(주)에 입사한 고인은 1990년 8월 한국데이타통신노동조합 조사통계부장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데이콤노동조합 5, 6대 위원장을 역임하며 2002년 80일 파업으로 해고당했다. 해고 후 2005년 4월부터 7월까지 ‘원직복직, 비정규직 철폐’를 걸고 2,000km 전국 도보 행진에 나서기도 했다. 6년 후인 2008년 대법원 승소를 거쳐 복직됐지만, 곧 노동자역사 한내의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노동자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일에 매진했다.

고인은 비정규직 투쟁에도 앞장섰다. 2003년 공공연맹위원장으로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41일간 투쟁하며 정규직 전환의 단초를 만들었다. 이용석 열사가 분신한 다음 날 파업을 시작해 파업 대오와 동고동락하며 단계적 정규직 전환 약속을 받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 시험을 통한 정규직 전환이라는 조항 때문에 500여 명은 정규직 전환이 됐지만, 200명은 끝내 계약이 해지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당시 파업 참가 조합원이었던 이경미씨는 “그때 위원장은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고 얘기했다. 사측의 회유와 방해 등으로 파업이 좌절될까 두렵다고 했더니 두려움은 외부가 아닌 자기 내면에 있다고 했다. 마음이 잡히지 않아 흔들리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가 2008년부터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시작한 노동자 역사 기록 활동은 동료들이 손에 꼽는 업적이다. 한선주 공공운수노조 전 교육부실장은 “버려지고 훼손된 노동자 자료들을 그가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직접 노동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구술해서 단단하게 묶었다.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그의 신념 덕에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랐던 노동자 역사가 기록되고 전시됐다”고 말했다. 한 전 교육부실장은 “이승원 처장은 노조 회의 진행법을 최초로 교육적 관점에서 고민한 분”이라며 “그가 만든 민주적 회의 진행법을 가지고 아직도 조금 덧붙이고, 보완해서 쓴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지난 24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대병원에서 운명했다. 당뇨 합병증 등으로 신장이 안 좋아 투석을 받다가 쓰러져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사망 직전까지 전시관, 박물관 사업 등을 활발하게 추진했고, 2015년부터 공공운수노조 지도위원을 맡기도 했다.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