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적폐 칼자루 꺼냈지만 ...논란 대신 안정 택한 정부

[참세상 기획] 문재인 100일을 말한다(5) 문화…개혁은 선택이 아니다

지난 겨울 촛불시민혁명은 부패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힘이 국민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국가적 검열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고,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동안 숨겨져 있던 낡고 부패한 문화행정의 치부를 세상에 면면히 드러나게 했고, 문화행정의 개혁과 혁신의 필요성을 서로 공감하고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출처: 김한주 기자]

출발점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적폐청산’부터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적폐청산’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함은 자명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는 단순하게 행정기관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을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한 사건이 아니다. 문화예술계 전체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문화예술계를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국가범죄였다. 자의든 타의든 거의 대부분의 문화행정 관료들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공범자가 되었다. 지역현장까지 행정과 민간의 불신으로 가득 차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문화예술 생태계는 철저히 파괴됐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올해 초 문화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스스로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었다. 하지만, 그런 진심 없는 셀프대책은 문화예술계 현장과 여론의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블랙리스트의 주요 주체였던 국정원·문화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문화예술 지원기관들의 자기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 현장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본질을 벗어난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 중 첫 번째를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으로 잡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사실관계 파악, 재발 방지 및 문화행정체계 혁신’과 ‘문화행정의 혁신을 주도하는 민관 협의체 설치·운영’을 제시한 점은 환영할 만하면서도 당연한 일이다. 실제 지난 7월 31일에는 문화예술계와 문화부가 공동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를 공식출범 시켰다. 진상조사위는 출범 준비 과정부터 문화예술계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블랙리스트 문제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조사위에 대거 투입됐다. 특히 도종환 문화부 장관도 블랙리스트 문제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어 진상조사위의 앞으로 활동이 더 기대된다.
 
혁신과 개혁이 부족한 문화정책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블랙리스트 적폐청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추진력에 비해, 문화정책의 세부 목표와 추진계획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7월에 발표한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가 최근문화 정책의 주요 쟁점들을 파악하고 현실적인 대안들과 개선의지를 보인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적극적이고 개혁적인 정책들이 부족하고,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조건에 능동적인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생활문화 정책의 경우 주요사업의 내용이 문화향유권 확대나 문화시설 인프라 구축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세계적 흐름과 현장은 문화예술의 일상과의 결합,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생활예술공동체, 전문예술인과 시민과의 협업을 고민할 정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생활문화에 대한 인식수준은 이에 비해 많이 못 미친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의 사실상 유일한 문화정책이었던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의 연장선에 가까울 정도로 한계가 명확하다.
 
예술인노동의 경우에도 문재인 정부는 정책목표로 예술가 지위 및 권익 보장을 위한 법 제정과 예술인 고용보험제도 도입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제시하고 있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인들에 대해 노동자에 준하는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고, 보편복지체계에서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이는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부만이 아니라 노동부나 기재부와 같은 타 부서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예술노동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있다면 이런 부처 간의 칸막이 문제에 대한 개혁의지가 필요하다.
 
문화산업의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대기업·플랫폼·유통 자본 중심으로 극심하게 기울어진지 오래다. 중소 창작주체들은 자본의 착취와 행정의 무관심 속에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다.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도 중요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중소 문화산업 창작주체들에 대한 보다 강력한 지원정책이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계획도 필요하다. 현재 문화부는 부서개편을 단행하면서까지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은 준비단계 이전부터 가리왕산 원시림 훼손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천문학적인 예산투입으로 강원도 지방재정에 심각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올림픽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던 문화부와 보수언론조차 최근 들어 적자재정과 경기장 사후 활용에 대한 문제에 대해 언급을 시작한 것을 보면, 이미 시작 전부터 평창동계올림픽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개최를 위한 홍보사업에 예산을 쏟아 붓기 보다 개최 이후 드러날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계획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마치며

문재인 정부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반면교사로 문화예술에 대한 독립성을 누차 강조해왔고, 이를 위한 ‘팔길이 원칙’의 필요성도 꾸준히 역설해왔다. 그리고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삼았던 이전 정부가 문화행정의 부패와 파행으로 인해 몰락했던 것을 고려해, 논란의 여지를 줄이고 안정적인 문화정책을 이끌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십분 이해가 되긴 하지만, 문화계 현장의 목소리는 오히려 적극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지난 몇 년간 반복되어 온 문화행정 파행과 현장과 소통하지 않는 행정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장과 소통하고 협력하려는 노력만큼, 지금 문화계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문재인 정부가 문화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문화민주주의를 구현해낸 정부로 평가 받을 수 있다.


[연재순서]
노동 | 김혜진(철폐연대)(링크)
한반도 | 배성인(한신대) (링크)
교육 | 이현(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링크)
언론·미디어 | 권순택(언론연대) (링크)
문화 | 박선영(문화연대)
의료·복지 | 강동진(포럼 사회복지와노동)
여성 | 한국성폭력상담소
정치 | 이광일(성공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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