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정규직화...당사자 목소리 배제, 해고도 속출

민주노총, 적용 과정 문제 사례 취합해 대정부 요구 나서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지 40여 일이 지난 현재, 불합리한 이유로 전환 대상에서 빠지거나 해고되는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3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이드라인 적용 과정의 문제점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 보건의료노조, 서비스노조 등의 대표자들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가이드라인의 한계로 발생한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명쾌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많은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전환 대상을 발표하거나 노조를 배제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규직 전환대상인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어 일자리위원회 차원의 해고 금지 지침이 내려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규직 전환에서 가장 먼저 착수하는 일은 정규직 전환 대상을 꼽는 일이다. 우선 중앙정부, 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852개 기관이 실태조사를 거쳐 정규직 전환 대상을 추리게 된다. 1단계 대상 기관에는 기간제 노동자 19만1,233명, 파견용역 노동자 12만655명 등 31만1,88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정규직 전환 심의기구에 노조 목소리 반영 안 돼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간제는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기관 내에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전환 대상을 결정해야 한다. 또 ‘심의위원회에는 노동계 추천 전문가 등도 포함해 공정성을 확보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일부 중앙행정기관, 공공기관, 지자체 등은 심의위원회 구성이 깜깜이로 이뤄지거나 노조 참여가 배제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선인 민주일반연맹 위원장은 “강원, 경남, 경북, 충남 등의 지자체에서 위원회를 구성할 때 노조에 협의나 논의요청하는 바가 전혀 없었고, 실태조사 및 심의위원회 구성과 회의일정에 대한 자료를 요청해도 한 달 가까이 묵묵부답이었다”며 “몇몇 지자체에선 노조나 당사자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전환심의를 확정하고, 10개 지자체에선 기간제 해고도 예상된다”고 증언했다.

국립대병원들에선 병원 사측이 전환심의위원회에 노조 참여 대신 2배수 전문가 추천만을 요청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산하 연구기관들도 전환심의위원회를 구성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전환기준과 인원수를 확정해 노동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파견, 용역의 경우도 ‘노사전문가협의기구’를 거쳐 직접고용, 자회사 등의 고용 방식과 정규직 전환 시기가 결정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규직전환 이해당사자가 협의 당사자로 참여해야 하지만 배제되거나, 사측이 개입하면서 당사자 개입 여지가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김영준 철도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협의회를 요식 행위 정도로 끝내려고 하는 상황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철도공사의 경우 사측이 정상적인 근로자대표 선출절차를 무시하고 있다. 노조 없는 용역업체에선 사측 관리자가 임의로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를 선정해 위원으로 통보하는 등 협의 당사자를 기관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규직 전환 전에 해고하는 기관들

정부 차원의 정규직 전환이 추진 중이지만 해고가 예상되거나 진행되는 기관도 있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기부 산하 출연 연구원)은 사측이 당사자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파견 노동자 실태조사 자료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전환대상을 누락하고 계약 기간 만료 이유로 파견노동자를 해고했다.

한국가스공사는 8~9월 파견계약 2년이 도래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우선 계약 해지 후 전환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했다. 이들의 공석에는 파견직을 다시 임시채용했다. 사측은 해당 노동자들이 전환 대상임을 인정하고 있으나 추진 일정이 지연되자 계약해지부터 시켰다.

서울의료원은 2단계 전환대상이라는 이유, 계약만료라는 이유로 상시지속 업무인 기간제 환경미화 노동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2단계 전환대상 기관은 자치단체 출연·출자기관,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자회사다. 김경희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장은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추진 과정에서 계약 기간이 만료하는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며 “이 같은 논리로라면 앞으로 1년간 30여 명이 더 해고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2, 3단계의 경우 올해 말이나 내년에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데 2년 된 노동자는 해고되고, 전환할 시점에 새롭게 고용된 노동자가 전환대상이 되는 문제가 생긴다”며 “기간제법 취지를 존중해 해고하지 말고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타 기관에 예산마련을 미루거나, 정부의 수탁인건비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연구원의 전환 규모를 축소 보고하거나 실제 전환대상에서 누락할 우려도 제기됐다. 민주노총은 정부 가이드라인의 취지에도 불구, 비정규직 해고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예산에 있어 예산 결정 과정을 융통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서 빠질 것으로 보여

논쟁이 끊이지 않는 기간제교원, 7개 강사 직종의 경우 현재 전환심의위가 진행 중이나 대부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규모는 4만여 명에 달한다.

안명자 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은 “전환심의위원들이 기간제 교사, 영어회화강사, 스포츠 강사에 대한 정규직 전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8~9년 동안 헌신적으로 일한 노동자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예외 없는 전환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금자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위원장은 초등스포츠 강사의 무기계약 전환을 호소했다. 박 위원장은 “10년 이상 일해도 급여가 10만 원도 채 오르지 않고, 세전 월급이 164만 원에 불과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들의 처우 개선비나 최종 임금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고, 작년과 동일한 임금을 책정해놨다”며 예산 문제를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전환 대상들, 크로스체크 필요해” 보완요구

권두섭 법률원장은 실태조사 결과를 노동조합과 크로스체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 법률원장은 “자료를 통째로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면 기관별로 노조에 제공해 누락된 곳을 보완하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노동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분명히 누락되는 부분이 있고, 지자체에서 자료 입력하는 당사자가 잘 모를 수 있는데 자료를 공유하면 바로 시정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노정협의를 통해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이드라인의 한계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가이드라인 보완사항은 △실태조사 누락 및 임금처우 왜곡에 대한 대책 △모호한 정규직 전환 대상 비정규직 기준 정리 △고령친화 직종에 새로운 지침 제시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 및 정규직 전환 협의기구에 노조대표성 보장 △정규직 전환 제외 대상자에 대한 차별해소 및 처우개선 방안 등 크게 다섯 가지다.

이외에도 전환규모 잠정 확정 후 전환대상자 및 전환방식 확정까지 명확한 일정을 제시하고, 누락된 대상자의 경우 재검토(구제) 방안 등의 일정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해당 기관장들의 의지 부족으로 정규직전환 추진이 전반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852개 기관장이 스스로 모범사용자가 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고, 비정규직 고용관행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하다”며 “중앙행정부 차원의 점검 및 감시감독체계와 시스템이 재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확대했던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폐기할 것”과 “가이드라인 한계로 정규직 전환이 되지 못하거나, 추진 과정에서 오히려 해고되는 문제점들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다솔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