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의 골치덩어리 – ‘고준위핵폐기물’

[워커스] 초록은 적색

‘만약 안전한 핵발전소가 있으면 탈핵할 필요 없지 않나요?’

종종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핵발전소 반대 이유를 ‘사고 위험성’ 때문이라고 많이 설명해 왔기 때문이다. 쓰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같은 대형 핵사고를 거치면서 핵발전소의 안전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과거에 없던 안전장치가 추가되기도 하고,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높은 장벽을 쌓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적 실수를 비롯한 다양한 핵발전소 사고 요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그만큼 핵발전소는 위험하고 복잡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핵발전소가 사고 없이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다른 문제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핵발전소에서는 끊임없이 핵폐기물이 나오는데, 이를 처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체 상태의 핵폐기물은 별도로 모아 핵폐기장으로 보내지만, 액체나 기체 상태의 핵폐기물은 양이 많고 보관도 어려워 정기적으로 핵발전소 인근에 방출한다. 핵산업계는 이를 “기준치 이하라 안전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환경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핵발전소 인근에 방사성 물질을 버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출처: 용석록]

고준위핵폐기물,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핵폐기물로 인한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핵발전 연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방출하는 방사선 준위가 높아 고준위핵폐기물로 분류된다. 다른 핵폐기물에 비해 방출하는 방사선의 양이 많아 주변 생물체를 짧은 시간 내에 ‘즉사’시킬 정도이다. 또한 많은 열을 내뿜고 신속히 식혀주지 않으면 핵분열 임계반응이 나타나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처분 방법은 아직 마땅치 않다. 자연 상태에서 방사성 물질이 더 이상 방사선을 내뿜지 않도록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는데, 여기에 필요한 시간은 최소 10만년에 이를 정도로 오랜 시간이다.

현재 핵발전소 1기를 가동하는 기간이 고작 30~40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현재 인류는 후세대는 물론이고 지구상에 너무나 큰 짐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핵발전의 경제성이나 안전성, 환경적 문제점 이외에 윤리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구상에 살았던 어떤 생명도 이렇게 오랫 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후세에 끼친 적이 없다. 하지만 20세기말에서 21세기 초를 살고 있는 인류는 핵에너지를 이용하면서 이런 짐을 후세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임시저장고가 가득 찼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가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만들어진 고준위핵폐기물은 총 44만 8천 다발에 이른다. 이들은 현재 핵발전소 부지 내에 위치한 임시저장고에 보관 하고 있다. 일부는 냉각을 위해 10미터 깊이의 붕산수 수조에 담겨져 있고, 일부는 외부로 꺼내 건식 저장고에 보관 중이다.

핵발전을 계속하면서 고준위핵폐기물의 양은 점차 늘어나고 저장할 공간은 점점 좁아지는 문제가 최근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소를 많이 지었던 1970~80년대 핵산업계는 핵폐기물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머지않은 시간 내에 핵폐기물 처분 기술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 동안 고준위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도 개발되지 못했고, 보관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오랫 동안 지진이나 쓰나미, 자연재해 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인류의 연구 수준은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2019년 경주 월성 핵발전소를 시작으로 2024년 고리와 한빛(영광) 핵발전소의 임시저장고가 포화된다. 핵폐기물 임시저장고가 가득 찬다는 것은 핵발전소 운영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탄난로에 다 탄 연탄을 빼내야 새 연탄을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다 쓴 핵연료를 꺼내지 못하면, 새 핵연료를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위험한 물질은 그냥 노상에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임시저장고가 가득 찰 때까지 새 임시저장고를 만들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핵발전소를 멈춰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탈핵을 위해 함께 풀어야 할 숙제, 고준위핵폐기물

최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탈핵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그간 우리사회 핵발전 논쟁은 위험성과 안전성에 맞춰 진행되어 왔다. 사고의 위험성은 핵발전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원자력계 주장처럼 사고 없이 안전하게 가동된다 할지라도 핵발전은 핵폐기물이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원자력계는 지역주민 반대에도 임시저장고 증설을 통해 핵발전을 이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아직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충분히 안전한 기술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도 있다. 수십 년 전 각국 정부가 원자력계의 똑같은 말만 믿고 핵발전소를 지었으나 아직도 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공론화가 끝나는 올해 말, 문재인 정부는 고준위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공론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보다 더 복잡한 문제이다. 지금 당장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멈춰도 이미 만들어진 핵폐기물을 처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딘가는 보관해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원치 않은 이 핵폐기물을 어떻게 보관할지는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모든 정부의 ‘골치덩어리’ 중 하나이다.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가 또 하나 있는 셈이다. 이래저래 핵발전소는 국민들에게 숙제만 던져주고 있다.[워커스 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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