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학교에서 항문성교 배웠어요

[워커스] 레인보우

2011년 서울시의원회관 로비. 서울시학생인권조례의 주민발의안 원안 통과를 요구하던 성소수자공동행동의 농성에 반대하러 온 이들 피켓에 이런 놀라운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때가 보수 개신교 그룹의 혐오선동 문구에서 처음으로 ‘항문성교’가 등장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정작 이 피켓에 더 놀란 이들은 의원회관에서 농성 중이던 퀴어 활동가들이었다. “우리도 입에 잘 못 올리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쓰다니!”

실제로 스위스, 캐나다 등에서는 중등학교 이상의 과정이면 성교육 시간에 항문성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토론할 수 있다. 물론 ‘항문성교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항문성교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굳이 숨기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이미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다양한 성적 경험을 하고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미 존재하고, 언제라도 보거나 듣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스스로 그에 대한 관점과 태도, 자신과 상대방의 권리,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의 방식을 익혀두는 편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배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 자신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의 몸과 욕망에 대해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일, 권리와 관계에 대해 토론하고, 피임, 임신, 출산, 질병 등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며, 나아가 성과 관련된 사회의 인식과 구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모두 성교육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성에 대한 금기와 수치심을 없애고 자연스러운 탐색과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수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2014년 퀴어퍼레이드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출처] 자료사진

거꾸로 가는 한국의 성교육

지난 3월 중국에서는 베이징사범대학출판부가 낸 새로운 성교육 교재가 큰 이슈가 됐다. 이 교재는 초등 2학년에서부터 성별에 상관없이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남성 성기가 여성 성기에 들어가 있는 장면 등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해 보여준다. 낯선 사람 뿐 아니라 잘 아는 사람들도 나에게 부적절한 요구나 신체접촉을 할 수 있으며, 그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예시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4학년 교과서에서는 동성 간에도 연인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5학년 교과서에서는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성관계 시에는 성병 예방 등을 위해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6학년 교과서에서는 양성애에 대한 내용을 실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해져야 하며, 다른 나라에선 동성 간 결혼도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베이징사범대학출판부는 9년 동안 연구와 시범교육을 한 결과 이 교재가 학생들의 성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제작한 <국가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성폭력을 방지하려면 만원 지하철에서 여성이 가방 끈을 길게 매거나 알아서 그 자리를 피해야 하며, 친구들끼리 여행도 가지 말고, 알바를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동성애에 대한 교육은 언급조차 없다. 학교 현장에서 이는 사실상 동성애에 대한 ‘교육 금지’의 효과를 가진다. 성별이분법과 그에 따른 규범, 성역할, 왜곡된 성 인식을 정답인 양 가르치는 내용은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성평등에 대한 관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까지 더해지고 있다. 지난 7월 초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하고 있다고 인터뷰한 한 교사는 SNS를 통해 영상이 배포된 이후 온갖 악성 댓글과 인신공격은 물론, 학교와 교육청에 쏟아진 민원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주요 반응을 보면, 이 교사가 공격받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인터뷰에서 “왜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갖지 못하지? 왜 저 뛰어 노는 신체활동의 장을 남자아이들이 다 전유해야 하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 책상 파티션에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에 관한 다양한 캠페인 홍보물과 뺏지 등이 부착돼 있다는 것. 그리고 평소 개인 SNS에서 페미니즘이나 남성 비하와 관련된 게시물을 공유하거나 작성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파티션에 ‘아직 사회적 합의도 되지 않은’ 게시물을 붙여 놓는 것이 ‘정치 선전물’ 부착에 해당하기에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까지 한다. 게다가 몇 주 후 여성신문에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성평등 수업이 소개된 또 다른 교사도 학교와 교육청으로 쏟아지는 항의전화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오히려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 그리고 이 내용을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역설한다.

페미니즘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엄마, 오늘 학교에서 항문성교 배웠어요”라는 문구가 당연히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일으킬 내용이라고 판단한 이들은 그만큼 자신들이 성에 대해 매우 협소하고 편협하며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문구에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인식들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 성을 ‘성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 성교는 곧 남성 성기의 ‘삽입’이라고 인식한다.
- 때문에 한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여성 성기를 대신해’ 다른 남성의 항문에 삽입하는 것이 곧 동성애라는 왜곡된 인식을 전제하고 이에 대한 혐오를 선동한다.


성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섹스가 전부이고, 섹스는 남성이 여성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삽입하는 것이 전부라고 인식해 온 사회가 지금까지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야기해 왔다. 이 모든 전제가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 성교육이다. 성교육은 몸과 욕망, 정체성과 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소통하고 존중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을 촘촘히 조직하고 있는 일상과 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사회와 세계,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교육의 분명한 전제와 관점을 세워주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모두가 평생 동안 꾸준히 배워야 할 일이다.[워커스 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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