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운영시설 법인화 기준 완화 주장, 무엇을 거쳐 어디로 가는가

법인화가 정말 “탈시설 정책의 한 요소” 될 수 있나

지난 8월 28일,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주최하는 ‘개인운영 장애인 거주시설 법인 전환 기준 완화 관련 공개 대토론회'가 열리는 장애인 종합복지관 ‘누림센터'에서 고성이 오갔다. 한 편에는 토론회를 저지하려는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가, 맞은 편에는 경기도 개인운영시설이 섰다.

  지난 8월 28일, 경기도 누림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토론회가 경기장차연 등 장애인단체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출처: 비마이너]

개인운영시설 측은 법인 시설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국가로부터의 지원은 이에 한참 못 미쳐 한계가 발생하고 있다며 경기도의 법인 전환 출연금 기준을 현행 2억 원에서 3천~5천만 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경희 경기도의원(보건복지위원장)은 이러한 개인운영 시설 측의 주장에 따라 조례 개정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토론회는 개정안 발의를 위한 공청회로 마련된 것이었다.

개인운영시설 지원은 지자체 담당이지만 법인 시설 지원은 복지부 담당이다. 법인 운영 시설은 운영비 전액을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다. 개인운영시설 지원 기준과 금액은 지자체별로 다르다. 지난 28일 무산된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경기도 개인운영시설이 지원받는 금액은 법인의 15% 수준이다. 즉, 현재 개인운영시설들은 법인화 이후 재정 지원을 현재보다 약 7배 더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낮아져 온 시설 제도권의 문턱

1997년,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어 사회복지시설 설립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었다. 이로 인해 법인뿐만 아니라 개인도 시설 운영이 가능해졌다. 신고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시설은 ‘미신고 시설'로 운영을 계속했다. 주로 종교단체의 후원금 등으로 운영되었다.

2002년 5월 9일, 충남 부여 엠마누엘 장애인복지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미신고 시설이었다. 이 사고로 시설을 운영하던 목사 등 4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복지부는 전국 미신고 시설 조사를 했다. 당시 미신고 시설은 637개로 파악되었지만, 기도원 등 종교시설의 외피를 쓴 미신고 시설이 전국에 정확히 몇 개나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637개 중 92개가 무허가 건물이고, 이 중 30개가 비닐하우스나 가건물 상태였다. 후원금이나 거주인의 수급비는 운영자나 직원이 쓰기 일쑤였다.

복지부는 미신고시설 양성화를 위해 ‘조건부 신고제도'를 실시했다. 일단 미신고시설을 국가 관리 하에 두고, 지원을 확대하여 장애인이나 아동, 노인 등 시설 거주인의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계획이었다. 2002년 6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두달간 신고한 시설들은 ‘조건부 신고시설'로 분류됐고, 시설 요건을 갖추기까지 3년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시설장 자격 요건은 5년까지 유예되었다.

이렇게 미신고 시설들은 ‘조건부 신고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제도권에 편입되었다. 조건부 신고 시설은 유예기간 동안 신고시설과 동일한 수준의 지원을 받았다. 여기에 추가로 시설 보수비가 지원되고, 임차료가 지원되고, 인건비와 인력이 지원됐다. 2002년에만 약 63억 원의 예산이 ‘조건부 신고시설'로 흘러들어 갔다.

미신고시설이 모인 단체는 ‘한국민간복지시설협의중앙회'로, 그리고 ‘개인운영신고시설협회'로 발전해갔다. 불법 시설에서 제도권으로 들어온 이들은 ‘합법 복지 단체'라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들의 힘은 2004년, 노무현 정부로부터 로또기금 1천억 원의 지원금을 이끌어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예산이 엄청나게 투입된 유예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법적 기준에 따른 운영의 어려움을 겪는 개인 시설이 많았다.

개인운영신고시설협회는 2012년 정책간담회를 개최한다. 오제세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에게 보낸 간담회 참석 요청 공문에서 협회는 지자체들이 ‘법인시설로 전환하지 못하면 시설을 폐쇄하고 지원한 로또기금 역시 돌려받겠다’라고 했다며 “과거 한국 경제를 살렸고 사회복지 일선에서 몸바쳐 헌신해온 우리 개인운영신고시설들을 말살하려 한다"라고 비판한다.

이들의 힘은 다시 한 번 발휘됐다. 결국 개인운영시설은 유지되었다. 지자체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경기도, 강원도, 충북, 대전 등에서 개인운영시설 지원 조례가 생겨났다. 조례는 인건비, 운영비, 기타 경비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 ‘불법 미신고 시설'에서 합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변모하기까지, 채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힘드신데, 왜 포기 못하십니까

그러나 개인운영시설들은 여전히 ‘운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이제는 법인화의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경기도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담당했던 김재열 동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개인운영시설 법인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법정시설(개인운영시설-편집자 주)과 법인시설의 차이는 법정시설이 정부의 요구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42조(시설의 설치 운영기준)을 충족한 정규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예산지원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 법정시설 이용자를 일반수급자로 취급하며, 이 중에 생계비와 주거비는 시설에서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으나 장애연금과 수당은 시설에서 사용할 수 없다. 시설 운영의 어려움 때문에 동의를 얻고 사용해도 감사에는 횡령으로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보장시설 장애연금은 시설 이용자 개인에게 지급되고 있다.”

김 교수는 장애인복지법은 시설에 재정 지원을 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장애인의 복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는 것임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장애인 시설 거주자에게 지원되는 수급비를 시설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점 역시 상당히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발언은 토론회가 무산되던 현장에서 공태영 경기도장애인법정시설협회 정책위원장으로부터도 들을 수 있었다. 공 위원장은 현장에서 “지금 많은 시설이 불법인 걸 알면서도 기초생활수급자인 거주인들 수급비를 사용하고 있다. 국가로부터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일"이라며 “법인화되어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게 되면 이런 현상도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마이너가 취재를 통해 확보한 남양주의 한 개인운영시설에 거주하는 한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당사자의 통장 내역을 살펴보면, 장애연금, 수당, 주거급여, 생계급여로 지급된 총 90만 7천570원 중 약 87만 원가량을 매달 시설에서 출금해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관대한' 양성화 정책으로 제도권 안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불법'을 저질러야만 운영할 수 있는데도, 왜 시설 운영을 포기하지 않는지.

개인운영시설들이 주장하는 ‘존재 이유'는 ‘장애인 복지’다. 자립생활 환경이 만들어져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탈시설하는 것은 장애인의 안전과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설은 정말 ‘무시무시한’ 지역사회로부터 장애인을 보호하는 ‘따스한 은신처'일까.

지난 9월 7일, 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는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한 개인운영시설에서 발생한 장애인 학대 사건을 공개하며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센터에 따르면, 해당 시설의 시설장 이 모 씨는 직원들에게 장애인을 통제하는 방법을 보여주겠다며 죽도로 장애인을 때리고, 지시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장애인을 감금하고, 곰팡이가 핀 음식을 먹이는 등 장애인을 학대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밖에도 개인운영시설에서 발생한 각종 장애인 폭행 및 학대 사건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고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법인화 기준 하향 조정을 촉구하는 측은 이러한 문제가 법인화만 되면 해결될 것처럼 주장한다. 이 모든 문제가 ‘부족한 인력과 지원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법인 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를 이미 양손으로 꼽기에도 부족할 만큼 많이 알고 있다. 가깝게는 대구시립희망원 사건부터 형제복지원까지, 시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는 법적 위상이나 지원 수준이 아니라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구조 그 자체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올해 7월, 뉴질랜드 인권위원회는 '시설은 학대의 공간이다(Institutions are places of abuse)'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뉴질랜드 인권위는 현재 국가가 운영했던 병원 및 시설에서 발생한 학대에 대한 총리의 공식 사과와 심도 있는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뉴질랜드 인권위는 시설에서 발생하는 학대를 ‘조직적 학대(systemic abuse)’라고 분석했다. 시설에서의 학대가 직원과 거주인 간의 억압적 권력관계로 인해 발생하고, 학대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기 어려운 등 학대 발생의 근원적 요인이 시스템 구조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인권위는 "조직적 학대는 '나쁜 사람이 한 나쁜 짓'이 아니라 학대가 일어나는 상황이 제공되는 경우나 그러한 상황이 제재 없이 계속되는 경우 모두를 포함한다"라고 덧붙였다.

탈시설, 정말 동의하십니까

문경희 의원은 개인운영시설 법인화 전환 기준 하향 조정이 ‘탈시설 정책의 투 트랙'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8월 29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 문 의원은 "탈시설화를 통한 진정한 자립과 지역사회로의 온전한 통합"이 장애인 복지의 최종 목표임에는 동의하지만 "거주시설 중 법인시설과 법정 개인시설의 환경차이로 인한 서비스 질 차이를 외면한 채 탈시설만을 향해 갈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문 의원 말처럼 정말 개인운영시설이 법인화되는 것이 ‘탈시설 정책의 투 트랙'이 될 수 있을까? 2016년 3월 서울시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29개 서울시 사회복지법인 한 개 당 평균 재산은 약 211억이다. 한 개 법인이 평균 18개의 시설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법인이 운영하는 시설들은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연간 수십, 수백억 원의 국가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관련 기사:서울시 장애인시설 법인, 평균 재산 211억...‘복지 재벌'의 실체는?)

연간 수억 원대의 지원을 국가로부터 받게 되는 ‘법인'이 그 권력을 쉽게 놓게 될까. 개인운영시설이 법인화되기 쉬워진다면, 향후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 법인들이 ‘탈시설 정책'에 미칠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함께 고민되지 않는다면, 문 의원의 ‘탈시설 정책에 동의한다'는 발언은 신뢰하기가 어렵다.

탈시설/자립생활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장애인 복지의 흐름이다. 이 흐름에 굳이 역행하는 이유가 정말 ‘장애인 개개인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서라면, 잠깐 멈춰서 다시 한 번 생각하길 바란다. 다양한 삶의 선택을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원천봉쇄하고, 정해준 것만 하는 삶을 ‘안전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길 말이다.[기사제휴=비마이너]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참세상 제휴 언론사 비마이너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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