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편승해 인권가치 내던진 국회, ‘퇴행을 멈춰라!’

시민사회단체들, "인권적 가치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진전에 걸림돌" 비판

  혐오 편승 국회 규탄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국회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습 [출처: 비마이너]

최근 국회가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 이주노동자, 사상의 자유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반인권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데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19일 오전,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준)(아래 국민주도개헌넷) 등 인권, 시민사회 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반인권의 경연장이 되어가고 있다"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들은 지난 9월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부결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임명동의안 역시 부결 위기에 놓인 점을 들며 국회의 반인권, 반민주적 행태를 지적했다. 김이수 헌재소장 인사청문회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 후보자가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인 군형법 92조 6항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고,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는 소수의견을 냈던 점 등을 지적하며 '진보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라고 임명 반대에 불을 지폈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의당 역시 이러한 '색깔론'을 인식해 임명 반대에 힘을 실었다. 결국, 김이수 후보자는 헌정사상 최초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헌재소장 후보자가 되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 역시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과거 행적으로 인해 야권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야권은 김명수 후보자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으로 역임할 당시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학술대회를 개최한 점을 들며 '부적격 인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김명수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동성애를 인정하면 근친상간 뿐만 아니라 소아성애나 수간까지 허용하게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하며 김명수 후보자의 입장을 비판했다. 국민의당 의원들 역시 보수 개신교계로부터 '김명수 후보 임명 반대에 투표하라'는 내용의 '문자폭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규탄하며 "인권에 대한 신념을 '정치적 편향'으로 둔갑시키는 왜곡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랄라 인권운동더하기 활동가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보다 누구를 얼마나 미워하느냐를 인선 기준으로 삼고 있는 국회의 태도를 규탄한다"라며 "국회는 더이상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인권을 이용하는 '퇴행'을 멈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한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는 "헌법은 모든 사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으나 국회는 이를 공공연하게 무시하고 있다"라며 각종 인사청문회에서 등장하는 '동성애 찬반 여부' 질문을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재판소장이나 대법원장이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치는 것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행정 권력을 견제하고 사법기관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며 "그러나 국회는 이러한 과정에서 지지세력을 과시하고 정치 싸움에만 활용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삼권분립의 가치를 지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일침했다.

이종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을 비롯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의원,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 등이 공개석상에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고 혐오 세력에 지지를 표한 사건을 지적했다. 이 집행위원은 "혐오세력에 맞서 인권의 가치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이에 동조하고 앞장서서 혐오하고 있는 모습은 민주정치에서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들의 발언은 직무와 무관한 폭력, 모욕에 해당하여 면책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라며 "정당성 없는 폭력 행위"라고 규탄했다.

개헌 논의가 한창 진행중인 가운데, 혐오에 적극적으로 편승하거나 이를 방조하는 국회의 태도가 인권적 가치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진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상희 국민주도개헌넷 정책자문위원은 "지난겨울, 우리 국민들은 전 정권의 억압에 맞서 촛불을 들었다. 하지만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의 뜻을 개헌에 반영해야 할 국회가 혐오에 앞장서고 있다"라고 규탄했다. 그는 "개헌 국면은 억압받는 모든 국민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지만, 정작 개헌 과정은 일부 종교집단에 의해 장악되고 모든 논의가 '동성애 반대'로 귀결되는 상황에 처해있다"라며 "정교분리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국회는 오히려 방치함으로써 국민의 요구가 개헌 과정에 집약되는 것을 막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보수 개신교계와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한 '혐오'는 비단 성소수자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 기자회견 주최 측은 "(국회가) 권력에 의해 강제된 정당 해산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툭하면 '통합진보당'을 들먹이며 빛바랜 색깔론을 부활시키고 있고, 노예제라는 비판을 받고 사라진 지 10년이 된 '산업연수생'을 다시 만들자느니, 최저임금도 주지 말자느니 하는 발언도 국회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슬람 혐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에 대한 배제를 방임하는 국회의 행태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작년 촛불 정국 때부터 의원들이나 정당 대표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라며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한 채 국민이 등을 떠밀어야, 여론이 만들어져야 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박 소장은 "헌법과 국제규범 등 기본적인 내용도 하나하나 설득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고 있자니 국회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상황에 와있다는 회의감이 든다"라고 토로했다.[기사제휴=비마이너]

  발언 중인 박래군 소장(왼쪽에서 세 번째 마이크 든 사람) [출처: 비마이너]

[출처: 비마이너]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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