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대병원 간호사입니다

[워커스 소소한 조각모음]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학교병원분회 문화부장 최원영 인터뷰

“2017년 서울대병원 간호사 첫 월급이 얼만지 아세요?”

서울대병원 간호사 최원영 씨가 10월 4일 저녁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제목입니다. 간호사 첫 월급 문제를 제기한 이 글은 6,700건의 ‘좋아요’와 1,727회 ‘공유’를 기록하며(10월 24일 기준) 화제가 됐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리기 전에) 언론사에 연락했어요. 언론에 보내줄 자료를 찾느라고 연휴 때 다들 집에도 못 갔죠. 간호사 스케줄을 찾고, 일일이 사진으로 찍고…. 그런데 자료를 받은 언론이 병원 측에 전화 한 번 해보고는 ‘실수로 그런 거래요. 소급해서 지급하기로 했다는데요?’ 라는 거예요. 기사로서 가치가 없어 보도하기 어렵다고. 너무 화가 났고, 홧김에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동료들과 함께 있는 최원영 씨(왼쪽) [출처: 최원영]

답답한 마음에 올린 포스팅은 기대 이상의 홍보효과를 거뒀습니다. 일간지, 뉴스, 라디오 등 많은 언론에서 원영 씨를 인터뷰했고,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간호사 첫 월급 문제’는 순식간에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고려대병원, 한양대병원, 제일병원, 이대병원 등에서 제보가 이어졌고, 전국 병원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서울대병원 측은 이례적으로 홍보 담당 직원이 아닌 대외협력실장이 나서서 방송사에 항의했다고 합니다.

원영 씨의 이런 경험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2016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과연봉제에 관해 쓴 포스팅 “나는 서울대병원 간호사입니다”(좋아요 3,684개, 공유 777회)가 언론에 보도되었던 경험입니다. 원영 씨는 간호사들의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진이라 했을 때 의사와 간호사를 먼저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나 처우는 주변부에 머무는 수준이에요. 간호사가 일하기 좋은 환경은 반드시 환자에게도 좋거든요. 간호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어 간호사가 여유를 갖고 일할 수 있으면 간호사에게도 좋지만 환자들도 더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죠. 그런데 의료공공성이나 보건 정책 등을 다룰 때 보면 의사나 교수들이 중심이 돼요. 간호사들이 무대중앙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은 ‘페북스타’가 됐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사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제보와 폭로가 이어지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간호사들은 맨날 징징거리기만 한다’고 느끼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프레임으로 글을 써볼까. 원영 씨는 오늘도 포스팅을 하며 고민합니다.

노동조합 활동가의 포스팅이 언론에까지 나오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은 종종 이런 일을 겪기도 하지만요. 사실 언론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수차례씩 기자회견을 하고, 누군가는 절박한 투쟁수단을 택해 세상에 호소해보지만 언론에 나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원영 씨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쌩얼을 그대로 보여줬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이 공감해주는 것 같아요. 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싸우는 거잖아요. 투쟁하는 사람들이 항상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솔직히 나도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욕구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내 삶에서 겪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백하게 할 수도 있잖아요.”

더 많은 원영 씨를 위해

원영 씨 페이스북을 보면 그녀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집회소감, 해외여행 갔다 온 이야기, 노동조합에서 겪은 에피소드, 책읽기 모임 후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평소 원영씨가 쓰는 말투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일상이 담긴 페이스북 담벼락에서는 결기에 찬 투사의 냄새보다 즐겁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청년의 냄새가 납니다.

몇 달치 월급을 모아 해외여행을 가는 YOLO족이 유행하고, 임금 인상보다 내 삶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원영 씨는 젊은 세대와 노동조합이 만나기 위해서는 딱딱한 단어나 결의로 포장된 문장보다 조합원들의 담백한 자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호회보다 재미있고 유익한 노동조합의 일상, 노동조합 활동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에피소드, 노동조합이 지키는 가치의 소중함…. 절박하고, 안타까운 사연 못지않게 노동조합에서 겪는 행복한 이야기들이 소통되고 공유될 때 노동조합에 대한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후안무치’ 같은 어려운 말 대신 ‘부끄러운 줄 모르고’라고 쓰는 기자회견문.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쓴 성명서, 조합원들이 직접 말하는 톡톡 튀는 이야기. 이런 것들이 더 많이 나올 때 많은 젊은 세대들이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노조 할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외칩니다. 먼저 노동조합을 가로막는 법과 제도, 관행을 바꿔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와 함께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노동조합 안과 밖의 온도 차이를 줄여야 합니다. 구체적인 일상의 언어는 온도차를 줄이는 시작입니다. 더 많은 원영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바랍니다.[워커스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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