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의 전염

[워커스] 레인보우

국민교육헌장이 교과서 표지 안쪽에서 사라지기 바로 몇 년 전까지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런 나는 중학교에 가면 반드시 암기시험을 본다는 엄마의 위협에 열심히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출처: 사계]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대한민국을 훌륭한 근대 국가로 성장시키기 위한 ‘예비 근로자’의 기본 조건이었다. 생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시키는 ‘낙태죄’ 조항을 형법에 유지시킨 채, 근대화를 위한 인구조절 정책의 성공을 위해 모자보건법을 제정했던 박정희 정부는 인공임신중절 허용 요건에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를 넣어두었다. 그리고 모자보건법 시행령에는 인공임신중절 허용 요건에 무려 2009년 개정 전까지 ‘현저한 범죄경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라는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한편 이러한 정책들은 1920년대부터 이어져 온 일제와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우생학적 목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이들은 ‘병인(病人)’ 집단을 설정함으로써 국민의 자격을 확인하고 감시와 통제를 위한 행정권력의 개입을 정당화했다. ‘아픈 몸’은 단지 개인의 고통이나 불행일 뿐 아니라, ‘건강한’ 국민과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에이즈는 어떻게 활용돼 왔는가

‘건강한 몸’에 대한 통제는 다분히 성적 통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성별화 된 건강기준과 각종 평가 수치는 성역할과 이성애 관계, 이를 통한 ‘건강 가정’의 구성과 유지를 전제로 제시된다. 지난 세기,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것은 이러한 목적에서 가장 편리한 도구로써 활용됐다.

캐시 루디는 <섹스 앤 더 처치>에서 에이즈를 활용하는 미국 우파들의 다양한 전략을 소개한다. 이들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전통적인 이성애 가족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초에 ‘문란한 존재들’로 전제되고, 에이즈는 이들의 문란함이 죄임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에이즈는 ‘건전하고 건강한 이성애자 시민’을 구분하고 구별짓는 척도이자, 스스로를 이 ‘문란하고 병든 집단’으로부터 분리하여 관리하도록 하는 경고 표지 같은 역할을 해왔다. “동성애자의 성적 부도덕과 난잡함은 에이즈뿐 아니라 강간, 살인, 낙태도 유발한다”고 쓴 그렉 올버스나, “에이즈에 걸렸다고 보고된 이성애자는 모두 아프리카계 흑인들”이라고 주장한 F.L. 스미스는 에이즈를 활용하는 우파의 선동 전략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가족을 이루어 아이를 기를 필요가 없기에 돈이 많은 동성애자들’이 할리우드를 비롯한 문화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동성애를 미화하고 의료 기관과 관계자들을 압박함으로써 에이즈를 통제할 수단들을 무력화 한 결과, 이성애자 사회로 에이즈가 급격하게 전파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성노동자는 이를 옮기는 매개체로 전제된다. 이런 식으로 에이즈는 병이 아닌 낙인의 지표가 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편견과 낙인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사람들은 가난과 불평등, 제약회사의 횡포와 사회적 낙인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그저 이 ‘문란한 이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단속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기울였다.

전염되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편견이다

에이즈에 관한 사회학적, 의학적 연구들이 진전되면서 이제 세계 각국의 에이즈 대응 정책들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범죄화와 낙인은 결코 에이즈의 예방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연이어 보도된 에이즈 관련 뉴스들은 한국이 과연 21세기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인지를 의심케 한다. 에이즈에 관한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는 뉴스는 찾아보기가 힘들고, 국회에서는 의사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윤리 의식조차 상실한 채 에이즈를 빌미로 성소수자 혐오 선동에 앞장서고 있는 수동연세요양병원 염안섭 원장의 왜곡된 발언이 난무했다. 에이즈에 감염된 채 성매매 일을 지속해야 했던 십대 여성들이 어떠한 사회적 조건에 놓여있었는지는 안중에도 없이, 도리어 이들을 범죄자로 몰아세우고 낙인을 강화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에이즈는 이제 만성질환에 해당하고 꾸준히 약을 먹으면 성관계 시에도 감염 비율이 1% 이하에 불과하다. 유엔에이즈프로그램(UNAIDS)을 비롯해 수십 년 간 에이즈를 다루어 온 국제기구들은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정작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에이즈가 아니라, 사회의 진짜 문제들을 가린 채 ‘저 문란한 이들’과 나를 구분지으라 요구하는 편견과 낙인이라는 사실을. 전염되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무지이고, 편견이다.[워커스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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