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연사 할 수 있을까?

[기고] 미디어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단상

[편집자 주] 지난 7월 29일 세상을 떠난 고 박종필 다큐멘터리 감독이 6일 ‘한국장애인인권상’을 수상했다. 한국장애인인권상은 장애인 권익을 위해 사회적 차별을 제거하고 불의에 대항해 온 인물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고 박종필 감독은 20년 가까이 빈민, 장애인, 노숙인, 세월호 유가족 등의 삶과 투쟁을 카메라로 기록해 왔다. 한국장애인인권상위원회는 6일 열린 시상식에서 그를 인권매체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

평생을 세월호, 장애인, 빈민 운동에 투신해 온 그는 정작 자신의 건강권은 보호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그의 죽음 이후, 미디어운동 내에서는 활동가들의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반다 전 다큐인 활동가가 ‘미디어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단상’이라는 글을 보내왔다. 이는 ‘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107호에 실린 글이다.


# 그들의 사인을 묻다

그는 장애인미디어교육 참여자였다. 장애차별 때문에 취업이 어려운 자신의 처지와 빈곤에 대해 자주 이야기 했다. 비장애인참여자들은 그의 경험을 통해 장애차별 현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강사인 내게 든든한 참여자였다. 수업에 열정적이던 그가, 정작 시사회를 겸한 수료식에 처음으로 무단결석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사망 원인은 맹장염. 요즘시대 누가 맹장염으로 죽냐고 하지만, 그는 수급권자였다. 돈이 없어 병원가기를 미루다가 더 이상 통증을 참을 수 없어 병원을 찾았을 땐, 너무 늦었었다.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갖고 있던 장애인권활동가 김준혁,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3살 이었다. 그의 사인(死因)은 맹장염일까, 빈곤일까. 더 구체적으로는 맹장염으로 인한 패혈증일까, 잔인한 장애차별과 한심한 복지제도일까?

지난여름 ‘다큐인’의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몇 해 전 간경화 진단을 받았었다. 당시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술 때문에 간경화가 왔을 거라고 말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그가 간경화 진단을 받기 전, 꽤 긴 시간 마음고생 하는 걸 보았던 터라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었다. 그가 간경화와 술을 연결시키는 걸 유독 싫어했던 건, 동료들이 그의 마음앓이가 아니라 술만 보는 것 같아 서운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황망한 죽음 앞에서, 나는 여전히 묻고 있다. 힘들어 하는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줬었다면, 영상활동가로서 자신을 쥐어짜며 살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었다면, 세월호의 진실이 침몰하지 않았었다면, 활동가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만약 그랬었다면, 그는 지금 이곳에 우리와 있을까. 그의 사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김준혁, 박종필의 영정이 광화문 부양의무제폐지 농성장에 놓여 있다.

# 사회적 안전망과 건강권을 위한 토론회에 들르다

다들 안타깝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김일란 감독은 위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고, 박종필 감독은 죽음으로 밀려가지 않아도 됐는지. 최근 젊은 영상활동가들이, 가난한 건 괜찮은데 아프지 않으려면 독립다큐멘터리 판을 떠나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속내를 말할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무엇보다, 각자 미래의 불안과 현재의 침통한 심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이들이 그런 질문을 안고, 지난 9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열렸던 <사회적 안전망과 건강권을 위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인 대토론회>(이하 토론회)에 참석했던 것 같다.

토론회사회를 맡은 변규리 감독에 의하면, 토론회는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인의 현실을 짚어보고, 구체적 실태조사 지표 마련과 정책적 대안 마련을 위한 초석이 되는 자리라고 했다. 독립다큐멘터리인의 사회적 안전망을 위한 실태조사 현황과 전망에 대한 발제(강유가람 감독)로 시작됐고, 예술인 이전에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과 예술인의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발제(송윤혁 감독)가 이어졌다. 주요한 맥락을 열심히 짚어낸 발제문들이었다. 이후 참여자들은 모둠을 나눠서 ‘건강권’과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아프고 뜨거운 시간이었다. 그날 집에 오며, 이번에는 정말 미디어활동가 건강권 논의가 흐지부지 되지 않고, 끝까지 제대로 진행되길 간절히 바랬다. 그 바람에 덧붙여 토론회 이후 들었던 약간의 단상을 아래 나열해 본다.

# 미디어활동가건강권에 이로운 사회적 조건이 하나라도 있을까

건강은 수많은 사회적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형성된다. 흔히 생각하는 유전이나 체질 이외에 고용, 임금, 주거, 학력, 지역 조건에 매우 적극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를테면 공장 폐쇄 계획만으로도 노동자 혈압이 상승하고 심장 건강이 위험해진다는 보고가 있다. 노동자들이 상시적 해고 위협에 놓이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아지고, 우울증, 불안장애등 정신적 건강도 나빠진다고 한다. 소득과 지역에 따른 건강을 살펴 볼 수 있는 서울 강남과 강북의 건강통계를 보면 강남의 평균 수명이 강북보다 3년 이상 길고, 질병과 자살을 포함한 사망률도 강북이 높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건강이 더 나쁘고, 저임금일수록 건강이 나쁘며, 저학력일수록 건강이 나쁘고, 노동이나 삶에 대한 통제권이 적을수록 건강이 나쁘다는 보고는 흔하다. 심지어 공무원처럼 비교적 안정적 직군 안에서도 직급과 임금에 따른 건강차가 상당하다고 보고된다.

  박종필 감독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인형

이런 연구보고들을 떠올려 보면, 미디어활동가들은 도무지 건강하기 어렵다. 미디어활동가들은 자영업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으니, 생계와 수입이 불안정하고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을 갖는 이가 상당수다. 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높은 것처럼 인식되지만, 생계 때문에 알바를 거절할 수 없거나 찾아다녀야하는 현실은 사실상 노동에 대한 선택권이 별로 없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생계 때문에 알바를 하다보면, 정작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과 최저 생계비 안정은 건강의 절대적 우선 조건인데, 전혀 충족되지 않는다.

그리고 소수만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제작지원과 협소한 배급구조는 작업 환경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동료지만, 제작지원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보여주기 위해서 영상을 만드는 데 일부만 영화제를 통해 평가받고 박수 받으며, 다수의 영화는 변변히 대중을 만나지 못한 채 소외된다.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과 동료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지만, 더 나은 작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다큐의 출연자들에게 미안해지고 자괴감에 빠진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이 구조에서 경쟁, 긴장, 박탈감을 반복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미디어활동가라서, 건강에 이로운 조건이 하나라도 있는 걸까 묻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현실은 어느 직군에도 뒤지지 않을 불규칙한 생활과 높은 흡연과 음주 비율을 만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과 관계를 잘못 해석해서 인지, 위와 같은 환경에 대한 언급 없이 음주와 흡연 그리고 불규칙한 생활로 질병이 왔으니 그런 생활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해석은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며, 사회적 구조와 요소를 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위험한 태도다(박종필 감독이 술을 많이 마셔서 간경화가 왔다는 식으로 손쉽게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 미디어활동가, 그 내부의 차이

토론회에서 모둠별 시간에 들었던 인상적 말이 있다. 같은 모둠에 있던 최은정 액트 정책위원이 “창작자 이외에 상영활동가나 다양한 스텝들의 건강과 안전망 등에 대해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지만, 고개가 깊게 끄덕여졌다. 그리고 언젠가 뒤풀이 자리에서, 누군가는 000영상활동가, 000감독이라고 불리는데, 상영활동가나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스탭들은 '야, 걔' 이런 식으로 호명되는 걸 들은 게 기억났다. 술자리이긴 했지만, 공식행사 연장에 있는 뒷풀이였기 때문에 반쯤은 공적인 자리이기도 했다. 호칭이 그들의 지위와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불편했던 기억이 났다.

  2017.9.26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회적 안전망과 건강권을 위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인 대토론회


출처: http://actmediact.tistory.com/1212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토론회 발제문을 보면 강유가람 감독은 ‘독립다큐멘터리인’, 송윤혁 감독은 ‘독립다큐멘터리제작자’, ‘예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궁금했다. 창작자에게는 독립다큐멘터리와 독립극영화의 구분이 중요하고 명백하지만, 상영활동가나 다양한 역할의 스텝들에게 그 구분이 명확한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지닐지에 대해서. 그리고 예술인이라는 단어는 영상활동가로서 정체성이 명확한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며, 상영활동가를 비롯한 비창작인 그룹들은 그 단어를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건강권 관련 제도를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미디어 활동가 내부의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미디어활동가 내부에서도 누구의 건강이 더 취약한지, 어떤 이의 고통은 드러나고 회자되지만 어떤 이의 고통은 비가시화 되고 더 쉽게 고립되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고통을 경주하자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중 정도나 지위 등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위계와 문화를 성찰하는 건 민주적이고 평등한 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하기도 하지만, 미디어활동가 응급의료비와 같은 복지제도 같은 것을 요구한다고 할 때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저런 선별적 복지 제도는 필연적으로 사각지대를 만드는데, 내부의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 등을 잘 살펴야만 누락되는 이들과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개인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구조적 요인과 조건들이 건강 수준 결정한다고 말한다. 미디어활동가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미디어활동가의 수입, 안전, 작업환경, 내부위계를 포함한 다양한 현실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한 접근과 기록이 필요하다.

# 죽음, 혼란, 이야기

김준혁 활동가과 박종필 감독의 죽음, 닮고 다른 것은 무엇일까?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미디어활동가의 건강권은 우리사회 전반의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한국은 가파른 경제성장과 함께 평균수명도 수직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부(富)가 그랬듯 건강도 공평하게 주어진 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늙고 죽어갈 권리는 모든 이들에게 부여된 권리가 아니다. 나는 김준혁 활동가의 죽음이 특별히 극단적인 게 아니라고 본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미 극소수가 아니라 상당수의 이들이 극단적 현실에 놓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미디어활동가라고 해서 이 사회에서 특별히 더 나쁜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인지 질문해 보게 된다는 의미다.

  박종필 감독과 동료들의 술자리

물론 최근 김일란, 박종필 감독의 건강 현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안팎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 사실인 것 같다. 미디어활동가와 근거리에 있는 이들 조차 문화자본을 많이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들이, 자신의 몸을 돌볼 틈 없이 그토록 중증 노동에 시달린다는 것과 그럼에도 상당수가 월 100만원도 손에 쥐지 못하는 현실을 알고서 놀라워했다. 그리고 독립영상 진영 내부적으로는 사회의 수많은 인권현실에 분노하고 연대를 호소하는 영상을 만들고 상영하면서도, 정작 자신과 동료의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구축해 놓은 게 없다는 현실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여전히 모두 동료의 질병과 죽음이 아프다. 이런 현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 나는 현재 미디어활동가 건강권 논의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말하기’ 라고 본다. 토론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각자가 얼마나 아프고 불안한지 말하는 과정에서 공감하고 공감 받던 순간의 표정들이다. 그런 이야기를 할 곳이 부족하기도 했을 테고, 이야기 주제로 등장하지 못하기도 했을 것 이다. 물론 말하기가 가장 필요하다는 의미는 개인들의 정서적 해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 알아야 하고,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건 다양한 이야기를 ‘양적으로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지면 설문형식도 좋지만, 그 이전에 다양한 말하기 자리가 마련된다면 질적으로 좋은 자료를 축적할 수 있음은 물론,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되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 보는 자리가 될 것 이다. 우리가 박종필 감독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괴로웠던 건, 동료가 아픈 것도 몰랐던 죄책감과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었다. 다시는 우리, 서로에게 그런 동료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 기회라도 필요하다.

#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하다

미국의 사회역학자 리사 버크만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망이 두터울수록 건강하다고 한다. 조사를 해보니, 사회적 관계망의 연결 정도에 따른 사망률이 1.8배에서 2.7배가량 차이 났다고 한다. 연결될수록 건강해 진다는 의미다. 당장 미디어활동가들의 건강권을 위해 가장 빠르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는 서로의 관계망을 두텁게 만드는 일이다. 다수의 미디어활동가들이 질병과 사고로 삶이 꺾이지 않고, 충분한 노화를 겪으며 생물학적 필연으로 자연사(自然死) 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 참고문헌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2017
덧붙이는 말

연분홍치마 김일란 감독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특히나 남모르게 혼자 앓고 있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쾌유를 빕니다. 각자의 통증이 고립되지 않고 연결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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