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정말 정규직과 가까워지고 있을까?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노동실태 및 정책대안’ 토론회 국가인권위에서 열려

교육기관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 A씨는 무기계약직이다. A씨는 1년마다 한 번씩 근로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사용자인 학교 측에선 학생 수가 줄면 급식실 인원도 줄여야 한다며 해고를 종용했다. 해고의 기준은 가위바위보였다. A씨는 재계약 시점이 오면 서로서로 견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노동자 B씨도 무기계약직이다. B씨는 야간근무까지 모두 합쳐서 최저임금 수준의 시간당 급여를 받는다. 야간근무를 하지 않는 다른 무기계약직들은 그마저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B씨에겐 교통비와 급식비도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다. B씨는 “정규직 전환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처우라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이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표방하며 가장 먼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인천공항을 전격 방문해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운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구호가, 실은 ‘무기계약직’이라는 허울 좋은 비정규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처우 개선과 고용안정의 효과가 없이 이름만 바꾼 비정규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국가인권위원회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에 소재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노동실태 및 정책대안’ 토론회를 열고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의 노동인권 실태와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 토론회는 올해 초 인권위가 발주해 한국 비정규센터가 수행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의 결과 발표를 토대로 진행됐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토론회에서 정규직과 다른 차별적 요소를 지적하며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발제자로 나선 정홍준 한국비정규센터 정책연구위원은 임금과 인사제도의 불공평을 대표적인 차별사례로 제시했다. 정홍준 연구위원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정규직들은 호봉제로 임금이 설계돼 근속에 따라 임금이 자동 인상되는 구조지만 무기계약직은 호봉제가 도입되지 않았으며 근속수당을 받는 정도”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정 연구위원은 각종 수당이나 성과급 등도 무기계약직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정규직들에 비해 제한이 있다”고 밝혔다.

인사제도 역시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노동자간의 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됐다. 정홍준 연구위원은 “연구과정에서 만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 대부분은 별도의 승급제도가 없는 단일직급이 많았다”면서 “이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오랜 기간 일을 하고 숙련수준이 높아진다고 해서 업무에 관해 책임과 역할이 주어지는 구조가 아니라 동기부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이 임금과 처우 개선은 없지만 고용의 안정만은 보장한다는 통설에도 이견이 나왔다. 토론회 토론자로 참여한 조상기 한국노총 공공연맹 사무처장은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도 고용불안은 여전하다”면서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아예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상기 사무처장은 무기계약직의 임금은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비’에 편성돼 있는 경우가 많아 해당 사업과 예산이 축소되면 무기계약직 역시 해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권고한 무기계약직 관리규정에 따르면 기관은 “사업이나 예산이 축소 또는 폐지돼 경영상 감원이 불가피한 경우” 무기계약직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결국, 임금과 처우는 물론 고용안정의 면에서도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자회사 설립, 직무급제 적용에 대한 비판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정부가 제시한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고용 방식과 직무급제 적용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이었다.

정부는 지난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식 중 하나로 ‘자회사 정규직 고용방식’을 제시했다. 그러나 조돈문 한국비정규센터 대표는 “자회사의 정규직 방식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한 하위범주에 불과하여 정규직 전환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회사의 정규직도 사용기관과 고용기관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제조업 완성차업체의 사내하청 비정규직과 다르지 않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자회사의 이윤과 관리비용 증대에 따른 비용 추가가 뒤따르는 자회사 방식이 직고용 정규직 채용보다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방식을 ‘신 카스트제도’라고 부르며 기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구조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의 표준모델로 제시하는 직무급제 도입 역시 비판을 면치 못했다. 정부는 지난 11일 청사관리본부 노사전문가협의회를 통해 청소, 경비 노동자들에게 직무급제를 도입한 무기계약직 전환 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호봉제를 적용받는 일반 공무원과 다르게 직무급제를 적용받는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와 달리 직무급제는 직무의 난이도와 책임의 정도에 따라 임금이 정해진다. 청사관리본부가 도입할 예정인 직무급제는 1~5등급으로 직무를 분류하고, 직무마다 임금을 6단계로 구분한다. 특정 직무의 최대 임금은 6단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임금 상승 속도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직무급제는 전체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대상 직원들에게 적용할 표준임금 모델 안의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정부의 표준모델안을 확정하기 위해선 초기업 노조와의 단체교섭이 우선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준형 실장은 “동일노동에 대한 기관별 차이를 줄이기 위해 임금체계가 직무급 성격을 띨 수는 있지만 숙련, 정규직과의 격차축소 등을 위해 연공급적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실장은 “전체 공공부문의 임금체계 변화가 동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연공급적 요소를 배제하려는 모델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2007년 기간제법 시행 이후 정규직화 과정에서 생긴 기형적 형태가 무기계약직”이라며 “지금은 무기계약직이라는 형태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다리가 될지, 평생 비정규직 굴레를 쓰게 하는 형태가 될지 결정하는 기로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무기계약직 전환과 자회사 고용 형태가 적합하지 않다는 정책권고와 차별시정 권고를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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