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의 고공을 그리며

[기고] 끝나지 않는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408+49일 제안자’들의 약속



더 이상 고공을 올려다보며 울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천 일, 이천 일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는 노동자민중들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목 매는 사람을, 번개탄을 지피는 사람을,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서 눈물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버스를 대절해 4대강으로, 성주로, 밀양으로, 비행기를 타고 강정으로, 또 그렇게 어디로 황급히 가지 않아도 되는 주말을 갖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민중이 개돼지가 되지 않고, 흙수저 N포세대가 없는 세상, 헬조선이 아닌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절망과 분노가 모여 항쟁을 이루었고, 혁명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들은 왜 저기 올라가 있는 것입니까.
왜 제2의 이명박근혜들이 다시 기를 펴고, 왜 제3의 이재용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봐야 합니까.
왜 국회는 잠자고 있으며, 왜 촛불대리정부는 자본가들과 제국의 눈치나 보며 설실 깁니까.
이것은 혁명이 아닙니다. 다시 혁명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여기 ‘노사합의 이행’을 넘어 ‘헬조선 타파. 노동악법 철폐, 수구정당/국정원 해체’를 외치며 올라간 미련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촛불의 빛을 안간힘으로 지켜보려는 ‘마지막 잎새’들 같습니다.
어떤 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리움의 등대 같습니다.
여기에 우리 약속과 연대의 손수건 한 장씩을 걸어둡니다.
홍기탁, 박준호 빨리 내려오라고, 우리 모두의 삶의 평화와 평등이 빨리 와야 한다고. 누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전과 평화와 평등을 위해 연대의 손수건을 걸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우리 모두 약속하고 결의합니다. 2017년 마지막 날까지 가슴 속 양심을 꺼내들고 이 추운 겨울날 75m 허공 위에서 가녀리게 흔들리고 있는 당신들, 두 개의 촛불을 잊지 않고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 다시 밝혀든 우리 가슴 속 촛불의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이 안전한 평지로 내려오는 날까지 우리는 언제까지고 다시 올 것입니다.

2017년 12월 30일










‘408+49일 제안자’ 1198명 일동

*(덧 이야기) 스타플렉스(파인텍 모회사)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에 연대하는 ‘408+49인의 제안자’ 운동은 공교롭게도 12월 22일,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씨의 고공농성에 연대한 희망버스 피의자들에 대한 최종 대법원 선고가 있던 날 제안되었습니다. 그날 희망버스 피의자들의 ‘유죄’는 대부분이 받아들여진 반면 홍준표, 성완종 등 부패 정치인들은 명백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받았습니다. 기가 막힌 날이었습니다.

30일까지는 열흘도 남지 않은 촉발한 일정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행사 하루 전날인 12월 29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1198명의 제안자들이 나서주셨습니다. 10여년 동안 최선을 다해 일터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워 온 스타플렉스(파인텍 모회사)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과, 촛불항쟁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사회구조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문제의식들이 모여 만든 일이라 생각합니다.

당일, 파인텍 노동자들과 작년 겨울을 광화문광장에서 함께 보냈던 성남의 ‘행복한 밥상’, 일산의 ‘함께하는 이웃’, 그리고 ‘집밥’ 분들이 수백 인 분의 국밥나눔을 해주셨습니다. ‘음향 자유’에서 모든 무대음향 등을 후원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대구에서는 ‘희망버스’를 띄워주셨고, 그 외 부산, 광주, 순천, 전주군산, 춘천, 속초 등에서 먼 걸음을 해주신 소중한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오후부터 흩뿌리는 겨울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와 더불어민주당사와, 자유한국당 당사 거쳐 11km에 이르는 행진을 광화문 캠핑촌에 함께 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들이 ‘대나무만장전’과 ‘도깨비 풍물전’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전체 학교생과 학부모들이 독성 독감에 앓아누운 상태라면서도 초교 아이들과 함께 나와 밝은 노래 보태주신 인천 ‘기차길옆 작은학교’ 김중미 선생님 등께는 특별한 고마움이 남습니다. 신년 액막이 판화전을 열어 투쟁기금 마련해 준 판화가 이윤엽 선생께도, 짧은 시간에 모든 행사 기획과 준비를 마친 숨은 기획단 분들께도 참 고맙습니다.

참여해 주신 제안자 분들로 ‘파인텍의 친구들’ 텔레그램 방을 만들어 지속적인 소통과 연대를 해 나갈 계획입니다.

* 본문의 사진들은 참가해주신 분들이 기록해주신 사진들입니다.

* 동영상은 ‘408+49’에 함께 하고,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로 30일 밤 11시경 고공에서 잠들지 못하던 박준호 씨가 영상통화를 통해 불러 준 우리 모두를 위한 노래,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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