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사계] |
갑자기 웬 사회주의? - 경멸의 이름이 된 사회주의
#1. 최순실과 노회찬
“아아아악!” 12월 14일 국정농단 사건 재판. 징역 25년과 벌금 1185억 원 구형에 대한 최순실의 반응은 분노의 괴성이었죠. 그리고 잠시 후, 최후진술에서의 일성은 뜬금없이 ‘사회주의’였습니다. “사회주의보다 더한 국가” “사회주의에서 재산을 몰수하는 것보다 더하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죠.
다음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해 최순실의 ’사회주의’ 발언에 대한 견해를 밝혔는데, 인터뷰 본문의 해당부분을 직접 보겠습니다.
노회찬: 사회주의 국가였으면 사형 당했을 거예요.
김현정: 재산몰수 정도가 아니고?
노회찬: 네.
김현정: 북한이었으면?
노회찬: 네.
이 짧은 대화는 우리 사회에서 상식처럼 퍼진 사회주의에 대한 인상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사회주의는 곧 북한이고, 북한은 곧 숙청과 처형이라는 등식이 떠오르죠. 이 기사의 댓글은 ‘북한이었다면 그냥 사형도 아니고 로켓포를 쐈을 거다’ ‘고사총에 탱크로 밀어 버렸을 거다’ 같은 흔한 반응이었죠. 반면, ‘사회주의였으면 밝혀내지도 못했다’거나 ‘사회주의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고 박근혜, 최순실이 쫓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얼핏 정반대의 반응처럼 보이지만 사실 북한을 보며 떠올린 동일한 이미지의 양면입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표상은 장성택 숙청이겠죠. ‘최고존엄’ 앞에서 박수를 건성건성 치기라도 하면 기관총에 화염방사기로 처형하는 경악할 독재-폭력-광신체제, 이것이 오늘날 이 나라 에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미지일 겁니다.
#2. 문재인이 공산주의자?
지난 11월 해임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MBC 대주주) 이사장의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한동안 세상이 시끌시끌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5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영주를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 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이 사건을 기소해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죠. 고영주는 재판장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가 맞다”며 자신의 발언이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신연희 강남구청장도 지난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등의 내용을 담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달해 파장을 일으켰지요. 신연희 역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정작 북한은 2009년 헌법을 개정 하면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했는데, 이 나라에서는 북한을 추종한다며 상대 정치인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사실 정치적 반대 세력에게 빨갱이 올가미를 씌우는 건 이 나라 현대정치사에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고 있죠. 이건 반공주의 종주국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락 오바마도 대통령 시절 사회주의자라는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 자동차산업이 파산하자 세계적 기업이기도 한 GM을 단번에 국유화하고, ‘오바마케어’ 라는 의료보험 개혁안을 밀어붙인 게 그 주요한 이유였죠. 물론 GM 국유화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시행해 다시 정상기업 으로 회생시키기 위한 절차였고, 구조조정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GM을 다시 민영화했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됐고 GM 본사가 자리한 디트로이트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오바마케어 역시 전국민 공공의료보험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민간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해 의료비 상승과 보험자본의 이윤증대로 이어졌죠. 미국의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중앙일보 칼럼에서 공적 의료보험을 포기한 오바마케어를 만족스럽게 평가하며 “오바마 폄하자들이 사회주의식 보건개혁이라고 깎아내리는 동안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헬스케어 지수는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단언했죠.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경멸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을 다름 아닌 ‘명예훼손’으로 기소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사실 근래 이 나라에서 사회주의란 말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보다 도리어 자유한국당과 특히 홍준표가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사회주의 분배정책’, 내년 예산안은 ‘사회주의식 좌파 포퓰리즘 예산’, 경제사회 정책은 ‘사회주의식 역주행’이라고 주장했죠. KBS‧MBC 사장 교체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독재국가’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사회주의라고 매도하지 말라”며 막말‧망언이라고 반발했죠. 사회주의라는 말은 나라를 팔아먹는 짓에 버금가는 욕설로, 음해의 딱지로, 극구 부정해야 하는 악마같은 무언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긴, 이런 세태는 150년 전부터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1848년 『공산주의 선언』 첫머리를 이렇게 썼죠.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여담으로,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이 명예훼손인지는 모르겠지만 허위사실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문재인은 결코 사회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오히려 위기의 자본주의를 되살리려는 구원투수를 자처한 사람입니다. 이 점은 앞으로 《워커스》 지면에서 계속 확인해나갈 것입니다.
#3. “공산당 할 거야 안 할 거야?”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드라마 ‘야인시대’. 이 드라마의 후반부는 1945년 해방과 분단 직후 벌어진 좌우대립을 상당히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묘사했는데요. 우익이 좌파정치인과 노동조합 등 민중 진영에 가한 백색테러를 미화하면서 반대로 사회주의 계열의 인물들은 비웃음거리나 음험한 악당처럼 나왔죠. 물론 김두한 본인이 우익 폭력집단의 선두에 선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한 장면은 아직까지도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는데요, 바로 김두한 일당의 심영 저격사건을 연출한 대목입니다.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좌익 연극배우인 심영이 ‘님’이라는 사회주의 연극의 막을 올리려던 찰나, 김두한 일당이 들이닥쳐 폭력을 휘두르며 극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듭니다. 심영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자 총격을 가하고, 이로 인해 심영은 가까스로 병원에 이송되지만 성기능을 상실하게 되지요. 김두한 일당은 심영이 입원한 병원까지 찾아와 살해 협박과 함께 다시는 공산당 활동을 하지 말라며 윽박지르는데요. 이때 심영 역할을 맡은 배우가 자신이 피격당해 성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알고 비통하게 울부짖는 장면은 이후 온라인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습니다. 이 장면은 병원에 찾아온 김두한에게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 하는 대목과 겹쳐 당시 일제하부터 격렬하게 분출했던 사회주의 운동을 순식간에 희화화 시켰죠. 장면의 느낌을 좀 더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대사 몇 개를 추려서 옮겨 보겠습니다.
(극장 씬)
심영: 여러분, 님이 무엇입니까?… 님은
바로 사회주의 낙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김두한: 개소리 집어쳐! 무슨 님을
만난다는 거야!… 거짓으로
학생과 시민들을 우롱하고 속여 온
너희들을 오늘 단죄하러 왔다!
(병원 씬)
김두한: (심영을 가리키며) 지금 이 사람은
민족 반역잡니다.…
심영: 용서해 주시오 제발, 김두한 대장! 나
좀 살려주시오.
김두한: 공 산당 할 거야 안 할 거야?!
심영: 안 하겠소! 다시는 안 하겠소!
어쩌면 이제 드라마 ‘야인시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야인시대’는 모르더라도, 공산당을 단죄하겠다는 김두한과 그로 인해 (드라마의 표현대로라면) ‘성 불구자’가 된 심영을 희화화한 이 장면은 워낙 온라인을 통해 퍼진 탓에 지금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사회주의는 위험하고 경멸스러운 의미와 함께, 부지불식간에 우스꽝스러운 비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린 것이죠.
사람들은 처음부터 사회주의를 혐오했을까?
# 이런 빨갱이 같은 헌법?
「제18조 …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제85조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 제87조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하에 둔다.」
위의 조항들은 어떤 사회주의 국가의 법이 아닙니다. 바로 1948년 제정한 대한민국 제헌 헌법입니다. 이 제헌헌법의 부칙 마지막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을 이에 공포한다. 단기 4281년 7월 17일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 4.19로 물러난 그 이승만 맞습니다. 이승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제헌헌법을 만든 제헌의회 구성원들도 상당수가 보수우파였죠. 무소속을 제외하면 이승만이 이끌던 대한독립 촉성 국민회, 친일파‧지주‧자본가들이 몸담은 한국민주당 등 우익정당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요새 한창 개헌문제로 정치권 논의가 복잡한데요. 제헌헌법에 담긴 이런 조항들을 개헌안에 담으라고 요구한다면 적어도 자유 한국당으로부터는 사회주의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서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의 근거로 우익세력이 제시 한 것 중 하나가 이승만 묘소에 참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요. 이승만이 공포한 제헌헌법의 위 내용에 대해선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합니다.
물론 제헌헌법이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정치세력 상당수가 사회주의를 혐오한 반공주의자였고,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과정 자체가 1948년 제주 4.3 항쟁을 짓밟으며 진행되었죠. 법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러한데, 국유화 자체가 사회주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약간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앞에서 잠깐 언급한 오바마처럼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국유화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공공부문 국유화 원칙 역시 마찬가지죠. 물론 공공부문을 사적 자본이 아닌 국가가 소유하는형태는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기업에서 확인할 수 있듯 국가재정을 통한 공공부문 지원을 최대한 통제하고 수익성을 앞세우며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기간제‧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국가 소유 공기업 역시 얼마든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조차 어떻게든 민영화하려고 주식매각, 회사분할 등 갖은 꼼수를 쓰지만 말입니다. 무엇보다 공공부문은 기획재정부를 위시한 국가 관료들이 통제하지, 직접 일하는 노동자나 공공부문 이용자인 대중의 통제로부터는 벗어나 있죠.
어찌되었든 제헌헌법의 위 조항들이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 우익으로부터 빨갱이 공세를 받을 소지들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회주의와 대척점에 선 우익 정치인들이 이런 제헌헌법을 만들었던 걸까요? 제헌헌법이 이전에 독일사회민주당이 주도한 1919년 바이마르 헌법에 기초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사실 바이마르 헌법은 진보적 헌법의 대명사처럼 알려졌지만 사회 민주당 정부가 노동자들의 혁명을 폭력적으로 유혈진압하고 수립한 공화국의 헌법이었죠. 물론 그렇다 보니 혁명적 분위기를 일정부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고요. 사회민주 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의 저항을 앞장서 분쇄한 이 이야기도 이후 다루게 될 것입니다). 혹은 아직 공공부문처럼 대규모 산업을 개별자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해 국가가 이를 대신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해방을 전후하여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세상,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난 세상을 꿈꾸는 대중적 분위기가 고조했고 사회주의 운동 역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제헌의회에 모인 정치인들이 단순히 외국 헌법을 베껴 쓴 게 아니라면, 국내의 이런 정치적 분위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 자본주의 지지 14% vs 사회주의 지지 70%
서두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인상이 어떤지, 사회주의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쓰고 받아들이는지 몇 가지 소재를 바탕으로 얘기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처음부터 사회주의가 대중적으로 이런 이미지였던 것은 아닙니다.
해방 직후의 분위기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입합니다.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임시 양분하여 각각 남쪽과 북쪽을 점령했고, 남한에서는 1948년 정부수립 전까지 미군이 통치권을 행사했는데 이를 미군정시기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1946년 미 군정청이 한국인(당시는 조선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8천여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여 어떤 체제를 찬성 하는지를 묻습니다. 선택지는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모릅니다’ 이렇게 네 가지였는데요. 조사결과 자본주의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1,189명으로 14%에 불과했던 데 반해 사회주의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6,037명으로 70%를 점했습니다. 공산주의에 찬성한다는 사람은 574명으로 7%를 기록했지요. 이 여론조사 결과는 동아일보 1946년 8월 13일자 기사로 실렸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옛날신문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군정청 여론국에서는 조선인민이 어떤 종류의 정부를 요망하는가를 규찰키 위하야” 설문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오히려 자본주의 지지자가 소수였고 대다수가 사회주의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죠.
물론 당시의 상당한 문맹률도 고려해야겠지만 적어도 민심의 향배가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지금 이런 여론조사를 벌인다면, 아마 자본주의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놓고 사회주의에 찬성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죠. 당시 사람들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에 완전히 무지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미 1920년대부터 국내 민족해방운동과 노동운동을 통해 수많은 사회주의자와 그 조직들이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운동이 발흥하며 대중적 영향력을 키워나가자 일제는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해 본격적인 탄압을 전개합니다. 참고로 이 치안유지법은 오늘날 국가보안법의 모태가 되는데요, 치안유지법은 하나의 핵심 사항을 노린, 말하자면 원포인트 법안이었습니다. 그 사항은 이 법 제1조에 나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국체를 변혁하거나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하는 것.”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공업화하면서 자본주의를 이식하는데, 이에 따라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자연스럽게 결합하게 되었죠. 치안유지법은 이 운동을 정면으로 분쇄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탄압은 가혹했습니다. 1925년 창당한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지속적 침탈로 1928년 해산하기까지 3년간 4차례나 검거와 궤멸, 재건을 반복했죠. 그러나 이후 1945년 해방 전까지 사회주의자들은 당을 재건하기 위한 그룹들을 만들고 노동조합, 농민조합 등 대중적인 공간에서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모색했습니다. 해방 이후 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가능했던 것은 일제치하 국내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의 끊임없는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사회주의를 야기한 건 자본주의다
한국전쟁을 전후하며 남과 북 모두에서 일제하 국내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했던 활동가들은 거의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절멸했다고 보는 게 맞겠죠.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사회주의는 그 이름부터 금기가 된 채 논의대상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의 저항과 대중의 불만 역시 끊이지 않았죠. 한국현대사에서 면면히 이어진 민주노조운동을 위시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이를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 역시 대안이자 지향 으로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벽두에 들어서면서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다시 사회주의는 좋게 말하면 ‘비현실적인 이상’, 나쁘게 말하면 ‘전체주의 독재’로 치부 되었죠. 누군가는 “역사의 종언”을 고하며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졌고 우리는 이를 IMF 외환위기로 뼈아프게 경험했죠. 그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그 수준과 정도를 달리하더라도 저항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말의 영문 앞글자를 딴 TINA라는 별명으로 유명했죠. 자본주의에 대안은 없다는, 우파들의 단골주장이었는데요. 하지만 2013년 대처가 죽자 많은 영국인들이 샴페인을 터뜨리거나 “대처의 장례식도 민영화 하자”고 비꼬았죠. 대안은 없는 게 아닙니다. 대안에 대한 열망도 사라지지 않았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벗어난 사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이 사회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 사회주의운동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이지만, 사회주의가 내세운 기치들은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를 더 어둡게 만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사회주의라는 대안은 공상적 실험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부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회주의라는 대안도 사라지지 않지요. 당신의 불만, 분노, 좌절, 실망, 기대, 희망 그 모든 게 대안의 시작 입니다. 이 지면에서는 앞으로 그 시작에서 생기는 궁금증들을 함께 풀어나가려고 합니다.[워커스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