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교가 키운 컬링 국가대표

[워커스] 너와 나의 계급의식

[출처: 사계]

대한민국이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예선 1위가 확정됐을 즈음 팬들은 이미 애정 넘치는 패러디와 유행어로 SNS를 도배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방과후학교에서 처음 컬링을 접했다는 뒷이야기는 “다시는 방과후를 무시하지 마라”는 농담을 퍼뜨렸다. 공공운수노조 방과후학교강사지부도 페이스북에 선수들 기사를 공유했다. 공유와 함께 새긴 글귀는 “방과후학교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하고 성장합니다” “방과후학교가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였다. 앞선 농담과 달리 벅찬 마음이 읽혔다.

방과후 강사의 벅찬 자부심

많은 교육부 사업이 그렇듯 방과후학교도 언제든 만들고 없앨 수 있는 수업이다. 수업을 맡으려면 매년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자연스레 방과후 강사의 고용은 불안정하다. 학교 교실을 빌리기만 할 뿐 사교육자, 개인사업자 신분에 ‘투잡’ 일자리라는 선긋기도 단골 레퍼토리다. 정교사들이 이 사업 때문에 업무과중에 시달리니 일자리 혜택을 보는 외부강사는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압박과 같다.

공교육 현장의 논리가 어떻든 방과후 강사들이 겪는 불안과 고통은 보통의 비정규직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계약만료와 재계약이 반복되는 현실은 기간제 노동자를, 중간업체가 끼고 ‘소속외’ 취급을 받는 현실은 용역 노동자를 쏙 닮았다. 교육부와 교육청도 여느 사용자들처럼 사무 편의와 비용절감을 위해 엉터리 일자리를 만들고 있단 얘기다.

그렇게 ‘사교육 외부강사’이자 비정규직으로 억눌려온 방과후 강사들이 페이스북에서나마, 그리고 컬링팀의 올림픽 활약에 힘입어서나마 아이들의 잠재력을 운운하고 세상을 바꾼다는 외침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방과후학교도, 올림픽 메달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방과후강사들이 교사 못지 않은 자부심을 벅차게 드러냈단 점에서 자꾸만 곱씹게 되는 외침이다.

교사의 오래된 자부심

초등학교 교사인 언니에게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 예술강사의 처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모두 학교 정규교과 수업에 들어가는 비정규직 강사 직종이다. 언니도 이들의 처우가 너무 안타깝다고, 뭔가 잘못됐다며 직접 아는 사연을 몇 개 읊었다. 그리고 이어 말하길 교사들이 애초 강사제 도입에 반대했어야 한단다. 학교 교육이라는 교사 전문의 업무를 교사가 아닌 이들에게 맡기는 격이라서 그렇단다. 자부심이 빛나는 말이었고 어쩐지 나는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일과 자격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낼 수 있는 업종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같은 교사라고 해도 자부심의 여부와 크기는 다 다를 것이다. 그래도 교사의 자부심을 배양하는 제도적 요건이 무엇인지는 따져볼 수 있다. 교원 자격의 취득방법이 소정의 교육 이수와 임용시험 통과로 명료하고도 배타적이라는 게 먼저 떠오른다. 그래도 교사의 자부심이 자격 취득과 임용의 성취감이 전부일 리는 없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교사의 자부심은 초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길을 성실히 걸어만 간다면 나의 전문성이 커지고 그 숙련과 경력도 인정되리라는 초임교사의 기대로도 뒷받침된다. 노련하고 경험 풍부한 교육자가 되기까지 세상이 기다려 주리라는 믿음과 안심으로도 뒷받침된다. 이 기대와 믿음은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다. 교사의 빛나는 자부심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하지만 교사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학교에 왔다가 사라지는 유령으로 남지 않기 위해, 호봉은커녕 근속수당 1만원을 더 받기 위해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이어가는 기나긴 농성과 집회, 교섭이 떠오른다.

‘노동자부심’이라는 호소 그리고 힘

노동자의 자부심은 일터에서 자신이 인간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피어난다. 내가 처음 노조에 와서 놀란 것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다른 업무와 채용 자격, 그에 따른 기본급의 차이를 그럭저럭 인정하면서도 복지, 수당, 근속 인정 차별에는 못내 서러워하고 분개하더라는 것이다. 절반의 식대, 한 장뿐인 위생마스크, 좁아터진 휴게실에 이들은 인간대접을 못 받는다는 자괴감과 모멸감을 떨치지 못했다. 잘 들여다보면 비정규직 노조의 모든 요구안에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싶다는 호소가 짙게 깔려 있다.

자부심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힘이기도 하다. 작년 한 해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노조는 오랜 설움과 자괴감을 자부심과 당당함으로 반전시켰다. 그리고 이 반전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을 밀어붙이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정규직 전환이 ‘무임승차’라는 정규직들의 반발과 야유가 터져 나오자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인천공항을 12년 연속 1등 공항으로 만든 건 정규직 사무직이 아닌 직접 현장을 누비고 지킨 우리 비정규직이란 주장을 더 강고히 했다. 이어 정규직이 될 자격은 이미 충분하다며 노하우를 축적하고 자부심과 책임감을 발휘할 제1 조건으로 원청의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이 요구는 상층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허물고 고임금을 쪼개자는 무슨 ‘연대’나 합의의 요청이 아니라, 원청과 하청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성을 흥정하며 주고받던 돈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으로 바로잡으라는 강력한 협박이었다.

올림픽이 공정함의 원칙과 가치를 가르친다는 이야기가 많다. 동시에 올림픽을 즐기는 많은 이들은 불공정한 선수 선발이나 판정 못지않게 선수가 훈련이나 경기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에 분노한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키우고 발휘하는 걸 방해하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올림픽 선수만이 아니다. 안정적으로 역량과 전문성을 쌓도록 장려하고 보장하는 제도는 노동자에게도 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당당히 요구해 얻어내야 한다.[워커스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