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공무원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나

[워커스 이슈(1)]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1
2015년 12월 24일 새벽 한 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공무원 A씨가 투신했다. 나이는 48세. 23년 차 6급 공무원. 사망 당시 유서는 남아있지 않았다.

유족들은 그가 죽음을 택한 이유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가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었다. 1998년 큰형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결혼 전까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부모님과 형제는 듬직하고 책임감 있는 그를 늘 신뢰했다. 결혼 후 진짜 가장이 된 후에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성실하게 살았다.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도 특이할 만한 점이 없었다. 항상 활발해 주변에 친구들도 꽤 있었다.

유족들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혹시 가족들 모르게 도박을 했나, 아니면 사채를 끌어다 썼나,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A씨의 주변은 깨끗했다. 그 흔한 우울증 진료 기록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행동이 조금 이상한 것도 같았다. 사망 6개월 전 부서이동을 한 이후부터였다. 그즈음 A씨는 재무과에서 대기관리과로 인사발령이 났다. 술이 부쩍 늘었다. 원래도 술을 즐겼지만 분명 예전과는 달랐다. 폭음이 이어졌다. 그해 명절, 가족들은 모여 그의 심상치 않은 상황을 걱정했다. 그 날도 A씨는 혼자 소주 세 병을 마셨다. 이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하루는 만취한 A씨를 보호하고 있다며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고, 또 다른 날은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몇 번의 결근이 이어졌다. 이유를 묻는 가족들에게 A씨는 그저 ‘출근하기 싫다’고만 했다. 거기까지였다. A씨는 죽기 직전까지 더 이상의 징후를 남기지 않았다. 결국 유족들은 어떠한 이유도 알아내지 못한 채 장례를 치렀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죽음에 관한 내밀한 사실들이 밝혀진 것은 장례식장에서였다. 회사 동료 직원들이 빈소를 찾아 밤새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오른 그들은 A씨의 스무 살 자녀를 붙잡고 새로운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부서 팀장이 A씨에게 종종 폭언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A씨보다 13살이 어린 팀장은, 그에게 ‘같이 일하기 싫다’거나 ‘돌대가리’라며 욕을 했다.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를 내뱉었고, A씨가 자리에 없을 때는 그의 험담을 했다. 재무과에서는 줄곧 동료들과 어울리던 A씨는 부서이동 후 동료들과 따로 떨어져 식사했다. A씨의 빈소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팀장을 비롯해 박원순 시장까지 줄줄이 조문을 왔다. 그 때까지도 피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유족들은 평범하게 그들을 맞았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족들은 가해자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유족들은 서울시청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나니 더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됐다. A씨가 지금껏 자신의 상황에 대해 도움을 요청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부서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부서 이동 요청도 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노조를 찾아가 부서이동에 대해 문의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부서 책임자들에게 자신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털어놓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유족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담당 직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결국 유족들은 그들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A씨는 장시간 노동에도 시달렸다. 그가 죽기 전 한 달 간, 근무일 중 5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과노동을 했다. 밤 10시 이후 퇴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망 당일에도 밤 10시경 마지막 남은 동료를 배웅한 뒤에도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

유족들은 서울시청을 찾아가 박원순 시장을 만났다.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닌데,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텐데, 시장님이 나서서 이를 좀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박 시장은 유족들 앞에서 ‘제대로 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해 직원이던 5급 공무원은 사건 후 대기발령과 함께 6급으로 강등조치 됐지만, 6개월 뒤 다시 5급으로 복귀했다. 그가 사망한 후 4일 뒤에는, 또 다른 서울시청 공무원이 과로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듬해 7월, 인사혁신처는 그동안 공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포함되지 않았던 암이나 정신질병, 자해행위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자살이나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도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해 8월, 유족들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A씨의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았다.

#2
A씨 사망 4일 뒤인 2015년 12월 28일. 서울시청 공무원 B씨가 또 다시 투신자살했다. 그는 40세의 재무국 소속 7급 공무원이었다. B씨는 그해 1월 늦은 나이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처음에는 재무국에서 계약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5월부터 봉급 업무로 자리를 옮겼다. 인사이동에 따른 빈자리를 B씨가 메우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점부터 장시간 노동이 시작됐다. 월간 3~5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초과노동에 시달렸다. 초과근무 시간은 최장 4시간을 넘겼고, 10시 넘어서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극심한 과로에 시달리며 병원 치료도 받았다. 병원 진료기록에는 과로로 인한 탈진과 불안장애 등의 증상이 나와 있다. B씨는 사망하기 전, 서울시에 다시 계약업무로 보직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3
이듬해인 2016년 5월 3일. 서울시 임용후보자 7급으로 근무하던 C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해 39세였던 C씨는 뇌병변 5급 장애인이었다. 그는 국회 별정직 5급, 타 지자체 9급 공무원을 거쳐 2016년 1월 서울시에 근무하게 됐다. C씨는 사망 전인 4월 30일, 어머니에게 ‘일이 힘들다’고 울며 하소연한 후 집을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C씨가 귀가하지 않자 어머니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냈고, 이틀 뒤 경찰은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여관에서 번개탄을 피운 채 사망한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언론보도를 통해 그가 업무를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임용 전 사채 등 부채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4
2017년 9월 18일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시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던 7급 공무원 D씨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 14층에서 투신자살했다. D씨는 사망 당시 28세로 4급 장애인이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유들은 꽤 구체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D씨는 2015년 공무원으로 임용돼 2년여 간 일을 해 왔고, 사망 당시에는 예산 담당 일을 하며 과로에 시달렸다. 그는 사망 전 8월 한 달 간 무려 170시간의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한 업무 지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입사 3년도 채 안 된 직원에게 체육청소년기금운용 전반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지시하고, 독촉과 질책을 반복했다는 제보도 나왔다. 사망 이틀 전인 토요일에도 일을 했으며, 일요일 업무지시를 감당할 수 없어 월요일 오전까지 동료들과 연락을 두절한 상태였다. 노조에 따르면, D씨가 소속돼 있던 예산부서 직원들은 월요일 오전 약 9시 가량 고인이 살던 아파트 경비실에 인터폰을 하며 출근을 재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D씨는 이후 오전 9시 20분경, 어머니에게 출근한다고 집을 나선 뒤 아파트 14층에 올라가 몸을 던졌다.

#5
불과 한 달여 전에도 서울시 공무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월 30일,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소속 7급 여성 공무원 E씨(35)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D씨가 사망한 지 4개월 만이다. E씨는 지난 2012년 서울시 공무원으로 임용됐으며, 2016년 7월 상수도사업본부에 발령을 받았다. E씨의 사망 이후, 서울시는 평소 그가 우울증을 앓아 왔다며 업무연관성을 낮게 평가했다. 노동조합 역시 그가 희망에 따라 현재 부서로 발령을 받은 것이며, 평소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 근무를 잘 해왔다고 밝혔다. 반면 유족들의 입장은 달랐다. 유족들은 사건 발생 후, 언론에 고인이 남긴 카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내일 출근할 거를 생각하면 천장이 나를 덮치는 기분이다’ ‘회사 비용처리 독박에 대한 불만’ 등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6
성희롱으로 인한 자살 사건도 있다. 2014년 5월 30일,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산하 상수도연구원에서 근무하던 29세 보건연구사 F씨가 성희롱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4년 8월 임용된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직장 상사들은 F씨에게 ‘모텔에 가자’ ‘나랄 잘래?’ 등의 발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F씨는 입사 초기부터 불면증과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상수도연구원에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결국 F씨가 사망하고 나서야 서울시는 세 명의 가해자에게 정직 1개월과 정직 3개월,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유족들은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사망으로 인한 연금을 신청했지만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결국 유족들은 기나긴 법적 싸움에 나섰고. 지난 2월에서야 서울고등법원에서 공단이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서울시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자살한 서울시 공무원은 9명이다. 연간 한 명 이상의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 과로나 업무 스트레스 등 업무 관련성 의혹이 제기된 사건은 총 6건. 이 중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은 것은 단 2건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살이라는 것이 사유가 복잡하다. 한 가지 사유만 가지고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정 문제, 경제적 문제 등이 겹치다보니 어떤 사유로 돌아가셨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1월 30일, 9번째 자살 사건이 발생한 뒤. 여느 때처럼 반짝 소란하던 여론은 어느새 다시 잠잠해졌다. <워커스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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