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A의 미투

[워커스 이슈] Nice to #metoo (1)

사건개요

A는 지난 2015년 말, 자신이 속한 단체에 성추행 사건을 제소했다. 가해자는 단체 자원활동가였다. A말고도 두 명의 피해자가 더 있었다. 단체는 내규에 따라 반성폭력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는 3명의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가해자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 대책위 요구에 적극 따르겠다는 동의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조사 다음날, 가해자는 돌연 대책위를 신뢰할 수 없으며 대리인을 선임해 제3의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한달뒤에는인권단체등에메일을보내피해자가 성폭력을 빙자해 자신의 인권을 유린했다고 주장했다. 가해자가 보낸 문서에는 피해자의 실명과 신상 정보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듬해 가해자는 피해자 3인과 공대위위원 2인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특수협박, 업무방해를 했다며 4천만 원에 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와 공대위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지원을 받아 소송 대응에 나섰다. 지난한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그리고 1년 8개월 뒤. 서울지방법원은 가해자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후, 공대위는 가해자에게 공대위 활동 복귀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가해자는 이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의 재구성 1. A의 공간

단체 상근자인 A는 외부 소모임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중장년 남성 활동가 두 명이 A에게 제안해 만든 소모임이었다. A는 그들의 활동을 존경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소모임 활동을 제안해 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A는 소모임에서 실무를 담당했다. 행사 장소를 섭외하고, 문서를 정리하고, 행사 때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들보다 젊으니, 실무를 더 많이 맡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A는 소모임 업무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A는 그들과 회의를 하고 세미나를 하고 뒤풀이를 했다. 가끔 그들은 여성을 지칭할 때 ‘년’자를 붙였다. A는 그들에게 그런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A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기에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다.

어느 날은 회의 장소가 그들 중 한 명의 오피스텔로 정해졌다.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A는 자신의 예민함을 탓하며 불편함을 지웠다. 그들과는 단순한 남녀, 혹은 상하 관계가 아닌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A가 그 곳에 더 많이 시간을 투여할수록, 더 많이 애를 쓸수록 그들과의 관계는 조금씩 뒤틀려갔다. 이따금씩 A는 그들과 부딪혔다. 그들은 가끔 공동 결정 사항을 A와 상의 없이 이행하지 않고는 했다. A는 일상적인 문제제기가 그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무 업무가 쌓여갈수록, 감정 또한 차곡차곡 쌓였다. 사람에게 무안을 주는 그들의 말투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들이 살던 80년대가 아니었다. 차갑고, 직설적이고, 상대를 내리누르는 식의 그들의 말투에서는 결기보다는 무례함을 더 느꼈다. 이런 방식이면 같이 하기 어렵다, 고 문제제기를 했더니 ‘그럼 하지 말라’는 단출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A는 이따금 잠들기 전, 명치에서 치받혀 올라오는 뜨거운 불덩이를 다스리곤 했다.

그 즈음, A가 일하는 단체에 가해자가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게 됐다. 가해자는 A가 단체에서 맡고 있는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였다. 가해자의 연구 영역은 소모임 활동 분야와도 비슷했다. A는 자신이 활동하던 소모임에 가해자를 초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해자는 두 명의 남성 활동가들을 ‘형님’이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꽤 오래된 무리처럼 어울리는 그들을 보며, 남성적 조직문화의 낯섦을 어렴풋이 느꼈다.

사건의 재구성 2. 타이밍은 존재하지 않는다

첫 번째 피해가 발생한 때는 2014년 여름. 가해자가 소모임 활동에 참여한 지 3개월이 지난 후였다. 피해 장소는 소모임 토론회 뒤풀이 자리였다. 당시 A는 가해자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가해자가 A의 허벅지를 찰싹 때리며 쓸어내렸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갑작스런 접촉 이후 묵직한 불쾌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A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나에게 호응을 바라며 한 행동일까. 하지만 분명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중이었는데. 그렇다면 큰 리액션이 필요한 상황이었을까.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A는 고민만 하다 가해자에게 문제제기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만약 타이밍이 맞았더라도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라는 자신은 없었다. 술자리는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그냥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면 또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니까. A는 이번에도 자신의 예민함을 탓하며 불쾌감을 지우려 애썼다.

두 번째 피해는 그로부터 한 달 후에 벌어졌다. 이번에도 토론회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자리가 파한 뒤 A와 가해자가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때 가해자의 몸이 A쪽으로 향하더니, 그의 오른쪽 손이 올라가며 A의 가슴을 쳤다. 이번에도 찰나였지만, 얇은 티셔츠 위로
뭉툭한 손의 촉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놀란 A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가해자는 태연하게 가방을 들고 자리를 떴다. A는 이번에도 혼자 생각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손이 닿았던 것일까. 하지만 그와 밀착해서 앉아 있지도 않았는데. 과연 실수였을까, 아니면 의도한 것일까. 왜 자꾸 그의 행동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실수였다면 왜 그는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을까. 찰나의 순간 뒤, 또 다시 혼란만 남았다.

A는 이번에도 타이밍을 놓쳤다. 아니, 어쩌면 타이밍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의 손이 가슴을 닿은 그 순간 “불쾌합니다. 사과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집에 가는 그를 쫓아가 “아까 당신이 나의 가슴을 쳤어요. 사과하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고 했다. A는 그동안의 시간을 더듬었다. 생각해보면, 가해자는 종종 A의 의사와 상관없는 접촉을 했었다. 행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그는 굳이 A의 손을 일방적으로 잡아 악수를 했다. 술이나 차를 마시러 가자며 자꾸 말을 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지금껏 다른 남성들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해 왔나. 적어도 A의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사건의 재구성 3. 내가 알지 못한 위계

A는 사람관계에서의 스트레스가 가장 힘들었다. A는 남녀를 비롯한 수많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권위에 민감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털털한 척을 해 봐도 결국 상처가 쌓여 분노로 터져 나오곤 했다. 가해자와의 일 역시 자신의 예민함이 문제는 아닌지, 왜 당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는지, 그럼에도 불쾌함은 왜 커지기만 하는지 속앓이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친구 B에게 가해자와의 일을 털어놨다. B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가해자와 활동 동선이 겹치는 B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노라 했다. 9월 2일 경 토론회 뒤풀이 자리에서 가해자가 B의 허벅지를 두 차례 때린 불쾌한 기억이 있다는 것이었다. B역시 여성이었다. A는 그제야 자신이 특별히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한 쪽은 오히려 가해자라는 것 역시. A는 가해자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여 뒤. 가해자는 A가 근무하는 단체에서 주관한 토론회 발제자로 나섰다. A는 가해자의 발제 내용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고학력 연구자인 그는, 그럼에도 여러 토론과 연구를 맡게 될 터였다. 뒤풀이 자리에서 A는 가해자에게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나쁜 손버릇을 갖고 있는 남성이자 고학력 연구자. A는 자신의 분노가 어디를 향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가해자의 부족한 발제문만 물고 늘어졌다. A가 자리를 떠난 뒤, 소모임 멤버인 남성 활동가는 ‘A가 가해자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키득댔다.

A는 얼마 뒤, 소모임에서 탈퇴했다. 물론 계기는 있었다. 어느 주말, 소모임 단체 대화방에서 그들 중 하나가 A에게 업무를 지시했다. 외국에서 손님이 왔는데, 당장 내일 워크샵 자리를 만들고자 하니 장소섭외와 연락 업무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A는 자신이 왜 상명하달의 방식으로 업무에 동원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문제제기했다. 하지만 곧 가해자에게도 다른 업무 지시가 떨어졌다. A는 이런 방식의 업무 배분에 동의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들과의 관계를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A는 업무 소통 방식에 항의하며 결국 대화방을 나왔다. 이 사건은 이후 ‘A가 가해자를 좋아한 것 아니냐’는 또 다른 마타도어로 윤색됐다.

사건의 재구성 4. 문제는 예민함이 아니다

A는 가해자와의 문제를 선뜻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A와 절친한 친구가 가해자와 연인관계로 발전한 까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가해자와 함께 만난 자리에서 A에게 깜짝 놀랄 이야기를 했다. ‘가해자가 자신의 친구를 만진 사실이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가해자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며 거듭 경고했다. 가해자의 손버릇은 생각보다 심각할지 몰랐다. 동시에 A는 자신의 예민함이 문제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피해사실을 가슴속에 담아두며 자책하고, 가해자를 원망하는 시간도 끝내고 싶었다. A는 용기를 내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스스로가 수치스럽지 않도록 에둘러서. “당신이 나의 가슴과 허벅지를 만졌다”가 아닌 “당신이 내 몸을 일방적으로 만진 적이 있으니 다시는 내 몸에 손을 대지 말아 달라”고. 가해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서 ‘자신의 행동으로 불쾌했다면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며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신속하고도 기계적인 사과였다. A는 알겠다 했다. 어찌됐든 사과를 했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후 또 다시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세미나 뒤풀이 자리에서 가해자는 음식 접시를 옮기는 A의 손목을 잡고 ‘무겁다’며 다른 손으로 접시를 빼앗았다. A는 정신이 멍해졌다. 얼마 전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손목을 잡는 가해자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용기 내 꺼낸 문제제기가 그저 가벼운 해프닝으로 치부된 것만 같았다. 가해자의 행동이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또 다시 무겁고 불쾌한 일상이 이어졌다. 기억은 어느 때고 불쑥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뒤, 친구가 가해자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A는 고민 끝에 친구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털어놓는 것이 좋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A는 친구에게 가해자가 자신의 허벅지와 가슴을 일방적으로 만졌고, 경고 후에도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친구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A에게 ‘가해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알기 힘드니, 직접 가해자에게 이야기해 깨닫게 하는 것이 맞다’고 조언했다. 친구의 조언대로 가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해자는 또 다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에 경고하지 않았느냐 물으니 “아, 그때 사과 했었잖아요”라며 성을 냈다. 그러면서 기억은 나지 않으나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가해자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A가 민망해질 만큼.

그날 밤 친구가 A에게 말했다. “남친이 소모임 사람들에게 네가 내 남친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더라”고. 소모임 사람들이 키득댄 이야기는 생각보다 교묘해져 있었다. 피해자는 숨이 턱 막혔다. 피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이상한 모양으로 왜곡되고 있었다.

사건의 재구성 5. 어떤 백래시가 와도 성폭력은 성폭력

2015년 말. A는 가해자를 성추행 사건으로 제소했다.

피해를 겪은 지 약 1년여 만이었다. 제소의 결정적 계기는 모멸감이었다. 제소 하루 전, 가해자의 애인은 SNS 게시물에 가해자와 A를 나란히 태그했다. 그 때 A는 처음으로 모멸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A가 고통과 자책으로 보낸 시간이, 수치스러웠던 기억들이 저들에게는 이토록 가벼울 수 있구나 하는. 피해 호소가 저들에게는 전혀 현실적으로 가 닿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A는 한 페미니스트 활동가에게 자신이 겪은 일이 성폭력이 맞느냐고 자문을 구했다. 그는 성폭력이 맞다며 위로했다.

A가 속한 단체는 대책위를 꾸렸다. A와 B,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 C까지 모두 3명의 피해자가 모였다. 대책위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가해자는 면담조사에서, 대책위의 요구에 적극 따를 것과 피해자와 대책위 구성원에게 정신적, 물리적 고통을 야기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서명을 했다. 하지만 이튿날, 가해자는 돌연 입장을 바꿔 대책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그리고 한 달여 뒤, 인권단체 등 제3기관과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인권이 유린 당했다며 사건에 개입해 달라는 글을 배포했다. 가해자는 이 글을 통해 피해자의 실명과 사생활을 폭로하고 인신공격을 했다. 대책위 성원들을 인신공격하는 내용도 다수 실렸다.

그 즈음 대책위는 외부단체까지 참여를 확대해 공동대책위로 조직을 재편했다. 대책위는 피해가 발생한 곳이자,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속해 있었던 소모임에도 참여 요청서를 보냈다. 하지만 A와 처음 소모임을 만들었던 두 명의 남성 활동가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들은 A에게 ‘A가 거론하는 발언들은 왜곡돼 있고, 이런 유의 진실게임은 전혀 흥미가 없으니 거론하지 말라. 소모임의 기본입장은 논의금지, 엄정중립’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2016년 3월. 가해자는 3명의 피해자와 2명의 공대위 위원을 상대로 3천만 원 상당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이듬해 7월에는 특수협박과 업무방해를 추가해, 소송비용을 총 4천만 원으로 인상했다. 가해자의 아내가 된 A의 친구가 그의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건의 재구성 6. #미투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가해자가 인권단체에 배포한 글과 법원에 제출한 소장의 내용은 엇비슷했다. 대부분 피해자에 대한 인신공격과 사생활 폭로가 중심이었다. 가해자는 A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분노해 사적 감정을 가지고 가해자의 인격을 매장하고 혼인을 파탄시키기 위해 사건을 제소한 것이라 주장했다. A가 자신이 선물한 책을 항상 곁에 두고 있었고, 자신을 여러 번 집으로 초대했으며, 소모임 활동가들 사이에서 ‘A가 가해자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고도 주장했다.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이야기들이 모여 치정극으로 얽혔다. 소모임에서 A가 했던 문제제기들은 ‘정서가 안정되지 않은 사람’의 극단적 행동으로 치부됐다. 가해자는 주장했다. A와의 권력관계가 전혀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의도적인 성폭력이 아닌 우연한 신체접촉이라고. A가 가해자에게 에둘러 이야기한 불쾌함의 항의는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로 볼 수 없다고.

어쩌면 A는 어렴풋이 예상했을지 모른다. 가해자가 가해 사실을 부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강도의 인신공격과 왜곡이 이어질 줄은 몰랐다. A가 사건을 제소하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제소 동기를 이해받지 못한 채 ‘이상한 여자’로 낙인찍히는 것이었다. 으레 피해자들이 덮어 쓰곤 하는, 특별히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사람, 불순한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사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A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 가해자의 애인이 된 친구를 만났다. 그래서 그와 상의했던 고민과 일상들이 저들에게 폭로의 무기로 활용된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가해자는 재판부에 숱한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그 때마다 A도 반박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피해자의 왜곡된 주장들을 매번 읽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피해자들과 공대위 성원들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가득 찬 준비서면을 읽을 때마다 A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럼에도 A는 자신 역시 단단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A가 조언을 구했던 페미니즘 활동가는 그의 대리인이 돼 있었다. A가 속한 단체도 사건 해결을 위해 힘을 쏟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자체 논의를 거쳐 공대위에 변호사를 지원했다. 내부 규정에 의해 공대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여성단체 및 인권단체들은 공대위 활동의 외부지원과 연대를 약속했다. 가해자에 의한 또 다른 피해 사례들도 접수됐다. 두 명의 여성 활동가가 공대위에 참고인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들도 사건을 제소한 피해자들과 유사한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했다.

공대위는 재판부에 단체 규약에 따라 반성폭력 대책위를 구성한 점, 피해자가 대책위 조사 과정에 따라 피해 사실을 얘기했다는 점,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속해 있는 사회단체 전체의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일반인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부위를 만지는 등의 추행행위가 있고, 피해자가 성적수치심을 느꼈다면 가해자의 의도를 불문하고 강제추행이 성립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1년 8개월간의 지난한 법적 싸움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가해자가 청구한 명예훼손과 협박, 업무방해를 인정하기 어렵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를 모두 기각했다.

A는 여전히 지난 1년 8개월의 시간을 복기한다. 자신의 방향이 옳은 것인지, 그 과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곱씹고 되짚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A가 원했던 것은 그저 가해자가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길 바랐던 것이었다. 개인적인 해결은 어려우니 공식적인 문제 해결 과정을 밟자는 것이었다. 잘못된 행동을 인지하고 사과하는 과정이 이렇게 고될 줄은 몰랐다. A가 거쳐 온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하고 고단했다. 하지만 그 길에는 생각보다 많은 지지와 연대의 발걸음이 함께였다. 최근 미투 운동이 터져 나온다. A는 피해자들에게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서 흘러나오기를 기다린다. 특별히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유난스럽지도 않은 평범한 우리들의 미투가 더 많이 모이기를. 우리는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도 많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 역시 너무도 많다. <워커스 41호>

이 기사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각색한 글입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한주, 박다솔,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