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여성운동가’는 왜 ‘직장내괴롭힘’ 가해자가 됐나

[워커스 이슈(2)]공공연구기관에서 ‘여성정책’ 연구하는 ‘여성노동자’의 속사정


들어가며

2018년, 여성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일 때 2016년 기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대비 21%가량 낮다. 여성들이 경력단절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은 ‘근로조건’이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대비 64.1% 수준이다. 여성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41.0%로, 남성보다 15%가량 높다. 여성 노동자는 절반(50.1%)이 시간제 노동을 한다. 이 역시 남성보다 25%가량 높다.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보다 9배가 많고, 자녀 돌봄 시간은 남성보다 5배가 많다.



흔히 사회생활, 혹은 직장생활이라고 하면 남성 중심의 위계적 조직문화가 떠오르기 마련. 그 곳에서 각종 성차별과 성희롱을 견뎌내는 여성노동자의 직장생활은 드라마의 단골소재다. 과연 여성을 위한, 여성 중심의, 여성 친화적인 직장이 있기는 한 걸까. 열심히 찾다보니 몇몇 공공기관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여성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도 있다. 성평등 정책을 연구, 교육하고 컨설팅도 실시하는 곳이란다. 지자체가 출연한 공공기관인데다가 원장과 센터장 등의 관리자들은 지역의 저명한 여성운동가 출신이라고 한다. 이 곳이라면 권위적 남성 문화, 여성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업무 차별과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최근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 2월, 충남여성정책개발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불거졌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던 여성노동자가 혼절해 병원으로 이송된 사건이었다. 피해자가 속해 있는 노동조합은 이 사건을 조직 내 위계관계에서 발생한 위력 행사라고 봤다. 행정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직급이 낮은 직원에게 떠넘기며 폭언과 협박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성평등’을 주요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충청남도의 출연 연구기관인 충남여성정책개발원. 그 곳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명령입니다” 말단 직원에게 ‘경위서’ 몰아주기

지난 2월 22일 오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세미나실에서 행정팀 직원 A씨가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당시 그 장면을 목격한 동료들의 진술에 따르면, A씨는 세미나실 바닥에 누워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동료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원이 A씨에게 말을 걸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너무 힘들다. 왜 나만 힘들어야 하느냐” “왜 나만 갖고 그러냐” “너무 무섭고 억울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방언처럼 터뜨렸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3일간, A씨는 인생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상사들의 폭언과 협박으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발단은 외부 컨설턴트 임금 미지급 문제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은 여성가족부의 위탁을 받아 성별영향분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성별영향분석센터는 정책 수립 과정이 여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평가하는 일을 한다. 개발원 소속 연구원 2인 이상이 센터장과 구성 인력으로 겸직하고, 계약직 전담연구원 한 명을 채용하는 구조다. 충남성별영향분석센터는 지난해 예산 중 10%에 해당하는 내부 여입금을 책정하지 않았고, 이를 이유로 외부 컨설턴트 5인의 컨설팅 수당을 미지급했다. 이럴 경우 통상 미지급 임금이 우선 변제돼야 하지만, 개발원은 도의회 행정감사를 의식해 미지급 임금을 올해 사업비로 포함해 처리하려고 했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 B연구원은 “올해 내부 연구원들의 업무 실적을 임금을 받지 못한 컨설턴트의 실적으로 만들어 내년 연말에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컨설턴트들에게 내고했다”며 “외부 컨설턴트가 센터장과 관계가 틀어지면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소문도 나기 때문에 대부분 그 내고를 받아들였지만, 그 중 한 분이 문제제기해 이 문제가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2월 20일, 개발원 허 모 원장과 행정팀장, 센터장은 사건 관련 논의 및 계획서를 작성했다. 이후 원장은 A씨를 불러 경위서를 요구했다. 책임자인 센터장과 전담연구원, 그리고 A씨 세 사람이 경위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A씨는 의사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인 행정팀장이 아닌 자신에게 경위서를 요구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A씨가 경위서 작성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자, 원장은 문을 닫은 뒤 언성을 높이며 폭언을 했다. B연구원의 설명과 A씨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원장은 ‘명령이다. 명령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며칠 뒤에는 센터장이 A씨에게 ‘원장님이 집요하셔서 선생님을 어떻게 하실지 모른다’ ‘이건 엄연한 불복종이다. 이행하지 않으면 더 큰 징계를 주실 지도 모른다’고 협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와 같은 상황을 노동조합에 공유했다. 그러자 22일, 센터장과 전담연구원 등이 A씨를 불러냈고, 센터장은 ‘가만히 안 있겠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공개사과를 요구하며 언성을 높였다. 이후 혼자 세미나실로 자리를 옮긴 A씨는 혼절했고, 대전 유성선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노조는 해당사건을 ‘원장-센터장-전담연구원-행정팀직원’으로 이어지는 직장 내 위계관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행정팀 직원에게 위력이 가해진 ‘직장 내 괴롭힘 및 탄압 사건’으로 규정했다.

저명한 여성운동가의 군대식 조직 운영

충남여성정책개발원 허 모 전 원장은 지역에서 알려진 저명한 여성운동가다. 부천여성노동자회 이사와 대전여민회 사무국장 및 공동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지역위원회 위원장 및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전공 주임교수를 역임한 인물이다. 임 모 센터장 역시 대전여민회 이사 등을 지냈다. 하지만 개발원 소속 연구원들은 이들이 누구보다 반노동적, 권위주의적 조직 운영에 앞장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연구원은 “월례 회의를 하면 원장은 ‘이건 명령입니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군대식 문화, 조직의 위계질서를 잡아야 조직이 운영된다는 아주 기초적인 조직관리 사고를 갖고 있었다”며 “여성노동단체 활동을 했으면서, 여성노동의 문제를 직장 내 성폭력, 성희롱 외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은 1년 단위 계약직 조교를 지칭하며 ‘쟤 일은 커피타는 일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B씨는 “컨설턴트가 미지급 임금 문제를 제기한 직후, 센터장이 원장에게 ‘A는 직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답답하고, 이 조직에 맞지 않아 미치겠다’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며 “조직 안에서 책임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책임을 덮어씌울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후인 3월, 허 모 원장은 개인적 진로 문제를 이유로 사임했다. 사임 직전, 행정팀장이 내부 인트라망에 올린 원장의 사과문에는 “지난 2월 22일 A직원이 원내에서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간 일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원내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A직원과 직원 모두에게 불편한 상황을 지속시킨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짧은 입장이 담겨 있었다. 노동조합은 개발원 측에 가해자 징계와 보직해임 및 사과 등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개발원 측 관계자는 “인사위원회에서 자문을 받은 결과, 회계 문제에 대한 직무 범위는 명확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자문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징계위 개최 여부와 관련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인권침해 사건 논란, 2년 계약직 연구원들은 ‘정규직 전환’서 배제

사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은 과거에도 비슷한 노동 탄압, 인권침해 사건을 겪었다. 지난 2010부터 2013년까지 민 모 원장이 조직을 운영했던 시기다. 민 전 원장은 충북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청주여성의전화 회장, 청주성폭력상담소 소장 등 여성인권단체를 비롯해 충북도 여성정책관을 지냈던 유명 인물이다. 도종환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아내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민 원장은 당시 월례회의에서 1년 계약직 연구원들에게 ‘나는 3년 계약이고, 당신들은 1년 계약직’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B연구원은 “월례회의 때 기강을 잡겠다며 연구원들을 상대로 그런 발언을 했다. 12월 연말에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위협과 비하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에 문제의식을 느낀 네 명의 연구원들이 회의실에 모이자, 당시 행정실장은 이를 불법 집회로 간주하고 ‘반성문을 쓰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부당함을 느낀 연구원이 사직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들 중 유방암 진단을 받고 병가를 낸 연구원은 최하위 근무평점을 받기도 했다. 해당 연구원은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으나 무혐의 처리가 됐다. 민 원장의 사과도 끝내 없었다. 인권침해 논란이 일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 심각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민 원장은 충청남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 출석해 ‘우리 모두가 비정규직이라는 취지로 나는 3년이고 여러분은 1년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2013년, 민 원장은 퇴임사에서 “누구보다도 안희정 도지사님께 감사드린다”며 “늘 성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셨으며 저에 대한 좋지 않은 제보가 있을 때도 저를 꿋꿋이 믿어주신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안희정 전 도지사는 그동안 ‘성평등’을 주요 정책 과제로 강조해 왔다. 공공기관 전 직원의 인권마인드를 기르겠다며,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인권감수성 향상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앞장서서 추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성평등 충남’에서 여성 정책을 연구하는 이곳 여성노동자들의 신분은 여전히 2년짜리 비정규직이다. 연구원 12명은 2년 계약직, 4명의 조교는 1년짜리 계약직이다. B연구원은 “허 원장은 지난해 말, 정규직 전환 면담 자리에서 1년짜리 계약직 조교에게 ‘채용하고 보니 8시간 근무할 만큼 업무량도 안 되고, 업무 숙련도도 낮다. 해고를 하려면 한 달 전에 사전 예고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지났으니 2018년까지만 계약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은 충남도가 출연한 연구기관으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2단계 기관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 기관은 지난해 11월, 충남도에 제출한 정규직 전환 대상자 명단에 연구원 12명을 모두 배제했다. 총액인건비제에 따라 정원 내 인원으로 잡혀있고, 계약해지가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하지만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최하위 근무평점을 받으면 계약을 해지하는 저성과자 해고 제도를 운영해 왔다. 기관 관계자는 “2년마다 평가를 통해 재임용 계약서를 쓰는데 고용이 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며 “다만 직원 의견을 수렴해 하반기에 2년마다 재임용하는 규정을 없애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워커스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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