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경찰에 연행되는 차노크난 씨 [출처: 차노크난의 페이스북] |
30분 만에 결정된 한국 행
‘Cartoon’이라는 별명을 쓰는 차노크난(Chanoknan) 씨는 왕실모독죄로 소환장을 받게 됐다. 30분 동안 그녀는 태국에 남아 최장 15년의 징역형을 감수할지, 아니면 외국으로 떠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피신을 결정하자 부모님과 친구들은 급히 이별을 준비했다. 결정에서부터 출국까지 걸린 5시간 동안 부모님은 급히 현금뭉치를 준비했고, 차노크난 씨는 노트북과 옷 등 기본적인 물품만 챙긴 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별을 했다.
차노크난 씨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그녀가 결국 택한 곳은 한국이었다. 우선, 한국은 태국과 상호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해 관광 목적의 경우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당장 그녀가 갈 수 있는 나라 자체가 별로 없었다. 태국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동북아 국가 중에서 정치적 망명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유난히 추웠던 2018년 1월, 한국은 태국 민주주의 운동단체인 ‘신민주주의운동(New Democracy Movement)’의 대변인이자 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25세의 활동가를 이렇게 이방인으로 맞게 됐다.
군사 쿠데타 이후 4년, 질식하는 태국의 민주주의
2014년 6월 발생한 태국의 군사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태국에서는 선거가 열리지 않고 있다. 아니, 헌법 개정 투표가 있기는 했었다. 군사 정부는 250명의 상원의원 전부를 군부가 지명하도록 해, 설사 하원의석 500명을 야당이 가져가더라도 총리 선출권을 군부가 보유하도록 헌법을 바꿨다. 이렇게 헌법을 바꾼 후에도 선거를 치르지 않는 것은 굳이 선거를 하지 않아도 이에 반대하는 유의미한 정치 세력이 태국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쿠데타 이후 이른바 ‘엘로 셔츠’라 불리는 태국의 왕당파-군부-중산층 연합은 ‘레드셔츠’라 불리는 탁신재벌-농민-빈민 연합과의 힘겨루기 끝에 완전히 레드셔츠 세력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2016년 서거한 푸미폰 전 국왕의 추모열기도 큰 힘이 됐다.
태국 정부가 자국 국민들을 통제하는 데 이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왕실모독죄다. 작년 6월, 필자는 이 왕실모독죄로 수감된 태국의 젊은 학생활동가의 이야기를 《워커스》에 소개한 바 있다.1) 2017년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짜투팟 씨가 바로 이 왕실모독죄 위반으로 수감 중이며, 그가 수감된 이유가 바로 태국의 새 국왕을 다룬 BBC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브라질에 머물던 차노크난 씨도 이 라마 10세의 BBC기사를 공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차노크난 씨는 짜투팟 씨에 이어 이 기사 공유 건으로 기소 당하게 됐다. 3000명 가까이가 공유한 이 기사로 인해 태국 당국으로부터 기소된 사람은 짜투팟 씨와 차노크난 씨뿐이다.
태국정부가 차노크난 씨를 기소한 이유는 그녀가 짜투팟 씨와 함께 태국 군부에 항의하는 활동을 하다가 여러 차례 체포된 이력이 있는 저명한 학생 운동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차노크난 씨를 난민으로 인정할지는 불투명하다.
한국에서 투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국에 도착한 후, 차노크난 씨는 광주에 머물면서 공익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난민신청을 준비해 지난 3월 30일에 난민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국은 난민 인정에 극히 인색한 나라다.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3%에도 미치지 못해 전 세계 평균 난민인정률인 38%에 한참 미달한다. 만약 난민인정이 거부되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법정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난민신청자는 은행계좌를 만들 수도 없고 한국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도 없다. 당연히 일을 할 수도 없다. 촛불혁명으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제일가는 민주주의를 이룬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정작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제도와 인식은 여전히 세계 평균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차노크난 씨는 자신과 같이 싸우고 기소된 짜투팟 씨에게 광주인권상을 수여한 한국이 자신을 난민으로 받아들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3개월이 넘는 한국 생활을 꿋꿋하고 치열하게 살고 있다.
희대의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는 왕실모독죄로 기소된 활동가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단순히 난민지위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박해를 피해 피신한 민주주의 운동가에게 한국 사회가 존엄을 지키며 투쟁을 지속하도록 연대해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언젠가 태국에 찾아올 봄을 위해 이들이 한국에서 태국 군부의 독재와 인권 침해를 알리고 싸움을 조직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2)[워커스 42호]
[각주]
1) http://workers-zine.net/26919
2) 차노크난 씨에 대한 지원이나 연락을 원하시는 분들은 국제민주연대
(http://www.khis.or.kr)에 문의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