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기법 개정된다 한들, ‘가짜 휴게시간’ 없어지지 않아”

사회서비스노동자들, 정부에 휴게시간 보장 대책 마련 촉구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이 정부에 휴게시간 보장과 장시간 노동 개선 등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가 현장실태 점검 없이 민간사업주들에게 ‘휴게시간을 알아서 보장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며, 정부가 ‘휴게시간 보장’의 대책과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지자체와 민간사업주들을 대상으로 사회서비스노동자들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사회복지업이 근로, 휴게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근로시간 4시간 당 30분의 휴게시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서비스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주요 정책 공약으로 내걸어 왔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이 같은 정부의 지침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이 휴게시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온 근본적 이유는 ‘근기법 59조’가 아닌, ‘무급노동’ 관행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어린이집이나 요양원, 사회복지관 등의 시설의 경우, 사용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휴게시간을 책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인력부족과 노동강도, 업무량 등 때문에 휴게시간에 공짜노동에 내몰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공운수노조는 1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민간사업주에 근기법 위반을 방치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진숙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지금까지는 주지 않아도 됐던 ‘휴게시간’을 근무 4시간에 30분씩 주어야 한다며 사용자들이며 언론이며, 정부 부처들이 떠들고 있다”며 “하지만 그동안 ‘휴게시간’이 버젓이 써 있는 근로계약서가 지켜지지 않았고, 휴게시간을 빌미로 임금을 깎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관리감독하지 않아왔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보건복지부, 노동부는 그동안 민간시장에게 ‘알아서 운영’하라고 했고, 이제는 민간시장에게 ‘알아서 법을 지켜라’라고 하고 있다”며 “휴게시간, 8시간 근무를 위해서는 현장에 맞는 대책을 내 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연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 역시 “그동안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저기준의 휴게시간도 부여받지 못하고 일하던 것이 59조 특례조항 때문이 아니었다”며 “근로계약서에 휴게시간을 주겠다고 명시적으로 못박아놓고도,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다며, 힘들어도 감수해야 한다며, 특례합의 없이도 실질적인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은 것이 현장의 실태”라고 지적했다.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보육교사인 이현림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추진위원장은 “어린이집에서 쓰는 근로계약서에 보통 ‘점심시간’을 휴게시간으로 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지침은 점심시간이 아이들에게 ‘즐겁게 식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간’”이라며 “이 시간은 보육교사들에게 가장 업무강도가 높은 시간으로 휴게시간이 될 수 없다. 가짜 휴게시간은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장애인활동지원사인 윤남용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충북지회장 역시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장애인과 떨어져 휴게를 취할 수 없는 특수한 조건에 있다. 이에 대한 개선책 없이 4시간에 30분을 무조건 쉬라고 하는 것은 임금을 30분 만큼 삭감하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설요양보호사인 오경순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시립동부요양센터분회장은 “정부는 쉬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인력비율을 개선하고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가요양보호사인 이건복 의료연대본부 재가요양지부장은 “독거어르신과 치매이용자가 늘어나면서 하루 3시간의 서비스로는 돌봄이 충족되지 못해, 마음 약한 요양보호사는 3시간의 근무시간을 마치면 우선 전자결재를 하고 난 후 나머지 일을 한다”며 “요양보호사의 무료노동에 의지해 운영되는 장기요양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사회서비스노동자의 적정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을 침해하고 무급노동을 강요하는 지침을 즉각 철회할 것과 △근기법 위반실태 점검 및 근기법 준수 감독 △사회서비스노동자 휴게시간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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