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 귀 닫은 한반도의 봄

[워커스] 이슈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으니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남북 화해 무드에 전쟁을 책동한 자유한국당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으니 해산해야 한다는 글도 올라온다. 지난 4월에는 서울 용산구의 한 스튜디오에 전시된 김정은의 ‘손가락 하트’ 사진을 두고 많은 시민들이 ‘인증샷’을 찍자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평화의 국면이 열린 지금.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스꽝스러워보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는 강력한 악법. 이 희대의 악법은 누구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원했던 이들을 전과자로 만들어 왔다. 한반도에 봄이 무르익어가는 이 때, ≪워커스≫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중총궐기 하루 전 ‘국가보안법’ 구속

민중총궐기가 열리기 이틀 전인 2015년 11월 12일 밤. 김성윤 평화행동목자단 목사가 동창회를 마치고 경기도 광명시의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갑자기 국정원 직원 수십 명이 그를 덮쳐 자택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밤 11시 반, 아내와 6살 막내딸이 자고 있던 집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했다. 김 목사는 집 밖에서 제압당한 채 “여보, 여보”를 외치며 울부짖었다. 남편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김 목사는 아내에게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했고, 다음날 새벽 장경욱 변호사가 압수수색 현장에 도착했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영장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들은 영장을 보여주는 둥 마는 둥 하다 이내 감춰버렸다. 사진 촬영도 막았다. 방을 옮겨 다니며 압수수색 할 때는 가족이 보지 못하게 했다. 압수수색은 새벽 6시까지 계속됐다. 압수수색이 끝나자, 국정원은 김 목사를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연행했다. 그 때 그들에게 끌려간 김 목사는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날의 기억은 아내와 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국정원은 재판에서 김 목사가 북한 문학과 영화를 소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출된 증거자료는 해당 도서의 전체가 아니었다. 국정원에서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을 모아 짜깁기한 자료였다. 국정원이 증거로 삼은 자료들은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재판에서 밝혀진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국정원이 2006년부터 지금까지 김 목사를 미행했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김 목사의 자료를 모아 ‘국정 위기 순간’에 터뜨릴 만한 타이밍을 노린 듯했다. 국정원은 재판에서 가방에 구멍을 뚫어 김 씨를 미행하며 촬영한 영상을 틀었다. 김 목사가 기독교연합회관에서 동료들과 김정일의 ‘연두문(신년사)’을 두고 토론하는 걸 도청했던 자료도 제출했다. 십 년 넘게 수집한 자료들이었다. 김 목사가 다니는 곳마다 국정원이 건물 관계자나 주변인을 매수해 도·감청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김 목사의 아내 권 씨에 따르면, 재판부도 불법성이 농후한 대부분의 증거자료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은 2006년부터 2015년 민중총궐기까지, 노무현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그를 따라다녔다. 권 씨는 지난 박근혜 퇴진 촛불 때 매주 광화문 광장에 나와 남편의 무죄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탄원서를 받았다. 2천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 권 씨는 ‘정권이 바뀌면 남편도 석방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어떤 정권이든 국가보안법만큼은 건드리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도 교도소는 여전히 가족 면회를 거부했다. 김 목사의 사안이 엄중하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2월 김 목사의 친구인 C방송사의 국장급 인사가 같이 왔을 때 처음으로 가족 면회를 했다. 2년 반 동안 가족 면회를 한 건 고작 3번이다.

권 씨가 푸념하듯 말했다. “종전 선언으로 평화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모두 큰 것 같아요. 그런데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은 잘 느끼지 못해요. 평화 통일보다 국가보안법이 더 큰 장벽처럼 느껴져요.” 김 목사가 연행된 날은 민중총궐기 하루 전이다. 민중총궐기로 구속된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지난 5월 21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하지만 김 목사의 만기 출소일까지는 아직 반년이나 남았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한상균, ‘가’석방…이석기 사건 피해자는 그대로 “국보법 건드리지 못하는 文 정권 한계”

박민정 씨는 청주여자교도소 안에서 4.27 판문점 선언을 지켜봤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2차 피해자였던 박 씨는 2013년 4월 이 전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남북 주도의 종전선언을 주장했던 때를 떠올렸다. 다음날 보수 언론이 ‘종북 발언’이라며 핏대를 세웠던 장면도 스쳐 지나갔다. 한자리에 모인 남북 정상의 육성을 들으니 묘한 감정이 오갔다. 그녀는 지난 5월 11일 만기 출소했고, 21일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의 가석방 출소를 밖에서 봤다. 그녀는 “환하게 웃어야 할 날에 웃지 못하게 만드는 정부에 대한 원망도 든다”며 “한 전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고 최초의 양심수 석방이었다. 그런데도 이 전 의원과 김홍열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등 내란사건 구속자는 배제했다.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를 가르고 나눴다. 한 위원장 석방 역시 무죄를 선포하기(사면)보다 가석방이란 편법을 이용했다. 노동에 대한 이 정권의 관점이 아닐까 싶다. 차별과 배제 없는 양심수 석방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조직도 실체도 없었던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이었다. 국정원은 2013년 5월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정세 강연 녹취록을 증거로 내세워 국가보안법 사건을 만들었다. 그 해 8월, 이 전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핵심 간부들이 구속됐다. 박 씨가 구속된 건 사건이 터지고 1년 반이 흐른 뒤다. 중앙당 청년위원장이었던 박 씨가 당 행사에서 ‘혁명동지가’를 제창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사이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는 무죄이며, 지하혁명조직 이른바 ‘RO’의 실체 또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박 씨의 재판 과정에서는 국정원과 검찰의 기소 의견이 그대로 적용됐다. 국정원이 유일하게 내세웠던 녹취록 400여 곳에서 왜곡이 발견됐는데도 말이다.

같은 이유로 구속된 이영춘 민주노총 파주지역지부 지도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고양파주지부장이었던 이 씨는 정세 강연회에서 “이곳(경기 북부 지역)은 (북한) 접경 지역이라 한반도 상황이 오면 잘 대피해야 한다”며 “만약 폭격 상황이 발생하면 ‘시 단위’에도 전화 안 될 수 있으니 한곳에 모이기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발언했다. 국정원은 그의 발언 중 ‘시 단위’를 ‘실탄’으로 왜곡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실제로 재판부는 ‘실탄’ 발언 왜곡을 확인하고 이를 수정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여러 누명이 벗겨졌는데도 박민정 씨는 꼬박 3년을, 이영춘 지도위원은 2년6개월을 교도소에서 살았다. 지금 같은 남북 평화 자신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일이었다. 이 지도위원은 “정상회담 이후에 북한 접경 지역인 파주에 문재인과 김정은 얼굴이 들어간 현수막이 걸렸다. 곧 통일될 테니 이곳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홍보였다. 이전 정권이었으면 북한 지도자를 공공장소에 게시했다며 국가보안법상 고무, 찬양으로 바로 구속했을 것”이라며 “요즘 김정은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인식이 바뀌었는데, 이마저도 ‘국가보안법’ 잣대를 들이대는 현상은 구태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국가보안법 폐지 변곡점될까

이 지도위원은 사문화됐던 국가보안법이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걸리법’은 반공 시대의 자화상이었고, 김영삼 정권의 ‘안기부법’은 노동계 총파업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됐다며 이를 유지시켰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라는 녹슨 칼날을 언제든 빼 들 수 있는 공안세력은 지금도 건재하다. 실제로 2005년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가 진행되자, 이에 항명하며 구속수사를 주장한 공안 검사가 바로 황교안 전 총리다. 당시 황교안을 비롯해 정홍원 전 총리,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 핵심 공안세력이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은 이들이 남아있는 한 국보법은 언제든지 날개를 달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진보적 전자도서관 ‘노동자의책’ 이진영 대표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사건만 봐도 그렇다. 언론은 문재인 정부 임기 첫해 국가보안법 기소율이 2008년 이후 최저라며 추켜세우지만, 문 정부는 끝내 국가보안법 양심수 사면에는 눈을 돌렸다.

피해자들은 지금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적기라고 입을 모은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을 국회 비준 동의 절차로 넘길 것을 지시했다. 국회가 이 절차를 밟으면 국가보안법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국회 비준으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헌법과 국가보안법, 교류협력법 등 각종 실정법과 충돌을 빚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정한다. 이에 따라 북한을 한반도에 불법 점령한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올해 12월이면 국가보안법은 70세를 맞는다. 과연 정부와 국회는 국가보안법과 작별할 수 있을까.[워커스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