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방패가 된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

[워커스 인터내셔널]

[출처: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https://www.myjewishlearning.com/article/a-timeline-of-the- holocaust/)]

이스라엘 건국사에서 홀로코스트는 유대 민족만의 국가 설립을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서사를 구성한다. 실제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이스라엘 건국의 초석을 다지는 데에 함께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팔레스타인에 자발적으로 건너온 건 아니다. 오히려 생존자 일부는 시온주의자에 의해 강제 징집당해 팔레스타인에 군인으로 차출되었다.

시온주의, 유대 국가 건국 운동

19세기 말 이스라엘 건국운동을 시작한 시온주의자들은 신생 유대 국가가 반드시 팔레스타인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당시 영국 점령지였던 현대 케냐에 속한 동부 아프리카나 캐나다, 호주, 이라크, 리비아, 앙골라, 미국,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했다. 특히 20세기 초반 미국의 한 유대인 은행가의 계획에 따라 9,300여명의 유대인이 텍사스로 이주해 유대 국가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연이은 사건들로 팔레스타인 땅 위에 유대 국가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정파가 시온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잡게 됐다. 1917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제국주의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 통치하기 시작했고, ‘밸푸어 선언’을 통해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 설립을 약속했다. 또 유럽에서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가 거세지며 유대인의 안식처로 유대 국가가 필요하다는 담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군 등 연합군과 UN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강제 수용소를 폐쇄한 후 수백 개의 난민 수용소(Displaced Persons (DP) Camp)를 지어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전쟁 난민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했다. 일부는 고향으로 떠났지만, 극도로 쇠약해진 유대인 난민 대부분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수용소에 남았다. 미군은 난민이 수용소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방침을 세웠고, 시온주의자들은 수용소 생활 초기부터 빠르게 운영의 주도권을 쥐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 터를 잡은 시온주의자들은 전후 유럽에 수백 명의 사절단을 파견해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려 했고, 그 주요 타깃은 수용소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유럽의 원거주지로 돌아갈 수 있거나 미국으로 이주 가능한 일부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는 또 다른 전쟁 상황에의 돌입이나 마찬가지였고, 결코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때문에 팔레스타인과 난민 수용소의 시온주의 지도부는 사회적 지위가 가장 취약한 생존자들에게 집중했다. 1947년 말, 시온주의 운동이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종청소를 시작할 무렵 유대인구는 약 60만 명으로(대부분은 1920년대 이후 팔레스타인에 온 이주자였다), 여전히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구수의 절반에 불과했다. 시온주의 지도부는 유럽 전역에 걸쳐 총 33만여 명에 달했던 유대인 난민 수용자가 이주해 온다면 팔레스타인의 유대 인구를 효과적으로 증가시킬 거라 계산했다.

강제 징병 대상이 된 홀로코스트 생존자

유대 민족주의 운동을 오랫동안 연구한 이스라엘 학자 유세프 그로진스키(Yoseph Grodzinsky)에 따르면 시온주의 지도부는 팔레스타인 이주를 원하는 생존자를 “좋은 인간 자원”이라 불렀다. 특히 무기를 들 수 있는 18세에서 35세 사이의 젊은 생존자를 원했으며 그 외 생존자들의 이후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런 태도는 수용소를 방문한 한 사절이 수용소의 난민에 대해 남긴 글에 선명히 드러난다.

시온주의자로 각성한 선구적 인간 자원은 키프로스를 통해서든 직접적이든 여러 루트를 통해 이미 팔레스타인으로 떠났고, 현재 수용소에는 유대인 난민 일부만 남아 있다. 여태 남아 있는 건 오래된 흙에 말라붙은 것, 깨끗이 씻어내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탄 냄비 바닥에 눌러 붙은 음식물과 같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해도 통하질 않는다. “조국이 화염에 휩싸였다!”, “가족을 화재에서 구하기 위해 집으로 뛰어들지 않을 아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얘길 해도 잔류자들은 아무 감흥을 못 느낀다.

유대인 난민을 팔레스타인으로 데려오겠다는 계획은 1948년 5월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를 끝내고 이스라엘이 곧바로 건국을 선포할 시기에 정점에 달했다. 난민 수용소에서 자발적으로 군에 합류한 유대인은 한 달 전인 4월에 700여명(당시 25만 유대인 수용자의 0.3%)에 불과했고 시온주의 지도부는 더욱 많은 병사가 필요하다며 수용소에서 강제 징병을 시작했다. 강제 징병은 “의무를 다해 군에 자원하지 않는 자들을 탈영병으로 선언”하고 벌금을 부과했으며 필요할 경우 물리적 폭력도 수반했다. 강제 징집으로 수용소 출신 병사수는 총 7,800여명이 되었다. 이는 전쟁 당시 팔레스타인 외의 지역에서 건너 온 총 병사 수의 40%에 육박한다. 전쟁 직전 유대인 민병대를 전부 합쳐도 약 5만 명이었고, 신생 이스라엘 국가의 전체 병사가 12만 명에 못 미쳤음을 생각할 때, 강제 징집된 병사 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유대 국가로 이주하길 열망했다. 아직 팔레스타인 땅을 위임 통치하던 영국이 허용치 않자 그에 용감히 맞서 싸웠고 자발적으로 군대에 합류했으며 유대 국가 독립과 동시에 생존자들이 몰려들어 오늘의 이스라엘이 생겼다’는 역사 서술을 계속했고 많은 나라가 이 서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난 70년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식민 정책을 강화하는 걸 목도했음에도 유럽에서 이 서사는 여전히 강력해 유대인은 여전히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나라로만 표상된다. 사르트르, 푸코 등 유럽의 저명한 지식인들이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를 방패삼아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한 인종청소와 군사점령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에 동조한 것도 이런 서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유대주의라는 만능 방패

분명 유대 국가 건설 운동을 조직한 초기 시온주의자에 더해 자발적으로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종청소에 가담했거나, 인종청소 후 세워진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있었다. 다만 이들은 더 이상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라 중무장한 식민주의자가 되었다. 하지만 시온주의 운동이 일반 사병에게 주입한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해방자로 묘사했다. 18세에 시온주의 민병대에 참가한 마르크스주의자 티크바 호니그- 파르나스(89)는 이렇게 회상했다.1)

우리는 민병대가 땅을 정복하고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제거할 시온주의 계획을 실현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병대는 억압받은 자들의 ‘혁명군’을 가장했다.

흥미롭게도 티크바는 35년이 지난 후 전쟁 중 자신이 부모님께 보낸 편지를 우연히 읽어보곤 과거 자신이 저지른 일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편지지 상단에는 편지지를 발견했던 폐주유소의 주소가 아랍어와 영어로 적혀 있었다. 주유소가 있던 조용한 마을의 ‘빈 집’들에서 혼자 쉬길 좋아했지만, 그 빈 집의 주방엔 주인이 황급히 피난길에 오르며 고스란히 남긴 식기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곳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고, 내가 속한 군대가 여기 살던 이들을 쫓아냈다는 데에는 생각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 쫓겨나 굶주리는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고, 그보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냐고 비난하는 미국 출신의 동료 병사들이 더 신경 쓰였다.

티크바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을 2등 시민으로 차별하는 이스라엘의 법제와, 점령지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하고 주기적으로 초법적 학살을 저지르는 것이 이스라엘 건국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특히 식민주의 정착민을 희생자로 묘사하는 전도된 사고방식의 유래 없는 성공을 지적한다. 이 ‘희생자’에 대한 어떤 비난도 쉽게 반유대주의로 등치돼 버린다. 이스라엘과 그에 동조하는 자들이 전 세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가장 손쉽게 씌우는 혐의 또한 반유대주의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조차 반유대주의로 분류하니 놀랄 일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BDS 운동(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즉 이스라엘이 군사점령지에서 철수하고 난민의 귀환권을 보장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에 대한 차별을 철폐할 때까지 이스라엘을 보이콧, 투자 철수, 제재하자는 운동에 반유대주의 딱지를 붙이고 불법화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도 BDS 운동 불법화를 로비하고 있다. 그러나 2014년 홀로코스트 생존자 수잔 바이스가 공개서한을 통해 록커 닐 영에게 이스라엘 공연 취소를 호소하며 지적했듯,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가 주는 교훈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우리가 더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반유대주의가 뭔지, 제 삶을 통해 잘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에서는 반유대주의적인 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캐나다를 비롯한 전 세계 유대인의 상당수가 BDS 운동을 지지합니다.

히틀러 치하 유대인의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은 군사공격으로 강탈당하고, 추방당하고, 감금·수감되는 모든 사람들, 특히 팔레스타인인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점입니다.2)


“우리는 다른 민족과는 다른 존재다”라는 이스라엘의 거만한 슬로건에 팔레스타인은 “우리도 다른 민족과 같은 존재다”라는 외침으로 받아쳤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호소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과 맞닿아 있다. <워커스 44호>

1) https://www.aljazeera.com/indepth/features/de-colonising-mind- zionist- ghter-journey-180508183223954.html
2) 「자유를 노래하는 록커 닐 영, 텔아비브 공연을 취소해 주세요」, http://pal.or.kr/xe/26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