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스 루뭄바(1925-1961)

[워커스] 힙합과 급진주의

  체포된 파트리스 루뭄바(우)

“이 노래를 파트리스 루뭄바에게. 그저 진실을 위해 싸우려 했고 동포들에게 죽임당한 사람.” 래퍼 나스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신을 바로 그 ‘나의 나라’가 없애버리려 한다고 주장하는 이 곡을 체 게바라, 맬컴 엑스, 마틴 루터 킹과 더불어 콩고민주공화국의 초대 총리 루뭄바에게 헌정했다. 미국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위험한 생활환경을 방치함으로써 그들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판단한 나스는 앞선 네 사람처럼 싸울 생각이었다. 분명 루뭄바는 나스에게 투쟁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힙합계에서는 투팍을 제외하고 누구도 루뭄바나 무하마드 알리가 가졌던 전사의 정신을 갖고 있지 않다고 아쉬워한 바 있다.

마틴 루터 킹과 맬컴 엑스에 앞서 루뭄바가 쓰러졌다. 벨기에령 콩고에서 태어나 공무원과 노조운동가로 활동한 루뭄바는 1958년부터 콩고민족운동(MNC)을 이끌고 콩고 독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역과 종족을 바탕으로 연방제를 주장하던 다른 콩고 정치세력들과 달리 소수종족 출신인 루뭄바의 콩고민족운동은 전국 범위의 운동으로 단일한 콩고 공화국 수립을 주장했다. 독립을 앞둔 1960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콩고민족운동은 137석 중 33석을 차지하며 제1당의 위치에 올랐고, 루뭄바는 다음 달 34세의 나이로 신생 공화국의 총리로 부임했다. 콩고 최대 종족인 바콩고족 출신 명망가 조제프 카사부부를 끌어들여 대통령에 앉힌 연립정부였다.

독립국 콩고는 탄생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7월 남부의 부유한 카탕가 지역은 벨기에 용병과 서구 세력의 지원을 받는 모이스 촘베를 앞세워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정부의 힘만으로 분열에 대처하기 역부족이었던 루뭄바는 유엔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유엔에 카탕가의 재통합을 요구했으나 유엔은 자신들의 역할을 ‘평화 유지’에 한정하며 더 이상의 개입을 거부했다. 미국 정부에 요청한 지원 역시 거절당했다.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아프리카 민족주의자일 뿐이라는 루뭄바의 주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루뭄바의 다음 선택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그에게 호의적이었지만 콩고의 분열을 막는 데 필요한 물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은 그를 위험한 인물로 판단했다. 9월 미국 CIA의 후원을 받는 국방장관 조제프 모부투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가택 연금된 루뭄바는 탈출을 시도했으나 체포돼 카탕가 분리주의자들의 손에 넘겨졌고, 1961년 1월 17일 고문 끝에 살해됐다. 이어 쿠바에서 체 게바라가 건너왔지만 실패를 맛 봤다. 결국 1965년 11월 모부투는 콩고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외세에 맞서 아프리카의 해방을 주장한 젊은 지도자가 식민주의와 냉전, 분리주의 세력에 희생됐다는 사실은 미국의 흑인들이 보기에도 명백했다. 맬컴 엑스는 루뭄바가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1960년 10월, 미국의 흑인들은 미국의 콩고 간섭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몇 달 전인 7월 그는 유엔과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루뭄바를 만났고, 아프리카가 단결해 독자적으로 근대화를 이뤄야 한다는 구상에 크게 감명 받은 상태였다. 그는 루뭄바를 “아프리카 대륙을 걸었던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평하며 이후 연설에서 수차례 언급했고, 자신의 딸에게도 루뭄바라는 이름을 붙였다. 루뭄바의 처형 소식은 몇 주 지나 미국에도 알려졌다. 1961년 2월 할렘의 흑인들은 유엔빌딩 앞에서 루뭄바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여 미국 대사의 총회 연설을 방해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위인사들은 자국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비난했지만, 시위를 주도한 작가 마야 앤절루를 비롯한 흑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미국 정부가 아프리카의 해방마저 방해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루뭄바의 이름은 프랑스어를 쓰는 래퍼들에게서 자주 언급됐지만 영어권 국가의 래퍼들 역시 그를 놓치지 않았다. 데이비드 배너는 루뭄바의 마지막 순간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미국의 CIA와 영국의 MI6, 벨기에인들을 죽음의 배후로 지목했고, 범아프리카주의자이자 민중의 편에서 악에 맞선 루뭄바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흑인 민족주의와 아프리카중심주의를 음악의 주요 테마로 삼은 엑스클랜이나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의 곡에서도 루뭄바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자신들의 음악 활동을 투쟁의 수단으로 여기는 급진적인 래퍼들이 루뭄바에게서 영감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많은 래퍼들이 경찰이나 갱단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듯 이들은 해방을 주장하다 쓰러진 인물들을 소환했다. 데드 프레즈의 멤버 엠원은 “오바마는 내 대통령이 아냐. 흑인 얼굴을 한 백인 권력일 뿐이지”라고 말하는 래퍼다. 그는 자신의 곡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운동가 스티브 비코,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 토마 상카라와 더불어 루뭄바를 영웅으로 불러냈다. 세 명 모두 아프리카에서 흑인의 해방을 주장했고 30대에 상대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이었다. 페루 출신 미국인 래퍼 이모탈 테크닉은 계급투쟁이나 혁명 같은 주제를 전투적인 랩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권력에 눈이 먼 자국인들이 루뭄바와 블랙팬더당의 지도자 휴이 뉴턴,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등을 살해했다고 말하면서 이들을 자유를 위해 싸운 순교자들로 추앙했다. 영국 노동당 정치인 제레미 코빈의 지지자이자 한국에서 공연하기도 한 영국인 래퍼 아칼라는 아이티 혁명을 이끌다 쓰러진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 장자크 데살린과 함께 루뭄바의 이름을 거론했다. “목숨을 바칠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면 그건 결코 사는 게 아냐”라는 것이 아칼라가 이들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였다.

1974년 10월 콩고 공화국에서 국명을 바꾼 자이르의 킨샤샤에서는 복싱 역사상 최대의 이벤트가 열렸다. 여기서 무하마드 알리는 조지 포먼을 쓰러뜨리고 징병 거부로 박탈당했던 챔피언 벨트를 되찾아오며 자신의 위대함을 알렸다. 이벤트에 든 막대한 비용은 자이르의 민중을 착취해 부를 쌓아 온 모부투 정권의 금고에서 나왔다. 이 행사로 외국 투자를 유치하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모부투 정권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정권은 이후 20년 동안 존속했다. 자신의 명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허용했지만 알리가 이런 배경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시합을 앞둔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미래 없는 흑인을 위해 싸운다고 말하며 사망한 맬컴 엑스를 떠올린 후 “루뭄바가 날 만나러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덧붙였다. 이 시합은 다큐멘터리 ‘우리가 왕이었을 때’를 통해 기록됐고 힙합 그룹 푸지스가 음악에 참여했다. 이들의 뮤직비디오에는 시합 당시의 화려한 영상들 사이로 억압받는 민중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체포당한 루뭄바의 모습이 한 차례 짧게 등장한다. 이 장면의 의미를 알아볼 수 있다면 이 명곡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워커스 44호>

언급된 곡들

Nas - My Country
Sa-Roc feat. David Banner - The Who?
AP2P (aka M1 and Bonnot) - Real Revolutionaries
Immortal Technique - The Martyr
Akala - Malcolm Said It
Fugees feat. John Forté, A Tribe Called Quest & Busta Rhymes - Rumble In The Jungle

뮤직비디오

Sa-Roc feat. David Banner - The Who?
www.youtube.com/watch?v=cUBRq4yzDYc
AP2P (aka M1 and Bonnot) - Real Revolutionaries
www.youtube.com/watch?v=oef_7WzAgNk
Akala - Malcolm Said It
www.youtube.com/watch?v=HhTbJE30xPI
Fugees feat. John Forté, A Tribe Called Quest & Busta Rhymes - Rumble In The Jungle
www.youtube.com/watch?v=Ok6fmRt6MvU&has_verifie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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