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라는 ‘취향 공동체’

[워커스] 기술문화비평

[출처: 넷플릭스]

이 시대에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십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상당히 다를 것이다. 지난 시기에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이 케이블이나 안테나를 연결해 주요 방송국이나 전문 채널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들을 가족들이 거실이나 안방에 모여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본다는 것을 의미했다면, 지금은 그와는 무척 다른 행위를 가리킨다. 요즘 강의실에서 만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의 주거 공간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거나 아예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물론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전혀 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예능이나 드라마를 여전히 즐기지만 부모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한다.

영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극장을 가기는 하지만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극장에 가는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대단히 많을 뿐만 아니라 영화가 극장 상영만을 목표로 제작되지도 않는다. 젊은 세대는 텔레비전이나 극장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통해, 말하자면 ‘인터넷으로’ 방송과 영화를 본다. 대형 방송사에서 대중을 위해 제작한 프로그램보다는 개인 제작자 혹은 크리에이터(creator)가 스트리밍하는 콘텐츠를 ‘찾아서’ 시청한다. 지금 당장 주어진 짧은 여가 시간에 자신이 소비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온라인에서 찾거나 주문형비디오(VOD)나 넷플릭스, 왓챠플레이와 같은 OTT(Over-thetop)를 훑곤 한다. 이러한 매체들은 다른 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방송,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재구성해낼 만큼 파괴적이다. 시각 매체 특성, 시청 방식, 나아가 제작 환경 모두가 급격하게 변화 중이다.

텔레비전과 영화 보기의 변화

전 세계 가입자가 1억 2500만 명이나 되는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국내 시장에 상당히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대한 투자를 비롯해 여러 국내 제작 TV 드라마를 (재)방영하기 시작해, 올해에는 국내 유명 MC나 코미디언, PD 등을 투입한 오리지널(자체 제작) 예능 콘텐츠의 숫자를 늘리고 있다. 곧 국내 오리지널 드라마까지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아직 국내의 다른 동영상 공급서비스들과의 경쟁, 미디어 플랫폼들의 견제, 소비자들의 마음의 벽 때문에 국내 시장이 넷플릭스에 넘어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2-3년 후는 장담할 수 없다.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애초 미국에서 DVD 대여 체인점을 대체해 연체료 없이 우편으로 원하는 DVD를 받아보고 회송할 수 있는 서비스로 시작했다. 2007년부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금의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로 진화했다. 2013년에는 우수한 콘텐츠 제공에 승부수가 있다고 판단해 영화와 드라마를 포함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함으로써 넷플릭스라는 기업은 단순한 콘텐츠 유통업체가 아닌 글로벌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이러한 성공은 여러 투자 전략이나 기술 혁신을 통해 가능했겠지만, 성공의 가장 주요한 밑거름은 영화 추천 시스템이 아니었나 싶다. 시청자가 지금껏 보았던 영화를 분석해 시청자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하는 개인 추천 서비스의 알고리즘은 시청자들의 눈을 끊임없이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화면에 붙잡아 놓도록 만들었다.

취향을 만들어 주는 서비스

아마도 이미 확보한 수많은 시청자들의 시청 성향과 행동 패턴은 어느 정도 카테고리화 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돼 있을 것이다. 예컨대 어떤 지역에서 살고 있는 어떤 직업을 가진 어떤 연령대의 어떤 성(性)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그 시청자가 선호하는 콘텐츠가 구분될 것임은 일견 명백해 보인다. 그런 수많은 시청자들의 취향 데이터를 바탕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낸다면 기존의 가입자들은 더욱 충성스런 팬이 될 것이고 새로운 가입자들도 늘어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면 새로운 가입자들이 가져오는 매출을 통해 더 많은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일종의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다. 초기에 서비스 사용자를 대거 확보하면 시장을 선점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이후 더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성공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시청자의 연령별, 지역별, 성별 데이터와 같은 인구학적 자료는 거시적으로야 어느 정도 들어맞을 수 있겠지만 미시적으로 개개인의 취향을 알아내고 반영하는 데는 그리 유용하지 않다. 넷플릭스는 일단 콘텐츠의 장르를 매우 정교하게 분류하는 한편(예를 들어 타임슬립 로맨스, 청춘 호러, SF 코미디 등), 전체 시청자들을 아주 미세한 특성들을 공유하는 수많은 ‘취향 공동체’로 섬세하게 구분한다. 이 취향 공동체에는 연령, 지역, 성별과 상관없이 유사한 취향과 시청 행태를 공유하는 시청자들이 포함돼 있는데, 이 섬세한 취향 공동체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활용해 선호할 콘텐츠를 잘 뽑아내면 투자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줄게 되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취향은 넷플릭스 화면에 등장하는 포스터 선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역으로 말하면, 넷플릭스는 광고에 있어서도 시청자들의 시각적 반응을 측정해 그들의 취향에 맞춘다.

다변화된 잠재적 시청자 집단의 취향을 고려한 콘텐츠 제작은 한편으로 전통적으로 무시됐던 장르나 매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테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계적 알고리즘에 의한 취향 데이터 분석은 취향의 최적화나 취향 자체의 소멸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섬세한 취향 공동체를 통한 콘텐츠의 제작이더라도 기계적 알고리즘의 무한한 자기 학습에 기반하는 플랫폼 내에서 큐레이팅 된 취향은 오히려 우리의 취향을 죽인다. 내가 내 취향을 알기도 전에 나에게 주어지는 취향, 나에게 최적화된 취향의 콘텐츠가 어떻게 매번 즐겁기만 할 것인가. 이제 디즈니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된 넷플릭스는 우리를 작은 취향의 공동체로 몰아넣고 거기에서 분화된 크고 작은 취향들을 발굴하며 그 취향에 맞춤된 즐길 거리를 우리에게 던지고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임을 강변한다. 물어볼 것도 없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어느새 맞춤된 취향에 길들여져 고유한 취향을 잃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곤(발견할 수 있다면!) 슬퍼질 것이다.[워커스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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